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춘 시인 / 손톱
손톱은 탐욕을 상징한다 손은 사랑을 상징한다 결국 탐욕은 사랑에서 자라고 사랑은 날마다 탐욕을 길러낸다 한 두어 주일 지나면 고양이 발톱처럼 자란 손톱 절제의 손톱깎이로 과감히 잘라낸다 잘 가거라, 나의 분신이여 DNA여 손톱은 허나 손가락을 보호하고 손의 기능을 강화한다 탐욕을 이쁘게 다듬어주는 네일 아티스트도 있지 않던가 손톱이 없으면 사랑이 삭아버리고 사랑이 식어버리면 온몸은 삭고만다 사랑과 탐욕의 양 날개 아래 하루치 노동을 접고 귀가하면 손톱 달 하나 어둑한 골목을 밝히고 저녁 밥상 가에 둘러앉은 새끼들의 손가락 장단 숟가락 소리 오붓한 밥상 가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눈물겨운 손톱들이여 탐욕도 때로는 아름답구나
나병춘 시인 / 오아시스를 찾아서
나비는 날개를 가졌어요 하늘을 접었다 폈다 마음대로 하는 두 개 부채를 가졌어요 한 번 부치면 천둥번개가 치고 남태평양이 춤추며 태풍을 일으키는
나비는 귀를 가졌어요. 하늘 소리와 땅의 소리 골고루 듣고 꽃들의 한숨소리 향내도 듣는 가끔가다 손뼉이라도 치면 꽃들이 환호하며 무도회를 벌이는
나비는 두 잎새를 가졌어요 이른 봄 만물이 고요할 때 새싹 애벌레 꿈속에서 불러내는 희한한 두 개의 톱날을 가졌어요
고치에서의 긴 동면을 끝내고 은근슬쩍 흥부네 박을 타듯 완강한 문을 썰어내는 아무도 모르는 이빨을 가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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