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욱 시인 / 벽
밤의 이면지 쪽에서 하늘이 새 나가는 소리 난다 어둠을 비워낸 어둠이 육신을 벗겨낸 두께만큼이나 보타진 환부를 숨겨 산山 밖의, 짐승이 앓다 간 자리에 달이 뜨고 지는, 눈을 가려 벼랑 어디쯤 새들이 죽어서 우는 소리를 짜낸 틈새로 귀를 연다
송상욱 시인 / 두 삶
피라미드 속에는 천년을 누워있는 미이라가 있다. 알 수 없는 곳으로 해와 달이 들었다 나간다 초가집 윗목에 놓인 대바구니 속에는 잘 말려진 붉은 고추가 있다 고추는 지 몸에 해와 달을 지니고 산다 창 너머 높은 성당이 보인다 창 안쪽은 백자항아리가 놓여 있다 성당 안에는 죄와 돈과 성을 거래하는 칸막이가 있고, 신의 음모를 흉내 내는 뱀 모양의 움직임이 있다 백자 항아리 속에는 하늘 함께 살고 있는 백의민족이 있다
송상욱 시인 / 단풍
이브의 죄를 씻은 몸뚱아리가 꽃처럼 붉어 가을 날 붉은 소문이 하늘을 타고 오른다 그날 능금나무 아래 불칼을 맞고 쓰러진 땅이 붉어 속살이 뜨거운 나무 위에 천둥소리 번져와 붉은 신들이 춤을 추고 있다.
-서울현충원에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중하 시인 / 길고양이 외 1편 (0) | 2023.02.23 |
---|---|
백향옥 시인 / 아무 것도 아닌 사람 되기 (0) | 2023.02.23 |
노혜경 시인 / 캄캄 외 1편 (0) | 2023.02.23 |
나문석 시인 / 월류봉 연가 외 1편 (0) | 2023.02.23 |
곽은영 시인 / 가을 외 1편 (0) | 2023.0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