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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금시아 시인 / 눈꼬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4. 24.

금시아 시인 / 눈꼬리

모든 감정의 꼬리는

눈에서부터 나온다

달콤한 목소리는 착각의 볼륨을 높인다

달달한 표정은 착시의 수위를 높인다

꿈틀거리는 공감각의 오류,

속삭이는 오감의 속임수,

실망과 설렘을 숨긴 채

눈 먼 착각과 착시를 쫓는다

우리는 눈꼬리에서 곧잘

서 말의 두근거림을 줍는다

 

ㅡ계간 《시인시대》(2022, 겨울호)

 

 


 

 

금시아 시인 / 툭의 녹취록

 

 

도토리 툭 떨어진다

어디론가 굴러가고 싶었다 땅은

알아들었다는 듯 도토리에서 툭, 소리만 가져간다

 

단풍잎들 떨어진다 아등바등

늙은 손 같았다가 철부지처럼 자꾸 길을 잃는다

귀가 큰 바람은 다급하다

 

세상의 자국들은 냉정하지만 정작 무심한 쪽은 놓아버리는 쪽이다 벌써 만질만질해져 있다.

 

떨어지는 것들에는 線의 성분이 있어 하강하는 둥근 눈물자국들은 안다 어떤 깃털처 럼 가벼운 것들도 언젠가는 다 투명한 직선이나 곡선 혹은 사선의 줄에 매달려 떨어진 다는 것을,

 

푸른 은행잎처럼 툭 떨어진 사람, 지상의 마지막 그의 호흡은 우주의 행성 어디에선가 내뱉는 첫 호흡일 거야 그새 은행잎 떨어진 자국마다 민둥민둥해져 있다

 

귀를 가만히 기울여보면 시작은

 

싹이 돋는 순간이 아닌

꽃이 피는 순간이 아닌

잎들이 씨앗들이 떨어지는 둥근 순간이 아닐까

나뭇잎 다 떨어진 나뭇가지에서 대롱대롱 물방울 이파리 파닥거린다

 

떨어져야 다시 살아나는 시간들,

떨어진다는 것은 어쩌면 호상이겠다

 

-시집 『툭의 녹취록』, 《시와표현 》에서

 

 


 

금시아 시인

1961년 광주에서 출생. (본명: 김인숙)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4년 《시와 표현》으로 등단. 시집으로 『툭,의 녹취록』(시와표현, 2015)과 『입술을 줍다』(달아실, 2020)가 있음. 제3회 여성조선문학상 대상, 제17회 김유정기억하기전국공모전 '시' 대상, 제14회 춘천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