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시아 시인 / 눈꼬리 모든 감정의 꼬리는 눈에서부터 나온다 달콤한 목소리는 착각의 볼륨을 높인다 달달한 표정은 착시의 수위를 높인다 꿈틀거리는 공감각의 오류, 속삭이는 오감의 속임수, 실망과 설렘을 숨긴 채 눈 먼 착각과 착시를 쫓는다 우리는 눈꼬리에서 곧잘 서 말의 두근거림을 줍는다
ㅡ계간 《시인시대》(2022, 겨울호)
금시아 시인 / 툭의 녹취록
도토리 툭 떨어진다 어디론가 굴러가고 싶었다 땅은 알아들었다는 듯 도토리에서 툭, 소리만 가져간다
단풍잎들 떨어진다 아등바등 늙은 손 같았다가 철부지처럼 자꾸 길을 잃는다 귀가 큰 바람은 다급하다
세상의 자국들은 냉정하지만 정작 무심한 쪽은 놓아버리는 쪽이다 벌써 만질만질해져 있다.
떨어지는 것들에는 線의 성분이 있어 하강하는 둥근 눈물자국들은 안다 어떤 깃털처 럼 가벼운 것들도 언젠가는 다 투명한 직선이나 곡선 혹은 사선의 줄에 매달려 떨어진 다는 것을,
푸른 은행잎처럼 툭 떨어진 사람, 지상의 마지막 그의 호흡은 우주의 행성 어디에선가 내뱉는 첫 호흡일 거야 그새 은행잎 떨어진 자국마다 민둥민둥해져 있다
귀를 가만히 기울여보면 시작은
싹이 돋는 순간이 아닌 꽃이 피는 순간이 아닌 잎들이 씨앗들이 떨어지는 둥근 순간이 아닐까 나뭇잎 다 떨어진 나뭇가지에서 대롱대롱 물방울 이파리 파닥거린다
떨어져야 다시 살아나는 시간들, 떨어진다는 것은 어쩌면 호상이겠다
-시집 『툭의 녹취록』, 《시와표현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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