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주 시인 / 십 년 뒤에 만날 사람
십 년 뒤에 만날 사람 있다
낮에는 앞산 보면 되고 날 저물어 산 볼 수 없는 캄캄한 밤엔 그 사람 생각
생애 단 한 번의 순간을 호명하지 못하고 꽃을 지난 다디단 단내의 그리움으로 맞이해야 할 밤들
그 사람으로 인해 고쳐질 그 사람으로 인해 깊어진 병
그 사람을 떠올렸다 함께 떠오른 생각 그 사람을 잊었다 함께 잊어버린 생각 지금, 그 시간을 다 찾을 순 없어도
열일곱 여학생보다 마흔이 더 아름다운 그 사람
십 년 뒤에 만날 사람 있다
-시집, <물의 식도> 천년의시작
이승주 시인 / 어둠을 생각한다
어둠이 숨 쉬는 아늑한 방. 어둠의 젖내가 좋다. 어둠의 배 위에 누워 창밖의 어둠 속으로 스미는 눈송이처럼 어둠 속으로 녹아든다. 물 속 같은 어둠, 어둠은 지상과 지하가 없어 융융하고 깊다. 탁자 밑이나 종지 밑, 박스 속을 빛은 다 밝히지 못하지만 눈을 감으면 어둠은 빛을 다 덮고도 남는다. 활짝 핀 빛의 형체가 흩어지고 사라진 뒤 어둠의 고요 속에 깃든 어둠의 소리들이 눈을 뜨고 걸어나온다. 빛의 소란함과 함께 태어났을 어둠의 소리. 소란함과 기척에 귀를 모은다. 태초의 어둠 속에서 태어나 어둠 속으로 스며든 태초의 빛을 생각한다. 태초의 어둠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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