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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호일 시인 / 새가 되는 법 외 6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12. 10.
최호일 시인 / 새가 되는 법

최호일 시인 / 새가 되는 법

 

 

 매일 하늘을 날면서 밥을 해 먹을 것 새의 목소리와 성격으로 수술하고 천장과 바닥을 없애 버릴 것

 

 일주일에 두 번 날갯죽지에 얼굴을 묻고 너무 캄캄해서 울 것 아직 태어나지 않은 듯 잡았던 손을 놓고 흔들며 인간의 마을에서 잊혀 질 것

 

 새장을 만들어 놓고 새장을 부술 것 하얀 새의 천 번째 울음소리로 얼굴을 씻고 하얗게 될 것 어둠이 묻어 있는 바람을 끌어다 덮고 자면서 오월이 오면 오월을 등에 지고 다닐 것

 

 아침이면 새소리에 잠이 깨 새의 그림자를 만들어 놓고 빠져 나갈 것 시를 쓰고 짝짝 찢어서 바람에 날린 후 가장 멀리 날아 갈 것

 

 자신이 새인 줄 모르고 새처럼 날아가다가 깜짝 놀랄 것

 

 냄새 나게 새는 왜 키우니 하고 돌을 던지면 맞아서 죽을 것 죽어서 매화그림 속으로 들어갈 것

 

 


 

 

최호일 시인 / 가면놀이

얼굴이 없는 사람들은 빛으로 된 가면을 쓰고 있네

빛이 없는 사람은 얼굴을 처음 본 사람 것으로 바꿔 끼우네

 

마음은 마음에 드는 도둑고양이의 성기로 바꾸는 게 좋지

고양이가 없는 마을은 셋째 주 일요일의 첫 번째 구름

들국화의 다섯 번째 꽃잎을 함부로 들춰봐

 

비가 내리면 한 손을 자르고 우산을 써

웃음은 구름 뒤에 감추기 좋은 가장 안전한 우산

우산이 아니고 위선이라 발음해

비가 오는 날은 우산적이지

 

밤의 표지는 팔만 장의 어둠으로 만들어졌고 어둡다고 쓰여 있지

페이지를 넘길 때 마다 커다란 빵을 훔치는 방법 같이 즐겁고

편견처럼 아름다운 정면을 가졌지

 

노을이 백 년 동안 이 골목길을 지나갈 땐 왜 눈물이 나죠

 

이 거리도 저녁의 냄새가 어두운 가시에 찔려서 태어났네

저녁이 스타킹을 벗으면 한 번 더 어두워지지

더 어두워지기 위해서는

 

발등으로 불이 떨어지면 발등을 오래 만난 사람처럼

친절한 불로 오해할 것

 

 


 

 

최호일 시인 / 손에 관하여

 

손은 몸의 맨 처음 시작이며 그 맨 끝에 있다

 

처음 만날 때 악수했던 손은 오른손이고 헤어질 때 흔들며 사용했던 것도 오른손이었다

 

그 사이, 당신을 안았던 것도 그 손의 짓이었다

 

매 순간을 축으로 달아나려고 하는 동작과 깊게 끌어안으려는 마음의 궤적 때문에 우리 몸은 둥글다

 

나는 사실 기성품인 이런 손을 매일 씻고 말려서 가지고 다닌다 심장과 혀 사이에 와 박혀 모든 거리를 기억하는

 

 


 

 

최호일 시인 / 허공

 

 

허공을 걸어 다닐 수 있다면

 

모든 계단은 지워지고

계단을 청소하는 사람들도 실직할 확률이 높다

 

5번과 6번 계단 사이에 넘어진 저 여자도

나도

조만간 사라질 것이다

 

하늘을 날던 새가

어느 계단에 부딪쳐 울 것이다

 

우린 왜 아빠가 없어요?

