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향옥 시인 / 아무 것도 아닌 사람 되기
처음 가는 길이 좋아
달처럼 부푸는 물집들을 모르는 척 걸었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부푼 풍선을 밟으며 걸었지
달 보러 갔는데 달 없어서 다시 가고 생 나뭇가지 흔들리다 찢어지는 태풍 부는 밤을 휘청거리며 걸었지 우리는
밤새 걸어서 비가 내려도 밤새 걸어서 멀리 멀어졌지
걸어봤는데 처음 가는 길 그때 그 길 아니고 다시 처음 가는 길 같아
겁 없이 겁도 없이 걸어서 강을 지나 빽빽한 관목 숲 사이로 난 좁은 길을 걸었지 캄캄해서 무섭지 않았어
달 없는 길 앞길이 보이지 않아도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서 그냥 걸었지
다 젖어도 금방 말라서 좋은 여름이었어
-『다층』 2021-여름(91)호 <젊은 시인 7인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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