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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현 시인 / 질문 있습니까
방금 뭐라고 하셨나요 누구의 질문인가 공책안 질문이 서성거린다 얼룩이 단단하다 페이지마다 지문이 바스락거리는 오늘입니다 높이를 지우며 추락하는 비명은 무사합니까 질문이 떨어지고 꾹다문 입들은 가시가 무성해 집니다 질문은 안녕하신가
골목안 벽들은 견고합니다 아무도 없는데 담벼락을 서성이던 고양이가 질문을 물고 달아납니다 우리는 페이지에 접힌채 하루종일 서 있었어요 질문이 밀려드는 파랑 나는 파도를 한꺼번에 삼킵니 다 파랑이 파란을 맛보지만 만질수 없는 투명한 몸입니다 투명한 파도입니다 우리는 질문이 되어 질문을 계속 사용합니다 이 끝없는 대화를 늘려가며 질문과 절식한다 파랑이 다시 떨어지고 우리는 바싹 마른 입술로 난데 없이 여기저기에 놓여 있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질문으로 지나가는 중입니다 파랑으로 떠내려가는 중입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없는 너는
-웹진 『시인광장』 2025년 10월호 발표
김덕현 시인 / 랑만살롱
우리는 낭만파티에 빙 둘러앉는다 셀럽들은 저마다 초 하나씩을 들고 서 있다. 누군가 카메라를 터트린다. 환호성을 부르고 우리는 저마다 한 장면씩을 나누어 갖는다. 지나간 흑백필림이 오색의 옷을 갈아입는다
ㅡ2023년 <현대선시> - 13, 5편 중에서 1편
김덕현 시인 / 문앞에 두고 가주세요
우리는 밤이다
밤이 익는다 밤은 길어지고 빵이 부풀고 밤이 날마다 찾아와 오 늘을 계속 잃는다 허공을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밤 너무 빨리 익어가 는 밤 밤들이 하얗다 밤속에 묻혀 밤이 계속 녹슬고 나는 아무 일도 없어요 밤이 떨어진다 밤은 너무 빨리 달려가 한꺼번에 밤을 잃는다 오늘은 계속 잃는 훈련이다 호흡을 계속 잃는다 밤의 끝에서 다른쪽 끝까지 거기서 다른 밤 으로 밤들이 쓰러지면서 다 써버린다 오늘을 밤은 또 다시 가기로 한다
바닥을 드러내고 호흡은
내내 바닥을 딛고 뛰어오르는 공이 무서워 공을 던진다 어디론가 공을 떨어뜨리고 공이 뛰어오르고 공을 잃는다 밤이 빨리 찾아와 닿을 수 없는 바닥 바닥이 바닥을 턴다 우리는 밤이다 똑같은 공들 이 뛰어오르는 바닥에서 공들이 바닥으로 뛰어 오르는 훈련들 바닥 에 움직이지 않는 공 밀집해 있다 공들이 벽들은 바닥에 뒹군다 공 들을 계속 떨어뜨린다 인기척이 지나간다 오늘을 잃어 버리 버리는 여기
김덕현 시인 / 메트로 시티
계단을 뛰어오를 때 열차는 다음 역으로 사라진다 스크린도어앞 한 무리들의 사람들" 가방을 앞으로 매주세요" 한 무리로 밀려들 어가 와이파이를 구겨넣는다 스마트폰에 눈이 내리고 한 무리의 가방들이 오르고 내리고 "이 역은 승강장 사이가 넓습니다" 스크 린도어가 열리고 닫히고 역들이 활발하고 빠르게 지워졌다 "발빠짐 주의 발빠짐 주의" 열차가 서고, 스크린도어에 비친 넌 뭉크의 자화상 같았다 저길 봐,더이상 열차를 기다리지 않는 대열이 도착하고 있다 어떤 날은 선로에 내려선 적이 있다 내려선 것들은 녹이 슬어 갔다 난 이 번 역에서 달리는 것들과 부딪치지 않아도 될것 같다 뛰지 마세요 다음 열차를 이용하세요 " 출입문 닫습니다 출입문 닫습니다" 누군가 무리를 향해 소주를 살포한다 마늘 냄새가 난다 삼겹살 타는 냄새가 두텁게 한 무리들에게 퍼지고 있다 전염병처럼 나 는 다음 역에서 내려 감염을 피하기로 한다 지하철은 안녕하신가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들 서로 등을 맞대고 킁킁거리던 와이 파이를 다음 역으로 전송한다 고개를 떨구고 졸고 있는 퇴근길 열차가 덜컹거렸다 "이 열차는 내선 순환열차입니다" 다음 역에 도착하지 않은 내가 도착할 때 안내방송이 흘러 나온다 "조금전 철로사고로 인해 열차가 지연되고 있사오니 바쁘신 승객들은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퇴근길 눈을 닫고 귀를 덮고 코를 막는다 한 무리의 자화상들 열차를 따라 길어지는 하루가 출구쪽으로 덜컹거린다 "비상시 손잡이를 화살표 방향으로 돌리면 손으로 문을 열수 있습니다" 다음 역은 이열차의 종착역
웹진 『시인광장』 2024년 6월호 발표
김덕현 시인 / 카오스*
바닥이 드러난 곳에 바닥이 있다 한번도 만나지 못한 바닥은 모였다 흩어지고 웅크리고 있는 걸까 바닥은
검은 해일이 밀려왔다 몇번이고 퍼덕인다 물고기는
흘러다니고 헤엄칠수록 물고기들은 앞뒤가 점점 뾰족해지고 수면이 가라앉는다
바닥이 타는 냄새가 난다 흩어지는 사각 이 구석 저 구석을 돌며
너는 흰 바닥에 닿는다 바닥을 떠난 투명한 문장들 동선이 없고 동선이 발버둥 치는 간간이 물고기를 만난다
사각이 두터워지고 사각은 나타났다 사라지고
라스푸티차*
수면을 빗소리가 걷는다
바닥이 범람해 발목이 사라지고 바닥에는 비릿한 맨발들 그만 눈을 깜빡거려
바닥은 사각사각 말라가는 중이었지 이제 아침을 맞을 꺼다 안녕이 튕겨져 오르고 있어 이미 바닥을 떠나 안녕 물에 젖지 않은 발목을 꺼내 안녕
라스푸티차 바닥이 차오르고 있어 너는 죽은 척 천천히 떠오르고
*카오스: 혼돈이나 무질서 상태 *라스푸티차: 우기로 인한 진흙탕
김덕현 시인 / 공책을 들고
거기에 서 있다 흰 페이지들이 걷고 있다 모르는 사람들이 밀어부치는 것 같았다 바닥을 바닥으로 바닥은 아무데로나 간다
바닥을 들어 올려야 해 바닥이 끊길 때 바닥은 더 단단해지고 바닥은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백지인듯 서 있다 공책인듯 여백이 여백을 뚫고 나가려는 순간
모르는 사람들이 걷고 있다 거기서 다시 걷기로 한다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바닥을 언제 꺼냈는지 계속 바닥이
여백, 한무리의 사람들 흰 셔츠를 입은
바닥이 저기 바닥은 바닥으로 무성했고 바닥이 연장될 것입니다 다음다음
공책, 아무렇게나 쓰여진 페이지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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