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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벼리영 시인 / 오토튠 외 5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8. 28.

벼리영 시인 / 오토튠*

 

 

가끔은 내가 아닌 소리를 내고 싶다

교묘히 포장이 된 삶이면 좀 어떠랴

그토록

저렸던 소리 비음 모아 버린다

 

건조한 파열음도 촉촉이 말랑하다

풍부한 성량으로 음치는 회복된다

사랑도

조절 가능한 오토튠이 있다면

 

설움은 자동으로 미소로 바뀌겠지

내 삶의 군더더기 사라져 버리겠지

숙명은 짊어질 거야

다시 설 수 있겠다

 

* 가수의 잘못된 음정을 자동으로 수정하는 플러그인

 

-《시조시학》 2023, 여름호

 

 


 

 

벼리영 시인 / 바람의 진술

​사방은 벽뿐이다

출구 사라진 골목

인간 더미 속에서 더미(dummy)가 되어간다

지독한 폐소공포증이 도처에 깔린다

빛이 마비된 벽 속 휘청이는 도미노

골목의 아우성이 걸려있는 허공 모서리 허공은 굉음을 안고

숨소리를 삼킨다

가뿐 숨 밷어 내는 일탈을 꿈꾸는 일

직선이 곡선 되는 부정합의 어울림

축제는 미완의 날개

처참하게 구겨진

 

 


 

 

벼리영 시인 / 들꽃 여인

 

 

오지에 집을 짓고 샘물을 퍼 올렸지

고지를 향한 집념 마침내 깃발 꽂고

세속을 등져 버렸네

바람따라 산다 하네

 

피안이 따로 없어 여기가 천국이지

코로나 얼씬 못해 들꽃의 함박웃음

뜨락을 그리는 여인

한 폭의 꽃 앉았네

 

-제5회화시조집 <들꽃여인>표제시

 

 


 

 

벼리영 시인 / 담쟁이 벽화

 

 

너흰 벽을 기어오르지

 

바람처럼 맴돌았던 내 젊은 날의 물살을 보는 것 같아

 

초록이 붉은 시간을 만나면

성공이라 불러도 좋아

꿈이 낡았다면 수선이 필요하지

조금만 더 힘을 내렴

 

속 끓인 시간만큼 입속에선 흙냄새가 날 거야

지워진 발자국과 무너진 꿈은 장벽이 아니란다

 

성공은 잔잔한 물거품과도 같은 거야

 

길은 붉게 타올랐지만, 어느 날 그조차 물거품 된다 해도 낙담하지 말 것

 

어느 낡고 오래된 벽엔,

삭아 버린 뼈 내 기도 붉게 붉게 자라나 또 기워갈 테니

 

 


 

 

벼리영 시인 / 종이상자

 

 

1

단단히 채워진 몸 주춧돌 되었다가

헐거워 뒤뚱이던 벼랑 끝 아찔하다

생물을 날로 삼킨 날

속 터질까 두렵다

 

당신의

중독증이 내면에서 반짝이면

더께 한 내 몸에는 딱지 훈장 빛난다

주소가 채근하는 어둠

달빛 밟고 달린다

 

멋지게 포장되고 명품으로 채웠어도

끈적한 투명 띠로 겹겹이 봉인된 생

한 커플 벗기고 나면

불태워 없어질 몸

 

2

길가에 버려졌다 한숨 소리 들려오고

리어카 실려 가며 노숙마저 포개진다

각지고 모났던 이승, 접히고 접히었다

 

격동의 시간 견딘 끝은 또 다른 시작

노숙자 이불 되고 길냥이 요도 된다

내 몸은 죽어서 둥글어진

두루마리 화장지

 

-제4회화시조집<종이상자>표제시

 

 


 

 

벼리영 시인 / 새벽

 

 

밤사이 말랐던 눈 동살에 깜박이네

 

어제의 오늘에는 첫눈이 내렸는데

멍하니 허공만 쥔 채 피우지 못했네

 

오늘은 마당을 더 쓸어야 할 것 같아

 

잠들지 못한 나무 우수수 벗어내고

마지막 한 잎 마저도 미명속에 떨구네

 

하루를 깨우는 손 에너지 가득한 빛

정성껏 마름질해 소중히 입혀야 해

 

바톤을 넘겨 주면서

흰빛으로 물드네

 

-제4회화시조집 발췌

 

 


 

벼리영 시인

전남 여수 출생. 본명: 이영숙. 시조시인, 화가. 아동문학가. 국립 경상대학교를 졸업. <월간문학> 시조부문 신인상 수상. 고운 최치원 문학상 본상(시조). 2019년 한국시조작가상, 2019년 <시학과 시> 시 공모상 대회화 시조집 <더 맑은 하우스> <시조를 그리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시학과 시' 작가회 부회장. 한국시조문학진흥회 회원. 대한미술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