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석 시인 / 우기의 자화상
20년 동안 자취했다 부모가 보내주는 돈으로 지금은 계절 단위로 늙고 있다 나는 나에게 분명한 사실을 보여준다. 분명한 나를 지운다. 나는 매일 그렸다. 행복해 지고 싶어서. 나는 매일 그렸다. 셀로판 그림을 바른 창의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햇살이 끔찍하게 어제의 웅덩이를 피해갔다. 물속에서 보이는 사람이 되었다. 손님은 있었다. 취하지 않은 손님은 없었다. 단골손님이 내 위에 같은 얼굴을 찍어댈 때마다 나는 판화처럼 납작해졌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넓은 잔디밭에 눕는다. 어제 빠뜨린 눈망울을 찾아 몸을 뒤척이면 차가운 빗방울이 귀를 먼저 적신다. 나는 솟구치는 느낌이 된다. 비를 맞고 있는 거리의 마분지처럼 나는 자꾸만 흩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럽게. 자꾸 더럽게. 나는 지저분한 옷을 감췄다. 벌어지는 일을 가리기 위해 눈을 감았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하늘은 자꾸 비를 보내는 것 같았다. 치명적인 붓끝이 몸을 두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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