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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영심 시인 / 대숲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26.

김영심 시인 / 대숲

 

 

쭉쭉 뻗은 대나무의 비결을 아는지

늘 그 속은 비어

오욕으로 가득 찬 그 누군가

대숲에 들어갔다간 숲 밖으로 던져지지만

 

마음을 비우고 대숲에 들면

몸이 한없이 가벼워집니다

 

바람 불 때마다 온몸으로

그 누가 우는소리

 

대숲으로

대숲으로

 

푸르름과 올곧음을

보러 갑시다

 

푸른 댓잎에 귀를 씻고 옵시다

 

-시집 <북치다, 장구소리 들리다>

 

 


 

 

김영심 시인 / 북치다, 장구소리 들리다 · 1

 

 

둥둥 북을 치듯 나를 친다

내 몸에 담겼던 소리들이

북채를 따라 튀어나온다

오래 묵혀둔 생각을 되새김질 하면

어디선가 허공을 치며 날아오는

저 소리 떼

 

누군가 채를 잡으면 북과 장구가 따라 울고

바람에 실려 오는 울음소리를

마음이 먼저 받아 읽었다

둥둥 소리가 내 몸을 치고

몸에서 빠져나간 소리들은

허공을 찢으며 사라졌다

 

끊임없이 솟아나는 생각의 파문들

몸의 나이테를 따라 돌며

내 슬픔도 몸집을 늘렸다

아무리 채를 휘둘러도 소리들은

몸에 갇혀 나오지 않았다

조금씩 나누어 울며

홀로 흐느끼는 법을 배우며

내 북은 점점 자랐다

 

소리가 빠져나간 빈자리

누군가에게 몸 기대고 싶은 것들이

다시 내게로 와서

텅텅 나를 두드린다

 

신명나게 북을 치고 돌아서면

뿔에 받힌 듯 온몸이 아프다

 

세상에서 가장 큰 북은

내 속에 있다

 

 


 

 

김영심 시인 / 북치다, 장구소리 들리다 · 2

 

 

오늘 두 귀는

얼마나 소란했던가

마음을 닫으면 귀도 닫히련만,

 

슬픈 소리가

낯선 공기방울로 떠돌다 들어와

나를 휘젓는다

창가에 머물다 사라지는 한낮의 봄빛 같은 소리

생은 얼마나 빠르고 가벼운가

 

보지 말아야 할 것

가지 말아야 할 곳

 

귀는 입보다 많은 말을 알고 있다

생의 반이 구겨지고

이제 겨우, 나는 듣는 법을 배운다

 

-시집 <북치다, 장구소리 들리다> 2009.

 

 


 

김영심 시인

단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 1995년 "心象"으로 작품 활동 시작. 사)한국소설가협회회원. 사)한국문인협회회원. 현)한강문학사무처장. 시와창작작가회고문. 시집: <북치다, 장구소리 들리다>. 공저: 발칙한 상상, 들리지 않는 외침, 서둘러 떠나는 꽃잎처럼 외 다수.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