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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자인 시인 / 과녁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18.

이자인 시인 / 과녁

 

 

화살나무였다

 

몸이 다 젖었다

 

차라리 붉게 붉게 부서지자고

먼데서 바람이 불어왔다

 

아프지 않았다

 

조금만 웃자고 내일에게 약속했다

 

죽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날이 많아졌다

 

죽은 자가 산 자의 장례식을 치루고 있었다

 

온몸이 과녁이었다

 

텅 빈 과녁사이로

흐르는 말이 잘 들렸다

 

 


 

 

이자인 시인 / 알 수 없는 계절

 

 

뜰을 거닐다 당신의 봄을 내가 밟고 말았습니다

나는 취중이어서 꽃처럼 터지려합니다

4월이 푸른 혈관 속에서 팽창하는 소리

새 빨간 소리로 나를 덥석 삼키는 소리, 폭발 중인 소리라니요

취한 길 더듬거리며 당신에게로 날아가는 중입니다

이 길을 춤추라니요 텅 빈 소리 가득 찬 랜덤의 시간 살아나라니요

자꾸 태어나는 태양을 사라진 머리 위에 굿모닝, 하고 걸어놓겠습니다

잠시 진지한 척 다시 태어나겠습니다 당신은

언제부터 한 쪽다리를 절뚝거리며 배꼽 위를 돌고 있나요 서 있었나요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나요

쫑긋거리면서 한 계절을 후려치고 있나요 혀 짧은 소리로 오는 봄

거친 손으로 허공을 휘젓고 있는 당신

소리 없는 소리로 터지며 추락해도 좋은 여전히 봄 속인가요

 

-《다시올문학》 2016년 봄

 

 


 

이자인 시인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 석사과정. 2014년 《시산맥》으로 등단 제9회 최치원신인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