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백향옥 시인 / 아무 것도 아닌 사람 되기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23.

백향옥 시인 / 아무 것도 아닌 사람 되기

 

 

처음 가는 길이 좋아

 

달처럼 부푸는 물집들을 모르는 척 걸었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부푼 풍선을 밟으며 걸었지

 

달 보러 갔는데 달 없어서 다시 가고

생 나뭇가지 흔들리다 찢어지는

태풍 부는 밤을 휘청거리며 걸었지 우리는

 

밤새 걸어서

비가 내려도 밤새 걸어서 멀리 멀어졌지

 

걸어봤는데 처음 가는 길

그때 그 길 아니고 다시 처음 가는 길 같아

 

겁 없이

겁도 없이 걸어서

강을 지나 빽빽한 관목 숲 사이로 난 좁은 길을 걸었지

캄캄해서 무섭지 않았어

 

달 없는 길

앞길이 보이지 않아도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서 그냥 걸었지

 

다 젖어도 금방 말라서 좋은 여름이었어

 

-『다층』 2021-여름(91)호 <젊은 시인 7인선>에서

 

 


 

백향옥 시인

1968년 강원도 양구에서 출생. 2021년 《불교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