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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동수 시인 / 하나의 窓을 위하여 외 6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12. 14.
김동수 시인 / 하나의 窓을 위하여

김동수 시인 / 하나의 窓을 위하여

 

 

창속에는 내가 들어 있다.

그 속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적막하고 괴괴하다.

누구 하나 손짓하는 이 없고

지나가는 바람도 비껴갈 뿐이다.

 

닫혀 있는 창은 창이 아니다.

열릴 수 없는

사면이 투명하여

바깥이 훤히 보여도

홀로 바라보는 창은

창이 아니다.

 

다가서는 벽 앞에서

열리지 않은 창 앞에서

어찌하면 하나의 창이 되는지

타지 못할 그리움으로

잠잠히 다가서면

하나의 창을 위하여 쓰러지는

바람의 소리가 들린다.

 

어디에고 열려있는

공간의 창이 아니라

굳게 닫혀 있는 창

그 하나의 창을 위하여

또 하나 나의 창을 열어야 하는

발가벗은 바람들의

아픈 신음소리를 듣는다.

 

 


 

 

김동수 시인 / 나의 시

 

 

이제 나는

밥이 되리라, 힘이 되고

슬픔이 되리라.

 

어두운 골목 귀퉁이를 돌면서

벽을 등진 새벽

문 닫고 홀로

눈물 뜨겁게 훔치던 네

주먹 속의 찝찔한 눈물이 되리라.

 

밥이 밥이 되지 못하고

힘이 힘이 되지 못하고

시리게 웅크린 네 슬픔의 곁방에서

휘파람을 날리며

 

풍선처럼 하늘을 날아도

시들은 너에게 한 점의

그늘도 내려주지 못한 채

어느 누구 가슴 하나 때릴

시 한 구절 써 본 일이 있었느냐

 

아,한 방울의 눈물

네 곁에서

한 잔의 소주라도 될 수 있다면

 

다가가리, 다가가서 불꽃처럼 타올라

회오리쳐 네 가슴에서

터질 수만 있다면

시가 되리라

 

허기 진 날 장(場)터의 국밥처럼

얼얼한 눈물

네 곁에서 너에게 힘이 되는

나의 시가 되리라

 

 


 

 

김동수 시인 / 코스모스에게 부치는 엽서

 

 

 해변엔

 코스모스 피는 十月이 오고

 더불어 뽀오얀 사장(沙場)을 거닐던

 아 가슴에 그리운 날들

 

 싱그런 코스모스 가지 가지 사이로

 가랑잎 지는 산사(山寺)의 뒤안길에

 

 잿빛 염주 흰 목에 두른

 목이 긴 여승(女僧)을

 내 사랑했었네.

 

 바람이 불적마다 흩날리는

 저 코스모스 이파리들

 

 날이면 날마다

 산록(山麓)을 타 내리는 설운

 목탁(木鐸) 소리에 울어

 

 병(病)든 비둘기는 가슴을 앓고

 으스러지게  껴 앉은

 서로 가슴에

 눈물처럼 흰 배꽃이 졌네

 

 아

 해변엔 코스모스 지는

 十月이 가고

 

 더불어 뽀오얀 사장(沙場)을 거닐던

 가슴에 그리운 날들이여

 가슴에 그리운 날들이여.  

 

 


 

 

김동수 시인 / 바람

 

 

땅 넓고

하늘 높아

 

이곳저곳

평생을 헤매고 다녀도

 

내 머무를 자리 하나

얻지 못하네

 

-시집 <말하는 나무>에서

 

 


 

 

김동수 시인 / 마음이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외롭다는 것은

누군가를 한없이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보이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느낌으로도 그 사람의

숨결까지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가슴이 그 사람 때문에

타는 듯한 그리움을 삼키는 것은

품어도 품어도 마음이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다 품어도

내 가슴을 황홀하게 한

그 사람만큼은 못하리라

사랑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

희망이고 행복이기 때문이다.

 

 


 

 

김동수 시인 / 비금도

 

 

섬은 늘 깃치는 소리로 떠 있다

 

바다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시퍼런 파도를 토吐한다

우리의 달은 어디에 있나요

빈 섬을 보채다

어둠 속에 안개처럼 웅크리고

 몇 년이고 잠들지 못한 꿈

 

목선마다 하나 둘 불이 꺼지고

출렁일수록 가랑잎처럼

밀려만 가는

바람 탄 비금도에서

갈기갈기 헤진 일상을 투망질하던

아이들은

새벽이면 맨살로 바다로 간다

 

우우 또 한 차례

몰려왔다 포말지는

하얀 새떼들의 울음

 

호드득 호드득 갈매기 되어

꿈에만 날아보던 하늘을 두고

 

섬은 늘 깃 치는 소리로

가난한 아이들의 울음을 건지고 있다

 

 


 

 

김동수 시인 / 교룡산성

 

 

 희뿌연 안개 瑞氣처럼 깔리는 굴헝. 새롬새롬 객사기둥 만 한 몸뚱어리를 언뜻 언뜻 틀고, 눈을 감은 겐지 뜬 겐지 바깥소문을 바람결에 들은 겐지 못 들은 겐지어쩌 면 단군 하나씨 때부터 숨어 살아 온 능구렁이

 

보 지 않고도 섬겨 왔던 조상의 미덕 속에 옥중 춘향이는 되살아나고 죽었다던 동학 군들도 늠름히 남원 골을 지나가고 잠들지 못한 능구렁이도 몇 점의 절규로 해 넘어간 주막에 제 이름을 부려놓고 있다

 

 어느 파장 무렵, 거나한 촌로에게 바람결에 들었다는 남원 객사 앞 순댓국집 할매. 동네 아해들 휘둥그래 껌벅이고 젊은이들 그저 헤헤 지나치건만 넌지시 어깨 너머로 엿 듣던 발 하나 실로 오랜만에 그의 하얗게 센 수염보다 근엄한 기침을 날린다

 

 山城 후미진 굴헝 속, 천년도 더 살아 있는 능구렁이. 소문은 슬금슬금 선진강의 물줄기를 타고 나가 오늘도 피멍 진 남녘의 역사위에 또아리치고 있다

 

 


 

김동수(金東洙) 시인

1947년 전북 남원 출생. 전주대학 사범대 국어교육과 졸업, 원광대 대학원 국어국문과 석사와 박사 학위. 1982년 월간 <시문학>에 추천 완료 등단. 미국 U.C. 버클리대학 객원 연구원, 백제예술대학교 방송시나리오극작가과 교수로 재직(교무처장 역임). 1989년 제30회 전북문화상, 2001년 제10회 한국비평문학상, 2004년 제29회 시문학상, 2014년 대한문학상, 2018년 제7회 중산문학상 등 수상. 시집 <하나의 창을 위하여> <나의 시> <하나의 산이 되어> <그리움만이 그리움이 아니다> <겨울 운동장> <말하는 나무> <그림자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