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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시인 / 꽃이 피는 너에게
사랑의 시체가 말했다
가장 잘 자란 나무 밑에는 가장 잘 썩은 시체가 누워 있다고
가장 큰 사랑의 눈에는 가장 깊은 슬픔의 눈동자가 있다고
봄나무에게서 꽃이 피는 너에게
-시집 <외박>에서
김수복 시인 / 산울림 -산협山峽의 오후午後」
저 하늘 광장에 그대를 사랑하다고 소리치지만 구름은 내 심장을 거두어가네 그대의 그림자마저 사라져버리네 내 노래는 오히려 젊은 산울림이 되었네 그대를 잊을 수 없다고 소리치며 이산 저산을 떠돌고 있다네
김수복 시인 / 대답이 없는 날들 -「산울림」
산울림, 저 혼자 들었다 아무리 소리쳐도 대답이 없는 어디에서도 누구에게서도 사대의 목청은 들리지 않는다고 산울림은 저 혼자 울었다 울고 울었다 밤새도록 울었다
김수복 시인 / 서풍이 되어
내 모든 걸 너에게 바친다 내 말의 뿌리도 내 말의 흙도 내 말의 메마른 가슴 내 말의 풍요한 사랑도 그 목을 바친다 꽃을 피우지 않고 바람이 되어 바친다 재를 피워 다시 꽃을 바친다
김수복 시인 / 꽃밭
꽃밭 하나를 갖고 싶다. 힘이 자꾸 빠지는 흐린 봄날에는 작은 꽃밭 하나만이라도 갖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 이리저리 벌떼들이 잉잉거리는 오후 바람이 불어와도 흔들리지 않는 작은 꽃밭 하나를 갖고 싶다. 물을 뿌리고 희망을 키우는 절망하지 않는 작은 꽃밭 하나를 흐린 봄날에는 갖고 싶다.
김수복 시인 / 어린 나무 옆에서
비가 그쳤나 보다
키가 얼마나 컸나
어디 보자
멀리 눈을 뜨고
정정당당 뿌리를 내리고
밖은 두려워 마라
-『불교신문』 2023.06.09.
김수복 시인 / 촛불
꽃잎처럼 뿌린 눈물로 아닌 옷깃속으로 흘러 들어 제 몸 적시는 하얗게 얼어서 떨며 타는 하얀 불꽃
한살이를 오롯이 하나 대문에 제살 사뤄 녹여서 쌓는 통원의 탑
봉우리 감히 못 터뜨린 하얀 얼음꽃
김수복 시인 / 나머저리
싸늘한 눈초리에 부레 짤린 물고기 가라앉아 떠나가려다
나머저리 사랑은 배냇병 혼나면서도 또 바람 붙들고 사랑하겠노라고 사랑해도 되냐고 사랑은 불치병 머저리가 앓는 병
그러나 완치되고 싶지 않는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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