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수 시인 / 하나의 窓을 위하여
창속에는 내가 들어 있다. 그 속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적막하고 괴괴하다. 누구 하나 손짓하는 이 없고 지나가는 바람도 비껴갈 뿐이다.
닫혀 있는 창은 창이 아니다. 열릴 수 없는 사면이 투명하여 바깥이 훤히 보여도 홀로 바라보는 창은 창이 아니다.
다가서는 벽 앞에서 열리지 않은 창 앞에서 어찌하면 하나의 창이 되는지 타지 못할 그리움으로 잠잠히 다가서면 하나의 창을 위하여 쓰러지는 바람의 소리가 들린다.
어디에고 열려있는 공간의 창이 아니라 굳게 닫혀 있는 창 그 하나의 창을 위하여 또 하나 나의 창을 열어야 하는 발가벗은 바람들의 아픈 신음소리를 듣는다.
김동수 시인 / 나의 시
이제 나는 밥이 되리라, 힘이 되고 슬픔이 되리라.
어두운 골목 귀퉁이를 돌면서 벽을 등진 새벽 문 닫고 홀로 눈물 뜨겁게 훔치던 네 주먹 속의 찝찔한 눈물이 되리라.
밥이 밥이 되지 못하고 힘이 힘이 되지 못하고 시리게 웅크린 네 슬픔의 곁방에서 휘파람을 날리며
풍선처럼 하늘을 날아도 시들은 너에게 한 점의 그늘도 내려주지 못한 채 어느 누구 가슴 하나 때릴 시 한 구절 써 본 일이 있었느냐
아,한 방울의 눈물 네 곁에서 한 잔의 소주라도 될 수 있다면
다가가리, 다가가서 불꽃처럼 타올라 회오리쳐 네 가슴에서 터질 수만 있다면 시가 되리라
허기 진 날 장(場)터의 국밥처럼 얼얼한 눈물 네 곁에서 너에게 힘이 되는 나의 시가 되리라
김동수 시인 / 코스모스에게 부치는 엽서
해변엔 코스모스 피는 十月이 오고 더불어 뽀오얀 사장(沙場)을 거닐던 아 가슴에 그리운 날들
싱그런 코스모스 가지 가지 사이로 가랑잎 지는 산사(山寺)의 뒤안길에
잿빛 염주 흰 목에 두른 목이 긴 여승(女僧)을 내 사랑했었네.
바람이 불적마다 흩날리는 저 코스모스 이파리들
날이면 날마다 산록(山麓)을 타 내리는 설운 목탁(木鐸) 소리에 울어
병(病)든 비둘기는 가슴을 앓고 으스러지게 껴 앉은 서로 가슴에 눈물처럼 흰 배꽃이 졌네
아 해변엔 코스모스 지는 十月이 가고
더불어 뽀오얀 사장(沙場)을 거닐던 가슴에 그리운 날들이여 가슴에 그리운 날들이여.
김동수 시인 / 바람
땅 넓고 하늘 높아
이곳저곳 평생을 헤매고 다녀도
내 머무를 자리 하나 얻지 못하네
-시집 <말하는 나무>에서
김동수 시인 / 마음이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외롭다는 것은 누군가를 한없이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보이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느낌으로도 그 사람의 숨결까지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가슴이 그 사람 때문에 타는 듯한 그리움을 삼키는 것은 품어도 품어도 마음이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다 품어도 내 가슴을 황홀하게 한 그 사람만큼은 못하리라 사랑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 희망이고 행복이기 때문이다.
김동수 시인 / 비금도
섬은 늘 깃치는 소리로 떠 있다
바다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시퍼런 파도를 토吐한다 우리의 달은 어디에 있나요 빈 섬을 보채다 어둠 속에 안개처럼 웅크리고 몇 년이고 잠들지 못한 꿈
목선마다 하나 둘 불이 꺼지고 출렁일수록 가랑잎처럼 밀려만 가는 바람 탄 비금도에서 갈기갈기 헤진 일상을 투망질하던 아이들은 새벽이면 맨살로 바다로 간다
우우 또 한 차례 몰려왔다 포말지는 하얀 새떼들의 울음
호드득 호드득 갈매기 되어 꿈에만 날아보던 하늘을 두고
섬은 늘 깃 치는 소리로 가난한 아이들의 울음을 건지고 있다
김동수 시인 / 교룡산성
희뿌연 안개 瑞氣처럼 깔리는 굴헝. 새롬새롬 객사기둥 만 한 몸뚱어리를 언뜻 언뜻 틀고, 눈을 감은 겐지 뜬 겐지 바깥소문을 바람결에 들은 겐지 못 들은 겐지어쩌 면 단군 하나씨 때부터 숨어 살아 온 능구렁이
보 지 않고도 섬겨 왔던 조상의 미덕 속에 옥중 춘향이는 되살아나고 죽었다던 동학 군들도 늠름히 남원 골을 지나가고 잠들지 못한 능구렁이도 몇 점의 절규로 해 넘어간 주막에 제 이름을 부려놓고 있다
어느 파장 무렵, 거나한 촌로에게 바람결에 들었다는 남원 객사 앞 순댓국집 할매. 동네 아해들 휘둥그래 껌벅이고 젊은이들 그저 헤헤 지나치건만 넌지시 어깨 너머로 엿 듣던 발 하나 실로 오랜만에 그의 하얗게 센 수염보다 근엄한 기침을 날린다
山城 후미진 굴헝 속, 천년도 더 살아 있는 능구렁이. 소문은 슬금슬금 선진강의 물줄기를 타고 나가 오늘도 피멍 진 남녘의 역사위에 또아리치고 있다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김욱진 시인 / 나를 도둑맞다 외 6편 (0) | 2025.12.14 |
|---|---|
| 박강 시인 / 아랫목의 순례자들 외 6편 (0) | 2025.12.14 |
| 황인찬 시인 / 백비를 읽다 외 6편 (0) | 2025.12.14 |
| 이복규 시인 / 아내가 없는 날 외 6편 (0) | 2025.12.14 |
| 한영수 시인 / 책에게 구걸하다 외 6편 (0) | 2025.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