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선정주 시인 / 겨울 사유상(思惟像)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30.

선정주 시인 / 겨울 사유상(思惟像)

 

 

겨울나무를 대하며

冬眠한다고 하였나

 

입가엔가 눈가엔가

미소는 띠지 않았을 뿐

 

찬바람 혹한을 견디며

깊은 思惟에 든 것을

 

한 소식을 들었다 함은

참 안이한 解法이다

 

엄동의 눈바람이

에이고 파고들수록

 

表皮가 감싸고 감싸

응결이 되는 思惟

 

 

이다지 越冬이 길어

숨이 얼어붙을 것 같네

 

아무도 손 내밀어

체온을 나누지 않고

 

혼자서 하늘을 바라며

産日을 채우는 나무.

 

-새시대시조 2006년 여름호

 

 


 

 

선정주 시인 / 손질

 

 

추위를 견디게 한

투박한 한 벌 겨울 옷

내 육신만이 아닌

목숨을 지킨 것이니

어쩌면 배어있는 체취

혼백이라 아니 하리.

시련의 날에

정인도 변하여 떠났지만

허물없이 파고 든

혼연일체였던 장막

날 받아 정히 손질하여

고향처럼 보리라.

 

 


 

 

선정주 시인 / 겨울 중량천

 

 

1

물이 경계를 범하면 천리 옥야(沃野)가 열리는

상고(上古)의 아침처럼 문명을 이지 않고

이제는 강이 감싸지 않아 메마르고 있는 도회.

 

2

꿈 많던 소년시절 생각해 낼 수 없는

아무렇게 찢어 놓은 종이같은 구름에 마지막 빛을 남기고 도회 너머로 노을이 지고 있을 뿐

중량천 잡초대궁 끝 몸을 낸 겨울 바람.

 

3

꽃도 몰랐거니와 지성도 미치지 못한

사진기를든 소녀 몇이 겨울과 겨울 사이, 이상나동을 맞추어 운치를 찍어내고

아무도 강을 내하여 계절을 묻지 않았다.

 

내 이 천변(川邊)에 흘러 와 질펀한 불멸을 보노니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기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異邦)에 있어서 어찌 여호아의 노래를 부를고, 예루살램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 손이 그 방조(方操)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램을 기어지 아니 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 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 지로다.

 

용하다 제 노래 간수한 민족 도저한 강이 된다.

 

 


 

선정주(宣廷柱) 시인 (1935~2012)

1935년 경남 고성에서 출생. 부산 고려신학 졸업. 명예신학박사. 1970년《시조문학》등단. 한국문인협회 이사 역임. 한국펜클럽 자문위원.《현대시조》창간 및 주간. 律 시조문학 동인. 서울 성림교회 목사. 현대시조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수상. 시집 『겨울 靑山圓』 『겨울 중랑천』, 『겨울 삼십년』 등 6권. 2012.10.23 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