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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권도중 시인 / 억새꽃처럼 외 6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10. 28.
권도중 시인 / 억새꽃처럼

권도중 시인 / 억새꽃처럼

 

 

간절함 다스려 참아야 함을 압니다

억새꽃처럼 다 날려 보낸 지난날이

허물과 후회만 남긴 언덕으로 있습니다

 

다시 알리고픔을 용납할 수 있을까요

못 울린 북소리 숨기어 남겼어도 이제

세상에 넓은 어느 공간에 집 하나 있습니다

 

이제 젊고 늙음이 다름없는 사이인데

저쪽에 피어 생생한 세상에서 슬픈 꽃

이 죄업 그대 생각이 억새꽃 같습니다

 

-시집 『비어 하늘 가득하다』 에서

 

 


 

 

권도중 시인 / 가을비

불붙어 타는 정점 기슭마다 비가 오다

빈 들에 갈증 남긴 피부마저 젖고 있다

외롭던 우리네 방이 젖은 만큼 밝은 등

다 지고 나서 보면 눈물마저 마친 맑음

언어의 문을 닫아 침묵으로 부는 자락

세상이 고운 한 철이 씻겨지며 보이다

눈빛 음정 별이 깊고 이제사 낮은 음성

​여인은 벌써 와서 등화관제를 만들다

​이 비가 끝나고 나면 그 겨울이 되리라

​​

한 생각 타는 마을 낙엽 져 닿아간 강

​그 슬기 더운 곳에 긴 밤이 창이 오다

​비로소 네 여행에도 젖은 만큼 알리라

 

 


 

 

권도중 시인 / 코스모스 2

달무리 서린 안부에 이마를 든 코스모스

​살 속 맑은 물살로 겹겹이 씻기는 파문

​그날의 가을 편지는 끝끝까지 떠나고

잎잎이 꽃빛깔로 혼은 가지어도

가을이라 강이 있네 흔들리는 아픔의 꽃

이 침묵 닿는 곳마다 웃고 섰는 네 표정

 

 


 

 

권도중 시인 / 그늘

 

 

나무도 열매 맺어 익히느라 땡볕이다 구월 따가운 들녘 나락도 저리 견딘다

 

너거들 그늘로 산다 큰 그늘아 작은 그늘아

하루 해도 그늘을 끌며 집으로 가는 풍경, 속 쎅이는 자식이 그 그늘이 너어는 있나

마음 속 밭고랑으로 짧은 풋잠 저녘답

 

 


 

 

권도중 시인 / 비어 하늘 가득하다

 

 

없어도 여기에서 비어 하늘 가득하다

 

구름이 바람 따라 수위水位 아래로 잠긴다

 

한 방울 물감이 구절초 핀 산천에 풀린다

 

당신이 집을 두고 바람으로 지낸다

 

편지를 써서 버린다 문득 바람 베인다

 

입술이 들꽃으로 앉아 길게 그늘로 간다

 

 


 

 

권도중 시인 / 섬

 

 

그리운 마음 물결쳐 간다

잔잔한 햇살 반짝이는 해변

여기 거기까지 가 앉아 적시다가

오는 물결 밀리어 섬이 된 거지

 

구름으로 푸르게 풀리어 간

세월을 찾아오는 질환이

불변의 거리라 정의한다

연육교도 버리고 최첨단버그선도 이자뿌고*

통통배 옆으로 그리운 섬 간다

 

이 섬 그 섬 향한 섬이 된 소유에서 벗어난

밀려가는 그리운 마음이여

언제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거리는 안전이니까

썩지 않는 바다물결 씻겨지는 것이여

 

*: 잊어버리고, 재켜두고, 의 사투리

 

 


 

 

권도중 시인 / 생명이 순할수록

 

 

생명이 순할수록 자주 멍이 들듯이

 

사람도 순할수록 꽃처럼 멍이 든다

 

몸속에 쌓아둔 꽃은 무엇으로 못 지운다

 

잘 살아 아프지 않고 꽃지고 철이 가도

 

못잊는 세월에는 다친 디엔에이가 있다

 

상처도 깊은 사랑은 찾아가는 힘이 세다

 

 


 

권도중 시인

1951년 경북 안동 출생. 중앙대학교예술대학원문학예술학과와 서울대학교행정대학원국가정책과정 수료. 1974년 이영도 추천으로 《현대시학》(3회천료)을 통해 등단. 시집 『낮은직선』 『네 이름으로 흘러가는 강』 『혼자 가는 긴 강만으로는』 『비어 하늘 가득하다』. 〈現代律〉〈동인과 회귀선문학동인회〉으로 활동. 현재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오늘의시조시인협회, 회원이며 한국시조시인협회 감사. 전일승산전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