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오 시인 / 생활
직장생활 근 십년이 되었습니다. 밥과 돈에 얽혀드는 삶이 싫어서 시 쓰는 일을 아름답게 여겼던 생각 그마저 잊고 아홉 살배기 아들 장래 걱정합니다. 자식에게 보람 두는 사람들의 참다움도 알고 먼저 그렇듯 살아가는 나를 조금도 부끄럽게 느끼지 않는 뻔뻔함도 늘었지요. 시인이라고 해서 이 일상을 버리라고 한다면 쳐다보면 늘 있는 푸른 하늘도 형벌입니다.
세월이라는 것도 저대로 오고가지 않고 아비들이 모여 간난과 고통에 늙고 자식들이 커서 낫게 살아내는 만큼 깊어져서 늘 오늘 하루인 거지요
에잇, 내 시가 못마땅해 가타부타하는 분들 내게서 떠날테면 떠나라지요 떠나라지요 시인한테는 밤하늘 달무리만 있읍니까요 밥과 돈이 인간을 바꿔 버린다는 것을 알고부터 하루하루가 나에게는 늘 같은 오늘로 깊은 세월이었습니다. 무섭고 괴롭고, 그래도 직장생활 나는 계속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시집 <꽃들은 우리를 봐서 핀다>
하종오 시인 / 아버지 뫼로 누우시고
생전에 업적도 없이 사셨던 아버지 높은 산비탈에 낮은 뫼로 누우시고 못난 자식들만 살아남아서 몇 가지 남기신 유품을 나눠 가져가고 죽으셔서 아버지 더욱 가난해지셨읍니다만 세상에 태어나서 일하고 늙고 병들어 죽으시고 아버지 그 한평생이 흙이 되셨으니 이제 그 옆에 언젠가 어머니 묻힐 작은 뫼 하나 만들고 싶으시겠지요? 그것이 아버지 전재산인 것을 풀꽃 풀벌레 데리고 이 산 저 벌판 사람 사는 마을로 꼭 한 번 내려오시는 일이 아버지 내려오셔서 못난 자식들 살피시는 일이 앞으로 하실 일인 것을 생전에 업적도 없이 사셨던 아버지 높은 산비탈에 낮은 뫼로 누우시고
-시집 <꽃들은 우리를 봐서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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