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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송상욱 시인 / 벽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23.

송상욱 시인 / 벽

 

 

밤의 이면지 쪽에서

하늘이 새 나가는 소리 난다

어둠을 비워낸 어둠이

육신을 벗겨낸 두께만큼이나

보타진

환부를 숨겨

산山 밖의, 짐승이 앓다 간

자리에

달이 뜨고 지는, 눈을 가려

벼랑 어디쯤

새들이 죽어서 우는

소리를 짜낸 틈새로

귀를 연다

 

 


 

 

송상욱 시인 / 두 삶

 

피라미드 속에는 천년을 누워있는

미이라가 있다. 알 수 없는 곳으로 해와 달이 들었다 나간다

초가집 윗목에 놓인 대바구니 속에는

잘 말려진 붉은 고추가 있다

고추는 지 몸에 해와 달을 지니고 산다

창 너머 높은 성당이 보인다

창 안쪽은 백자항아리가 놓여 있다

성당 안에는 죄와 돈과 성을 거래하는

칸막이가 있고, 신의 음모를 흉내 내는 뱀 모양의

움직임이 있다

백자 항아리 속에는 하늘 함께 살고 있는 백의민족이 있다

 

 


 

 

송상욱 시인 / 단풍

 

 

이브의 죄를 씻은

몸뚱아리가

꽃처럼 붉어

가을 날

붉은 소문이

하늘을 타고 오른다

그날

능금나무 아래

불칼을 맞고 쓰러진

땅이 붉어

속살이 뜨거운 나무 위에

천둥소리 번져와

붉은 신들이 춤을 추고 있다.

 

-서울현충원에서

 

 


 

송상욱(宋相煜) 시인

1939년 고흥에서 출생. (본명: 宋相恩). 동아대학교 국문과 졸업. 1975년 시집 『망각의 바람』으로 시작활동. 시집으로 『망각의 바람』, 『영혼속의 새』, 『승천하는 죄』, 『하늘뒤의 사람들』, 『무무놀량』 『광대』 등이 있음. 1964년 제1회 동아문학상 수상(동아대 주최), 1969년 교단 생활을 시작. 한국현대시인상 수상. 1인 시지 『詩』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