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완 시인 / 새와 나무
안개 신비로운 곤륜은 도화 정토다. 도화는 3천 년에 한 번 영원한 생명의 실과가 열린다. 어느 때, 오색 창연한 날개로 도화를 헤집는 영롱한 노랫소리가 들렸다. 다리가 없어서 영원히 날아다니는 새였다. 꽃잎이 새하얗게 떨어졌다. 앙상한 가지를 본 서왕모*는 말했다. 인면을 버리지 못했음이오, 지상을 다녀오시오. 즉시 새는 발이 생겼다. 그러자 새의 공간이 비바람 천둥으로 가득했다. 날개의 통증이 뼈를 관통했다. 뼛가루를 폭포처럼 쏟는 순간 바닥에 던져져 번개처럼 눈을 떴다.
넘어진 새가 보인다. 반은 살고 반은 죽은 날개, 왼쪽에만 봄이 왔다. 시커먼 가지의 오른쪽은 우울하다. 날개 한 짝을 어쩌다 잃었을까. 오른쪽 전생을 업고 힘겹게 목발을 짚는지도 모른다. 나무의 생은 나무의 걸음, 모든 걸음은 결국 도달하는 곳이 있다. 천상의 기억을 탕진한 그는 행인이 부르는 이름, 연못에 흐드러진 반쪽 복사꽃을 내려다본다.
수백 년 느티나무 위를 흐르고 있는 거위 가족 보인다. 빛살 속의 새끼들 이따금 자박질로 유유자적이다. 그러한 어느 새벽 어떤 천둥의 물음표를 가슴에 꽂은 채 아빠 거위 홀로 둔덕에 웅크려있다. 부리를 묻은 깃털 속의 눈석임 물소리 안개를 하얗게 돋운다. 한순간, 아래로 휘어진 목을 하늘로 주욱 뻗은 시선 아득하더니 쫘악 벌린 부리에서 쇳가루 긁는 질문을 쏟는다. 그의 하얀 몸 어디에 그라인더를 들인 건지, 퇴화된 날개의 무거운 쇳소리에 안개 흔들린다.
미세 근육까지 고사한 황감 나무에 새들 소란하다. 꽃눈을 떨친 새들일 것인데 무엇이 이승의 발을 붙드는 것일까. 문득 복사꽃 나무는 물에 비친 시커먼 반쪽을 본다. 혹시 어떤 꽃송이를 상하게 한 날개였을까. 지상은 가능의 세계. 절룩이는 생기(生起)가 닿는 곳이 있겠지. 신념으로 세우는 향기의 신전. 그는 오른쪽을 으스러지게 껴안고는 기우뚱, 혹독한 찬란 쪽으로 발을 내딛는다.
두 발로 날아다니는 산책자들. 깃털 소리가 난다. 걸음걸음 삶이 흐르고 감각이 흐르고 감정이 흐르는 발소리, 깊은 무늬의 소리. 그것은 가족의 기분, 떡잎이 솟을 것 같다. 그래, 결핍의 치유는 결핍의 통증. 그것은 나침판. 한 걸음 두 걸음 신념의 그라인더는 몇 번이고 온몸을 구동하겠지. 지금 그를 돌보는 걸음은 뜨거운 쇳덩이다.
* 서왕모 : 신녀(神女).
강서완 시인 / 밀밭 소나타
눈이 부셔요, 단지 바라보았을 뿐인데요
미소 하나가 천만 햇살로 비추는데요 모퉁이도 뜨거워요 그늘이 빛을 먹어요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이 고개를 들어요 내 안에 청춘이 출렁거려요
웃는 얼굴 수없이 다녀갔지만 그때마다 황폐화되기만 했던 가슴
어떻게 미소 하나가 천만 볼트로 다가올까요 어떻게 천만 줄기가 한 몸이 될까요 내 안에 머나먼 입맞춤이 자라요
바람이 불어요 한 방향으로 흔들리는 국경
열린 적 없던 바위를 열어요 차가운 바위를 열어요 파묻혔던 무릎을 세워요 태양이지지 않는 한,
그에겐들 푸른 잎이 없겠어요? 꽃인들 피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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