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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권 시인 / 아픈 책
내 안에는 낡고 아픈 책이 많다 밤에 꺼내 읽는 몸은 책이다
의과대학에 시신기증을 하고 나쁜 꿈이 사라졌다
한 살 폐렴을 앓았다 폐에는 어머니의 겨울일기가 새겨 있다
위가 헐은 흔적이 있네요
일곱 살에 배가 아팠다 할머니 손에 자랐다 집과 학교 사이 낮과 저녁 사이 엄마는 산이 되고 하늘이 되고
몸은 낡고 아픈 책이다 위에서 할머니가 불러준 파랑새가 나왔다 하얀 옷을 입은 의대생들이 나를 둘러싸고
군데군데 찢어지고 헤진 페이지가 다음 페이지를 펼치고 내 안에는 낡고 아픈 책이 잠들어 있다
-시집 '길에는 노랑이 피고' 에서
김권 시인 / 꽃들의 손목
네가 봄비를 젖은 날개에서 꺼내고 스치는 바람을 그리다가 아픈 사람처럼 펜의 잉크를 쏟았다 허벅지 뼛속까지 번진 무늬를 매만지다가 나는 오늘도 어쩔 수 없이 네 말에 웃고 만다 뒤척이다가 겨우 잠이 들고 누군가의 함성에 깨어난다 잠 속에 들었던 노래와 박수는 들꽃들의 가을 음악회였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새들의 젖은 날개가 마르는 사이 잠들고 깨어난 들꽃을 바라본다 꽃들의 손목을 잡고 네 곁에 잠든다 네가 뒤척일 때마다 네 아픈 무늬가 손에 번진다 -시집 『꽃들의 손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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