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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조성순 시인 / 뒷모습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9. 12.
조성순 시인 / 뒷모습

조성순 시인 / 뒷모습

 

 

앞모습은 밝더라도 약간은 경직되어 있고

자연스럽게 보여도 카메라를 의식하고 있어

모두 두껍거나 얇은 가면을 쓰고 있다.

 

눈만 마주치면 환하게 미소 짓는 서양 사람들과 달리

난 웃어도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

오랫동안 험한 표정으로 살아온 사람같이

금 가고 어색한 표정 속에

내 현주소가 있다.

 

뒷모습은

누구나 쓸쓸한 것

솔직한 내면이

고요한 호수에 비친 산 그림자같이 반영된다.

 

뒷짐 지고 먼 산 보던 아버지가 이해될 무렵

주변은 조금씩 마른풀 모양 색이 바래진다.

 

오래 살수록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하는데

누군가 내려준 숙제를 하러

구부정한 어깨로 하오의 길을 가고 있다.

 

 


 

 

조성순 시인 / 목침

 

 

1908년 무신년(戊申年) 동짓달 초닷새, 감나무가 많은 첩첩 두메에 한 사내아이가 나다.

1910년 나라가 웃음을 잃다.

1919년 아우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이 방방곡곡 들불로 번지다.

1923년 세는 나이 열여섯, 순흥 배다리에서 오얏꽃 같은 색시와 청사 초롱을 밝히다.

1929년 인생에 주춧돌을 놓다. 큰아 태어나다.

1933년 딸년 나다. 이름은 짓기 뭘해 그냥 본관 횡성(橫城)으로 호적에 올리다.

1945년 나라가 저들의 굴레에서 벗어나다. 사물이 옛 빛을 회복하다.

1950년 생각이 달라 남과 북이 상잔하다.

1951년 농림고보 나온 막내아우로 인하여 계수씨는 감옥에 가고, 조카 진국과 진원, 질녀 정자가 서울에서 장호원을 거쳐 찬샘골로 찾아오다. 진국이 열한 살, 진원이 여덟 살, 정자가 다섯 살이다. 무명실로 주소를 바느질한 윗도리를 걸치고 육백 리 길을 걸어오다.

1953년 막내아우가 행방불명되다.

1965년 시집간 딸년이 산후통으로 가다. 큰아가 슬피 울며 대숲에 가서 피를 토하다.

1967년 정미년(丁未年) 시월, 대들보 무너지다. 가슴앓이하던 큰아가 세상을 뜨다.

1972년 남과 북이 갈라선 뒤 처음으로 통일에 대해 함께 성명하다. 행 방불명된 아우가 북에 있다면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다.

1983년 계해년(癸亥年) 여름, 아내가 시난고난 앓다가 유명을 달리하다. 초상 때 비가 많이 오다.

1992년 막둥이에게서 난 손자 둘과 손녀가 동해고속국도에서 변을 당하다. 살아가는 게 날로 죄가 되다.

2007년 정해년(丁亥年) 동짓달, 생일을 사흘 앞두고 고락(苦樂)을 함께해 온 물건과 작별하다. 염할 때, 고무 밴드로 묶은 비닐에 주민등록증 과 사만원 남기다.

 

 


 

 

조성순 시인 / 상인想人하다

 

 

예전에 황하 중하류 지역에 코끼리가 많았다.

하남河南지역을 줄여서 예豫라 부르는데

예豫는 코끼리가 많았다는 전거典據다.

순舜은 코끼리 사냥꾼이었다.

코끼리를 잡아 길들이는 일을 잘했다.

그래서 왕이 되었다.

위爲는 길들인 코끼리가 일을 한다는 상형이다.

기후가 변해서 황하 주변에 코끼리가 사라졌다.

어른들 말씀을 듣고 아이들은 사라진 코끼리를 생각했다.

상상想象이다.

아프리카 수코끼리 상아를 사람들이 좋아했다.

백 년 동안 사람이 탐욕을 보아온 수코끼리들은

스스로 어금니를 자라지 않게 했다.

사람이 사라진 행성에서

어른 코끼리가 후손들에게 말한다.

예전에 사람이란 동물이 살았다.

그 동물은 욕심이 끝이 없어서 자멸했다.

상인想人이란 말은 그래서 생겼다.

어린 코끼리들은 늙은 코끼리 말씀을 듣고 상인想人한다.

 

-시집 『왼손을 위하여』에서

 

 


 

 

조성순 시인 / 홍어

 

 

첫사랑엔 깊은 바다 냄새가 난다

기억의 밑바닥에 움츠리고 있다가

융히 부상하여

왜 나를 돌아보지 않느냐고 닦달하는

낙동강 하구 모래톱 같은 날들이 흘러도, 흐르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눈 비비고 부스스 일어나

도끼눈 뜨고 흘겨보는 진드기여

태생부터 달랐다 두메에서 나고 자란 나와

비 오는 날 흙탕물 질펀한 인사동 어느 골목길이었던가

술 귀신이 데려온 느닷없는 입맞춤이여

코 막고 엉겁결에 넘어버린 선이여

그렇게 비린내와 함께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두부모는 잘라져도

기억은 칼이 감당할 수 없었다

사라진 듯하다가 돌아오고

쓸려 간 듯하다가 밀려왔다

비라도 부슬부슬 내리면

첫사랑은 오묘한 향기를 풍기고

나는 하릴없어

너를 만나러

얼큰한 첫사랑을 뵈러 간다

 

 


 

 

조성순 시인 / 여기 내일도 오리라

 

 

아, 시원함이여

밤새 터널을 지나 쏟아지는 황토여

긴 협곡을 구비돌아

시인 조성순

분출하는 하양 물줄기여

 

비움의 가벼움이라

나눔의 배려는

조건 없이 내주는 보은인가

 

여유로운 쉼은

근심을 푸는 곳이라고

울 엄마 가슴처럼 안락함을

내 아버지 어깨처럼 안전한 여기

 

황토여 하양 물줄기여

삶의 행복이란 배려만 던지고

비우고 간 자국은

가벼운 명상 화열(和悅)의 공간이다

여기, 내일도 오리라

 

 


 

조성순 시인

경북 예천 출생.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석사과정은 현대문학, 박사과정을 고전 산문 전공. 2004년 《녹색평론》에 〈애기복수초〉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문학나무 신인상 수상, 교단문예상 운문부문 당선, 시집 『목침』 『가자미식해를 기다리는 동안』 『그리고 나는 걸었다』 『가늠 돌』 『왼손을 위하여』 『작은 인간 큰 우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