어린 새가 물었다

하늘 모서리에 부딪쳐 죽었단다

너도 허공을 조심해라

 

 


 

 

최호일 시인 / 머리카락이 자라는 시간

 

 

그곳에서 코고는 소리가 난다 심하게 가래 끓는 소리도 섞여있다

벗은 여자가 들어있고 밤이 조금 전 보다 조금 더 깊었고

머리카락이 조금 더 길어지는 밤이다

그는 귀가 없는 사람이 되어 정상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된다

코와 입과 눈과 머리통이 눈으로 변해버린 사람이 된다

갈비뼈를 새것으로 빼 여자를 만들어야하는 사람이 된다

뱀이 제 꼬리를 대가리가 눈치 채지 못하게 조금씩 먹어치우듯

시간이 제 몸을 삼키고 있는 걸 못 보는 사람이 되고

커다란 태아처럼 벗은 여자의 몸이 조금씩 벗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된다

그녀는 드디어 배경이 사라진 숲을 배경으로 웃고 있다

코와 눈과 음부를 더 크고 아름답게 찢고 싶어 웃고 있는 여자다

모든 어둠은 불빛에서 태어나듯

그는 밤을 새것으로 바꿔야 되는 사람으로 환원된다

코와 가래침을 뱉지 않고 있는 여자를 꺼버리는 사람이 된다

밤이 눈을 크게 뜨는 것처럼

자신의 몸을 다 삼키고 조금 난감해하는 눈동자같이

 

 


 

 

최호일 시인 / 흩어진 말

 

 

라일락 향기가 무작정 공중으로 흩어질 때 아니,

공중으로 흩어진다는 말이 흩어지지 않을 것처럼 좋았을 때

나는 그것을 봄과 혼동하기로 했다

우리 결혼해도 될까요 국문과 선배에게

문학적으로

어제 산 장난감처럼 꺼냈다 그 말은

한쪽 무릎이 잘린 채 골목길을 비관적으로 걸어갔다

흩어지고 내렸다

검은 고양이가 검은 바지를 입고 검은 우산을 쓰고 오는 것처럼

그 계절의 비가 왔다

젖은 옷과 젖은 옷 사이

흑백으로 된 라일락 냄새가 봄의 겨드랑이에서 풍겼다

혁명을 꿈꾸기도 했으나 불길한 색상 때문에

머리가 가려웠던 것으로 기억 된다

그 말은 어디로 갔을까

오후 다섯 시에 약속이 있다는 그녀의 시간은

녹슬어서 좀처럼 열리지 않는 문같이

문득 활짝 열리는 그 말은

 

잃어버린 지갑을 또 잃어버린 것처럼

나는 그 말을 하지 않은 사람으로 살았다

가장 먼 곳에 두고 살았다

그 말이 몸에서 흩어지는 걸 본 최후의 사람처럼

 

 


 

 

최호일 시인 / 너무 많은 이해

 

 

너는 자루 속에 든 공기를 이해하지 못하는군

공중에 사라져버린 공기의 어제와 깍지 낀 손바닥을

궁극의 벽이란 닳아서 없어진다는 것을 아는지

벽이란 기댈 수도 있지만 스며들 수도 있다는 걸

어두운 곳을 빠져나와

팽팽하게 발기 된 자동차 바퀴처럼 우리를

전혀 다른 곳으로 데려다 줄 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군

 

새소리에 잠이 깬 날은

밤의 날갯죽지가 흥건하게 죽어 있는 걸 보았겠지

그것이 아침이야

잠은 밤을 오해하지만 밤은 잠의 모습을 잘 이해하지

이를테면

옆구리에 칼이 빠르게 스며들 때

너는 그것을 칼이 다른 나라의 농담처럼 몸을 오해했다고 생각하니

그건 죽음의 관점에서 보면 완벽한 이해야

 

사과를 깎다가 마음의 뼈가 부러진 사람을 알고 있지

사과를 깎는 법은 지루해

참혹한 욕설로 사과껍질을 바라볼 수 있는 밤은 없을까

칼을 들지 않은 시간으로 나를 이해해 줘

귤처럼

 

 


 

최호일 시인

1958년 충남 서천 출생.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 2009년 《현대시학》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 『바나나의 웃음』. 현재 잡지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