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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나병춘 시인 / 손톱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4. 25.

나병춘 시인 / 손톱

 

 

손톱은 탐욕을 상징한다

손은 사랑을 상징한다

결국 탐욕은 사랑에서 자라고

사랑은 날마다 탐욕을 길러낸다

한 두어 주일 지나면

고양이 발톱처럼 자란 손톱

절제의 손톱깎이로 과감히 잘라낸다

잘 가거라, 나의 분신이여

DNA여

손톱은 허나 손가락을 보호하고

손의 기능을 강화한다

탐욕을 이쁘게 다듬어주는

네일 아티스트도 있지 않던가

손톱이 없으면 사랑이 삭아버리고

사랑이 식어버리면 온몸은 삭고만다

사랑과 탐욕의 양 날개 아래

하루치 노동을 접고 귀가하면

손톱 달 하나 어둑한 골목을 밝히고

저녁 밥상 가에 둘러앉은

새끼들의 손가락 장단 숟가락 소리

오붓한 밥상 가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눈물겨운 손톱들이여

탐욕도 때로는 아름답구나

 

 


 

 

나병춘 시인 / 오아시스를 찾아서

 

 

나비는 날개를 가졌어요

하늘을 접었다 폈다 마음대로 하는

두 개 부채를 가졌어요

한 번 부치면 천둥번개가 치고

남태평양이 춤추며 태풍을 일으키는

 

나비는 귀를 가졌어요.

하늘 소리와 땅의 소리 골고루 듣고

꽃들의 한숨소리 향내도 듣는

가끔가다 손뼉이라도 치면

꽃들이 환호하며 무도회를 벌이는

 

나비는 두 잎새를 가졌어요

이른 봄 만물이 고요할 때

새싹 애벌레 꿈속에서 불러내는

희한한 두 개의 톱날을 가졌어요

 

고치에서의 긴 동면을 끝내고

은근슬쩍 흥부네 박을 타듯

완강한 문을 썰어내는

아무도 모르는 이빨을 가졌어요

 

 


 

나병춘 시인

1956년 전남 장성 출생. 공주사범대 불문학, 외국어교육, 전공. 경희대경영대학원 경영학과 졸업. 1994년 《시와시학》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새가 되는 연습』,  『하루』,  『어린왕자의 기억들』이 있음. 아름다운작가회 회장 역임. 현재 숲명상가로 활동 중임. 현재 <우리 시>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