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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왕노 시인 / 나는 애월로 너는 이니프스리로

by 파스칼바이런 2023. 6. 1.

김왕노 시인 / 나는 애월로 너는 이니프스리로

 

 너는 이니스프리로 가거라. 그곳에서 오두막집을 짓고 아홉이란 콩밭을 일구고 꿀벌 한 통을 키우든지

 나는 애월로 가리라. 그곳의 오름에 움막 짓고 달집을 태우며 유채꽃 노란 날

 말똥냄새 나는 진한 사랑으로 망아지를 낳는 한 쌍의 말을 기르리라.

 

 너는 이니프스리의 아침에 풀밭에 이슬로 방울방울 맺히는 평화로운 날을 보내며

 그간 메말랐던 네 문장에 물꼬를 트듯 푸른 하늘을 끌어들여도 좋고

 나는 애월에서 누대로 이어온 할아버지 말씀에 따라 천군만마를 기르려고

 날마다 말발굽을 갈고 마방에서 한라산에 별이 떨 때까지 일하리라.

 

 이니프스리 한밤중은 온통 흐릿한 빛, 대낮은 보랏빛, 저녁은 홍방울새 날개로 가득하나

 애월의 한밤중은 밤새의 붉은 울음, 대낮은 끝없이 펼쳐진 에메랄드 빛 바다

 저녁은 이어도 가자라며 물미역 같이 일렁이는 노래

 

 너는 일어나 이니스프리로 가라. 그곳엔 호수물이 나직나직 호숫가를 휘감는 소리

 나를 애월로 오라는 전갈 같은 뭍으로 훨훨 휘날려오는 꽃비 소리 들으며

 네가 이니프스리로 떠났다는 소문을 날마다 기다리고 있으니

 네가 이프프스리로 갔다는 전갈이 오면 나도 애월에 왔다는 전갈을 보낼 테니

 

격월간 『엄브렐라』 2023년 봄여름호 발표

 

 


 

김왕노 시인

1957년 경북 포항 동해 출생. 공주교대 졸업. 아주대학원 졸업. 199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꿈의 체인점〉으로 당선. 시집 『황금을 만드는 임금과 새를 만드는 시인』 『슬픔도 진화한다』 『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 『아직도 그리움을 하십니까』 등이 있음. 2003년 제8회 한국해양문학대상, 2006년 제7회 박인환 문학상, 2008년 제3회 지리산 문학상, 현재 웹진『시인광장』 편집주간, 시인축구단 글발 단장, 한국 디카시 상임이사, 한국시인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