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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전병윤 시인 / 겨울 자작나무 외 6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12. 15.
전병윤 시인 / 겨울 자작나무

전병윤 시인 / 겨울 자작나무

 

 

눈이 내리는데 맨몸으로

찻집 옆에서 누굴 기다리는가

피부색이 백러시아 여인 닮은 자작나무,

 

자작나무 길 위에

하얀 카페트를 펴놓고

그 위를 밟고 가는 여인

빨간 하이힐 발자국 자국마다

동백꽃을 피워내고 있다

 

내 찻잔 속에서도

빨간 하이힐이 가고

분홍빛 향기가 도란거리고 있다

 

창밖엔 고향 눈이 섞여 내리고

눈은 내 유년을 자꾸 부르는데

자작나무는 저 눈 속에

꽃 봄이 섞여 내린다고 손을 흔들고 있다

 

푸른 세월 속에

줄 것 다 벗어주고

하얗게 바랜 자작나무

꼭 우리 어머니를 닮았다.

 

 


 

 

전병윤 시인 / 이강주*

 

 

이강주는 만월이다

신은 술통 속에 달을 숨겼는데

사람들은 용케도

그 속에서 신명을 찾아냈다

서방산 정기 서린 곳

워크통 속에 들어앉아서

명상과 갈색 숙성을 거듭하고 있다

배곷이 몇 번 지고 피고

장끼도 껄껄껄 웃고 가고

소쩍새가 울고 울어 익후어 낸 술

명주 이강주가 되었다

술통이 세상에 이강주를

골고루 뿌리고 나면

잘 익은 소리새, 춤새, 끼새들이

얼씨구 신명나게 춤을 춘다

누에가 뽕잎 먹고 참선함은

훗날 비단실을 뽑기 위함이려니

인생도 더더 더 발효되어

명주가 되든지 비단실이 되든지...

밤 세상이 환하게 만월이 떴다.

 

*이강주 : 조선조에 전라도와 황해도에만 있었음, 그 후 전주에서 조정형 명인께서 완산부사를 지낸 6대 조부 때 붙어 시작된 이강주를 선친 작촌 조병희 시인으로부터 전수받아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명주임.

 

 


 

 

전병윤 시인 / 시인은 풍각쟁이

 

 

우주의 호수에 쫑쫑쫑

물수제비로 뜨는 별들

풍각쟁이 시인의 글발로

밤하늘이 너무 푸르다

 

땅에다 별을 심고

하늘에서 감자를 캐는

그 사람은 요술쟁이야

밤낮으로 시를 주어

노래 부르고 춤추고

꽹과리 치고 장구 치고

사랑 주고 눈물 주고

귀 열어 세상을 보는 당나귀

나는 풍각쟁이야

 

우주의 별들을 불러내려

지구에 꽃으로 피워놓고

영혼에 그 꽃물 들이는

당신은 이 세상의 풍각쟁이야.

 

 


 

 

전병윤 시인 / 칠석을 기다리며

 

 

 1

 칠석은 견우직녀가 상봉을 기다리는 날이다. 이날 지상의 까막까치는 한 마리도 볼 수 없다. 모두들 은하수에 모여 견우 직녀가 건너갈 수 있도록 스스로의 몸으로 오작교를 놓았다. 그리하여 그들의 사랑이 밤새도록 은하로 흐르는 것을 나는 보았다. 별들도 해마다 한 번은 만나거늘 38선 이쪽 저쪽 혈육이 마음놓고 가지도 오지도 못한 60년 세월, 돌아오는 칠석엔 철조망을 걷고 오작교를 놓아야겠다

 

 2

 칠석엔 조상의 명복을 빌었다. 개울물에 목욕하면서 재앙과 병을 씻어 내는 수신제(水神祭)를 지냈고, 길쌈 솜씨 예쁘게 해달라고 별에게 제사를 지냈다. 이 날 잇속이 고운 고모 앞엔 총각들의 눈이 모였다. 초승달도 재를 넘고 은하수도 기울면 할머니는 고모를 불러 세우고 웃음이 너무 헤프다고 했다. 고모의 웃음은 언제나 향기가 있고 따뜻했다. 웃음은 사람에게만 준 조물주의 선물이라지, 그래 웃음은 따뜻한 가슴의 선물이다. 나도 세상에 있는 동안 누군가에게 가슴의 선물을 주어야겠다

 

 


 

 

전병윤 시인 / 선유도 갈매기 춤

 

 

파란 무대 위 갈매기들

하늘의 음계에 따라 춤춘다

 

날개로 바다를 짚고 물 머금어

 

하늘에 뿌리는 무지개 춤

 

바다와 하늘 사이에 선, 선을

곱게 이어주는 무변의 춤, 춘다

 

주머니가 없어도 좋은 생의 춤

속세를 벗는 맑은 춤 보고 있다

 

 


 

 

전병윤 시인 / 태권도원

 

 

허공을 돌려 차면 세상이 열린다

 

무주 실천 재궁길로 오소

학 다리로 서서 당신을 기다리오

 

날마다 "태-권"

우렁찬 소리에 지축은 땀을 흘린다

 

세계의 중심 무주, 태권도의 메카

그 품새, 태극 태백 팔괘 격파

 

태리 *와 아랑*이가 불을 치면

미사일도 사드도 한방에 꺼진다

 

색은 달라도 우리는 한사람

낯가리지 말고 무설로 길 따라 오소

태리와 아랑이가 반기리다

 

 


 

 

전병윤 시인 / 관피아

 

 

별에도 달에도 없는 모자 전관예우,

 

물길을 트기도 막을 수도 있는 감투

 

참으로 큰 이빨들이 깨끗도 하겠다

 

올챙이는 몸보다 꼬리가 더 큰 법

 

어느 날 꼬리를 감쪽같이 감추고

 

개구리 되고나더니 두꺼비도 되겠다

 

호랑이도 무릎 꿇는 순한 큰 산 여우,

 

꼬리를 떼라고 산울림이 커 가는데

 

변사도 여우 콧등에 가면을 씌우겠다.

 

 


 

전병윤 시인

1935년 진안 출생. 廣岩 전병운. 전북대 농과대학 졸업. 사무관으로서 농촌지도소소장으로 정년 퇴직. 1996년 <문예사조> 시부문 신인상으로 등단. 2000년 한군문협 진안지부장에 피선. 열린시문학상. 진안문학상, 전주시예술상. 황금찬시문학상. 전북문학상. 제3회 국제해운문학상 大賞 수상. 진안문협 초대회장. 전북문인협회 이사. 온글문학 운영위원장. 시집; 『그리운 섬』. 『산바람 불다』. 『꽃지문』. 『무뇌 』. 꽃샘의 영원성.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