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연 시인 / 광장에서
'판도'에서는 울지 말아요 은사시나무 가지마다 붙잡지 못한 시간의 옹이 박혔어요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상처라도 울지 말아요
판도*에서는 잊지 말아요 추락하던 소행성의 잿빛 크레이터들 결빙의 심장을 포획한 빙하코어 속 얼음의 나이테 제 그림자 끌고 가는 몸짓이 구차한 변명일 때 원시의 은신처 거슬러 오르는 살기의 기억 지울 수 있을까
이끼습지를 지나 관목군락에 부는 바람의 遷移 한사코, 대각선으로만 산란하는 빛의 바깥쪽 목도한 적 없는 발원에 벌거숭이 불을 밝히며 오래, 아주 오래 서 있을까 판도에서는 혼자라도 울지 말아요
양해연 시인 / 전지적 목격자 시점 기하학적 무늬들이 출몰한다 은밀하게 포자를 퍼뜨리며 영역을 확장한다 불완전한 잠은 불완전한 상상력을 키우기에 꿈의 경계는 모호하다 무대 위 또렷한 발성에도 흐름은 종종 끊긴다 그들은 유기적이면서 매우 개별적이다 중간 중간 괄호를 열고 닫으며 한 번 더 악센트를 주는 방식으로 마무리 된다 영웅은 약지를 잘라 붉은 글자를 적은 후 손도장을 남겼다 피라미드를 무너뜨린 다이아몬드에게도 태생적 한계는 있다 '빛나지 않으면 태양이 아니듯 인간은 사랑 없이 안 돼'기에 저길 좀 봐! 뗀석기를 만들어 야자열매를 까는 300만 년 뒤편 카푸친원숭이들 무엇을 예감했기에 망설이고 있을까 * 미국 유타주에 있는 8만 살로 추정되는 사시나무 군락. 숲처럼 보이지만 4만 7천여 개의 가지가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
-시집 『종의 선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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