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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창민 시인 / 기도를 위한 시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27.

강창민 시인 / 기도를 위한 시

 

 

맘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기도가 무슨 소용 있으랴

강가에 홀로 떠 있는 고깃배

어부가 없으면 떠나지 못한다.

수초 속에서

낚시를 기다리는 은빛 물고기들

아침은 물살 위에 흘러가고

빈 배는 강둑 근처에서 서성거린다

 

기도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그 말이 무슨 소용 있으랴

배는 헛되이 맴돌다가

어둠 속에 묻힌다.

물 위로 걸어가는 이 보이지 않고

물 아래 그림자만 젖어 있다.

물안개 강을 덮어

저 건너편에 빛난 곳

다만 희미할 뿐

 

그대 안에 있지 않으면

말이나 기도가 무슨 소용 있으랴

말이나 기도 속에는

참 기쁨이 없으므로

무섭게 바람 불면 무섭고

생명줄 손끝에서 번번이 놓치리니

빈 배는 늘 비어 있고

어둠은 때맞추어 찾아올 뿐.

그대 안에 있지 않으면

배도, 어둠도 그저

풍경으로 짙어지리라

 

-시집 <작은 풀꽃처럼 주저앉아> 중에서

 

 


 

 

강창민 시인 / 너는 이제

 

 

너는 이제 무서워 하지 않아도 된다.

가난도 고독도 그 어떤 눈길도

 

너는 이제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조그마한 안정을 얻기 위하여 견디어 온 모든 타협을.

 

고요히 누워서 네가 지금 가는 곳에는

너같이 순한 사람들과 이제는 순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다 같이 잠들어 있다.

 

 


 

 

강창민 시인 / 너

 

 

눈보라 헤치며

날아와

 

눈 쌓이는 가지에

나래를 털고

 

그저 얼마동안

앉아 있다가

 

깃털 하나

아니 떨구고

 

아득한 눈 속으로

사라져 가는

 

 


 

 

강창민 시인 / 꽃씨와 도둑

 

 

마당에 꽃이

많이 피었구나

 

방에는

책들만 있구나

 

가을에 와서

꽃씨나 가져가야지

사라져 가는

 

 


 

강창민(姜昌民) 시인

1947년 경남 함안군 출생. 연세대 국문학과, 동대학원 졸업(문학박사). 1976년 [현대문학]에 <나무꾼의 노래> <투우> <표류자여 표류자여>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74. 연세문화상 '시부문' 수상. 시집 <비가 내리는 마을>. 1992년 서경대 문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2년 한국문학연구회 회장. 1992년 한마음문화연구원 이사, 한마음문화연구원 부설 한마음수련원 원장. 제15회 박두진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