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원 시인 / 빠스각 빠스스각
꽃 속엔 거울이 보고 있었네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네 어둠이 내리면 사라져 버릴 이상한 일이었네 잃어버린 사랑이 와 있었네 목걸이와 루즈와 반지는 바람의 손톱에서 자랐네 그 겨울 흰 눈의 이야기들이 빠스각 빠스스각 쏟아져 나왔네 그녀는 붉은 목소리로 말했네 폭설 속 메아리가 묻히기 전까지, 가슴속 흐르는 물소리가 들렸네 꽃 속엔 거울이 누워 있었네
-시집 <빠스각 빠스스각>에서
김동원 시인 / 존재의 꽃
꽃이 핀다. 무명의 꽃이 핀다. 꽃도 모르고 꽃이 핀다. 한 가지에 어깨를 서로 기대어 피지만 서로 모르면서 피는, 서로 모르면서 아름다운 꽃.
꽃은 모르면서 핀다. 모르고 지면서 모르고 산다. 지는 줄도 모르면서 지지만 피는 줄도 모르면서 핀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살고 있는 꽃은 아름답고 눈물겹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살고 있는 우리네 목숨같이 꽃은 피면서 진다.
꽃이 피고 질 때 꽃은 서로가 속수무책이다. 살지 않을래야 도무지 살지 않을 수도 없고 죽지 않을래야 도무지 죽지 않을 수도 없는, 가엾은 목숨처럼
김동원 시인 / 국화꽃밭 문 옆엔 가을비가 울고 있었어요
국화꽃밭 문 옆엔 가을비가 울고 있었어요
빗물이 하늘을 물고 내려와
꽃밭에 흘러내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 저녁 앞발을 괸 채 죽어있던 어미 고양이
새끼는 빗속에 젖어 날 쳐다보고 있었는데,
국화 꽃밭 속엔 어미가 어둠 속 웅크리고 죽어 있었어요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도연 시인 / 엄마를 베꼈다 외 3편 (0) | 2023.04.23 |
---|---|
김기덕 시인 / 중간숙주 외 1편 (0) | 2023.04.22 |
신경림 시인 / 편지 외 1편 (0) | 2023.04.22 |
이재연 시인 / 평범한 나의 신 외 2편 (0) | 2023.04.22 |
배영옥 시인 / 연꽃 외 3편 (0) | 2023.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