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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효녕 시인 / 내 마음의 산타클로스 외 6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12. 12.
이효녕 시인 / 내 마음의 산타클로스

이효녕 시인 / 내 마음의 산타클로스

 

 

성탄절 깊은 밤

가난하지만 마음이 따스한 분을 만나

진실하게 눈 뜬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눈을 털고 들어온 아이들이 잠들면

마음의 선물을 주고 가는 산타클로스

 

썰매 타고 바쁘게 다니실 때

누구에게든 사랑을 건네지 못한 이 마음

 

제일 낮게 울리는 찬미의 그늘에서

번뇌와 참회의 시간이 아주 작더라도

 

짧은 하루만이지만 사랑을 전하는

산타클로스가 되어봅니다

 

성탄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목마른 긴 밤과

 

미명(未明)의 새벽길을 지나며

가난하여 고통 받는 사람들을 만나

마음의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주님,

아직도 제게 평생의 죄업이 많아

주실 선물이 없다고 하더라도

 

온갖 무상의 기쁨이신 이여

내게도 촛불로 타는 뜨거운 사랑을 베풀게

산타클로스가 되게 하소서

 

 


 

 

이효녕 시인 / 봄날

 

 

하늘이 걸어가는 시간입니다

낮이면 구름이 강을 만나려 흐르고

마을 밟히려 산수유 노란 꽃 일찍 피고

속으로만 삼키는 순한 바람결

보고 싶으면 언제든 피우려

들꽃이 싹을 내밀어

고개 들고 여기저기

그윽한 눈으로 살피는 날

땅은 새싹을 품으며

이슬방울 기다리며 깊어진다.

 

 


 

 

이효녕 시인 / 감악산에 해가 뜬다

 

 

바위사이로 검은 빛과 푸른빛이

동시에 쏟아져 나오는 파주의 명산

감악산에 해가 뜬다

임꺽정굴과 운계목포 굽어보고

파주마을 향해 불 밝힌다

내일의 미래 통일의 꽃 피워내듯

임진강과 개성의 송악산 바라보며

새해 새날이 환하게 밝아온다

기암괴석 하늘 향해 도열 하고

붉디붉은 단풍잎

바람결 안고 춤추다 바라보는 시간들

숨 막히는 소용돌이 속에

경의선 철길 연결하여 흐르는

아름답게 엮어진 정다운 파주사람 이야기들

햇살에 떠가다가 실타래되어

한 올 한 올 이어진

야당 운정에서 문 열어 금촌을 지나

문산까지 무술년 새해가 환하게 밝아온다

파주에 새해가 뜬다

주인을 따르는 황금개 가슴에 안고

붉은 해가 높이 떠오른다

 

 


 

 

이효녕 시인 / 수선화

 

 

남쪽 바닷가를 거닐며

나는 보았네

파도가 넘나드는 작은 마을

그 뜰에서 혼자서 피어난

노란 수선화를 보았네

 

굽이치는 바다의

조용한 미소처럼

살며시 피어난 수선화

바닷바람에 꽃잎 흔들며

성난 파도를 바라보며 피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속삭여 가슴으로만 느끼는 이 순간

아름다움이 내부의

생명으로부터 나오는 그 빛

적막한 수선화의 나래짓이 정겨워

몰래 그 빛을 훔쳐 가슴에 담으면

설레던 내 마음도 환한

작은 꿈으로 다가오니

고독의 축복도 너무 아름다워

스스로 눈을 감게 하네

 

 


 

 

이효녕 시인 / 그대에게 바치는 소네트

 

 

사랑은 헤어짐을 동반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대여 한번은 내 가슴에게 말 해다오

그대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그대는 내가 되고

내가 그대가 될 수는 없는지를 말해다오

이 세상에 숨막힐 듯한 사랑을 하면서

내 가슴 뜯어 꽃잎을 꺼낼 수 있는 그런 사랑을

어떻게 이별의 존재가 가슴을 건너와서

내 마음은 찢겨놓는지를 말해다오

마음의 거리에는 신전도 보이지 않는다

이별은 신의 장난도 당신의 욕망도 아니다

묵묵한 마지막 성취에 의한 승리도 아니다

우리는 빈 캔버스처럼 세상에서 만나

우리의 골목에서 사랑의 자국을 그리고

대지와 별을 돌려서 사랑을 하면서

아침에 떠나 밤까지 가야 하는 아름다운 사랑

나그네처럼 사랑의 여정을 가면서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해 들길도 고? 뗄?하고

정열어린 키스의 추억을 달콤해 하면서

아름다운 사랑을 간직하는 것만으로

아주 영원 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을

내가 그대를 아는 것 이상으로

사람들이 그대를 알 수 없듯이

사랑한다는 사실은 또 다른 호흡인데

당신을 문간에 세워두지는 않으려면

다시 문을 두드려야 하는지 말해다오

 

 


 

 

이효녕 시인 / 아름다운 약속

 

 

늦은 봄날의 오후

꽃잎이 지는 시간은 기쁨이네

나를 싣고 가는 저 햇볕들의

찬란한 움직임

나는 아름다운 상상에 젖어드네

기억의 연분홍 나비로 날아가

사람의 불덩이로 녹아버리고 싶은

그대와 나의 아름다운 사랑의 약속

 

저 산 넘어 바람들

더 곱게 피어 수줍은 꽃잎

열매로 익어가는 살의 집

그대가 벌레로 들어앉아

마음대로 맛의 향료를 줄길 내 가슴

 

마음에서 흐르는 깊은 사랑

살랑거리는 잎새의 무늬로 남아

무거운 빈 바람 불어오면

강물로 흘러 마냥 따라가는

기다림의 날짜들

그대와 나 사이 하얀 달로 뜨는

우리 사랑의 아름다운 약속

 

 


 

 

이효녕 시인 / 미래가 조금도 두렵지 않아라

 

 

4년전부터

내 가슴속 건너고 싶은 강 하나 있어

문득 별 하나 뽑아

그 빛으로 강을 건너오니

밀려오는 따뜻한 바람과 햇살

그것을 주어 손바닥 위에 놓고 바라보면

저 머나먼 절정에서 잠들 수 없어

숱하게 쏟아지는 비명의 별들처럼

더 반짝이는 아름다운 그림자들아

산봉우리 하나 만큼 큰 달이 되어 떠오른다

저 자리들은 어떤 뜨거움을 열정의 꽃으로 피어

하루 하루 발전하는 길을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 문학의 밧줄을 잡고 내려올수록

점점 단단해지는 공간마다

열망하면서도 활활 불길처럼 살아오는 오늘

다선이여!

열망과 용기를 함께 가지게 되었으니

미래가 조금도 두렵지 않아라,

 

모든 이들이 다선의 이름으로 감싸고

불꽃 같은 열정으로 가슴을 두드려 세워

너의 끝마디에 맺힌 희망을 하냥 축복하는 나는

언제나 가슴 속에 은밀한 기쁨을 가졌어라

 

 


 

이효녕 시인 (1943년~2021)

1943년 서울 출생. 경기공업고등전문학교 공예과 졸업. 1989년 시 '바람으로 누운 갈대들'로 데뷔. 수상 : 1995년 한맥문학상 본상. 1998년 경기문학상 우수상. 2003년 한하운문학상 대상. 2003년 노천명문학상 대상. 2004년 고양시문화상 예술부문. 시집 『떠나도 아름다운 그대사랑』 등 9권. 소설집 『갈대는 지금도 흔들린다』 등 2권. 명예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