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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군수 시인 / 아버지의 지등(紙燈)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21.

정군수 시인 / 아버지의 지등(紙燈)

측간도 쓸고 뒤안도 쓸고

외양간도 쳐내고

휘영청 달 밝은 정월 대보름

아버지는 지등을 달았다

달빛이야 저 먼저 밝았어도

달빛이야 저 혼자 밝았어도

불빛마다 고여오는 당신의 사랑

밤마다 혼자 안고 뒹굴다

밤마다 사립 열고 먼길을 가다

아버지는 지등을 달았다

그것이 눈물인 줄을 모르고

그것이 사랑인 줄을 모르고

한밤내 지등에다 기름을 부었다

 

 


 

 

정군수 시인 / 한쪽 가슴이 없는 여자

 

 

한쪽 가슴이 없는 여자를 사랑하였다

배가 닿지 못하는 바위섬에서

그녀는 억센 찔레넝쿨만 키우고 살았다

내가 헤엄쳐 건너가자

그녀는 사슴을 키우기 시작했다

찔레순을 먹은 사슴의 머리에서 뿔이 돋자

황폐한 그녀의 가슴에서도 향기가 났다

내가 그녀를

한쪽 가슴이 있는 여자라 불렀을 때

섬은 외롭지 않고 바닷새도 날아와 알을 낳았다

봉우리에서 내려온 사슴은

찔레꽃 핀 언덕에 앉아 바다를 보며

명상하듯 새김질을 하였다

내 가슴 하나가

그녀의 가슴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날

바다는 푸르고 수심은 깊었다

바닷가 절벽에서 바라본 것은 육지가 아니라

그녀의 가슴에 자라난 풀밭이었다

두 개의 뿔과 한 개의 가슴이 사는 섬을

나는 지도에 그려 넣었다

 

-시집 <한쪽 가슴이 없는 여자>

 

 


 

정군수(鄭群洙) 시인

전북 金堤 月村 출생. 전북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과 졸업. 원광대학교 교육대학원 한문교육과 졸업. 월간「문학21」 계간「시대문학」신인상으로 등단. 새천년문학상(시부문). 이철균 시문학상 수상. 시집 <모르는 세상 밖으로 떠난다> <풀은 깎으면 더욱 향기가 난다> <한쪽 가슴이 없는 여자>. 김시습 연구 (논문집). 고교교사. 전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정년퇴임(2007.08). 현재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문예창작과 전담교수. 현재 한국문인협회, 한국현대시인협회. 전북문인협회, 한국PEN문학회. 전주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