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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정 시인 / 부속으로라도
볼트는 모색한다 세상 모든 너트를 찾아가 맴도는 것으로 견고해지는 일생을 민들레 홀씨를 날리는 것은 솜털이 아니라 '훨훨' 이라는 자의식이니까 스스로 한 번도 보지 못한 두 발 어딘가에 있다는 그것을 하체라 부르지 않는 것은 사람에 비교될까 두렵기 때문 외곽이란 없는 나의 저 너머로 가자, 너머의 나를 찾아 가득해지자 보이는 것만 믿는 이들이 주사위를 던져 낮의 네거리에 마천루를 쌓는다 해도 간밤의 나팔꽃 나선만으로 모든 밤이 회오리쳐 우리가 무성해지는 것을 오래전 놓친 이름을 찾아 꿈에 배속시키고 허공에 손을 휘젓다가 깨어나면 밤의 나선을 꿰고 신발 끈을 묶는 이것이 사랑이라면 손나팔을 할 것, 경우를 가리지 말 것 -<시와 징후>, 2024. 가을호
임재정 시인 / 구구 구- 산비둘기가 불렀다
주식회사 ‘뜬구름’은 불란서에 본사가 있다
나의 뒷골목으로 매일매일 메일을 보낸다
뜬구름은 헤프다 매일의 아침을 울린다 봄이 왔다고 신입사원을 모신다고 이 세상 모든 조막손을 땅 위로 밀어 올릴 거라고
이것은 이미 한 달 전의 일, 메일은 여전히 날아와 쌓이고
쌓고 또 쌓은 쓰레기더미는 산을 이루고 봄날을 품고, 초록을 완성한다 이 쓰레기들은 사실 훗날 봄의 얼굴이다
오늘 나는 내게 속한 조금 슬픈 얼굴을 꼬드겨 부끄러운 개복숭아 꽃잎이 뛰어내리는 허공을 손사래 치며 지날 때 심장을 몇 발짝 앞세웠으며 볼이 발그레했던 아이에게 문자를 보냈을 것이다
있지, 달은 44억 6000년을 살았고 화성만 한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해서 튕겨져 나간 조각이래
뜬구름의 일원이 되면 아무 데로나 출근을 해도 그만 영혼 따위는 눈치 보지 않아도 좋을 만큼 생이 뻐근해지지
내일은 범접할 수 없는 내일의 일 혓바닥을 꾸어달라고 철쭉은 내 옆구리를 직신댈 것이다
계간 『상상인』 2024년 여름호 발표
임재정 시인 / 마블링
무늬는 감정에서 온다
노래와 비명 사이 풀을 뜯는 한낮의 양들
밤은 그러나 조금 달라져야 하지 늑대가 덤불 속에 잠든 도시락을 찾아 소풍을 가고 양의 꿈에 발톱을 욱여넣고 양을 흉내 내지
깨어보면 장미 울타리를 지나온 생각이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다
장미 울타리에 박힌 양들의 엉덩이를 모으면 마을이 된다 지붕과 울타리를 마련하고 가장 무서운 이와 가까운 이웃으로
마블링은 꿈을 매개로 하는 체재다 벌써 천 년째
밤과 낮이 장미 울타리를 경계로 으르렁댄다
임재정 시인 / 그림형제의 시놉시스
저녁은 말하지 산그늘에 어슴푸레 앉아 봐 봐, 노을이야 네가 배워야 할 부끄러움이지 서쪽 하늘에는 물감 중 붉은색만 물어 나르는 새들이 산단다 뭉글뭉글 밤은 쏟아지고 그림형제가 당겨 덮던 눅눅한 홑이불처럼 외풍 드는 잠엔 구멍 뚫린 하늘의 숱한 눈동자들 그런 날 꿈의 밝기는 달뜬 반딧불을 손바닥으로 떠받쳐 그나마 높다랗게 별로 박아 놓을 만큼 문틈으로 엿보는 바깥엔 플롯 속 오늘 분의 물감공장이 돌아가지 색을 짓이겨 기계 속으로 밀어 넣는 아빠와 속이 메스꺼운 엄마가 시계를 보며 입을 훔치지 지나온 날들을 구원할 방법은 없단다 팔레트에 오직 한 물감만 풀어놓는 석류처럼 밤의 창문은 새빨간 거짓 너는 자라 아는 이름을 적고 붉게 두 줄 긋는 사람이 되거라 창문을 열면 성냥 한 갑처럼 아이들이 정오의 붉은 나뭇가지에 신발을 걸어놓은 낮잠 함부로 그은 성냥이 치욕인 줄 모르고 부쩍 자란 맨발로 월담을 한다
임재정 시인 / 반추
1 오늘 이후 굴뚝은 잊힐 거래요 마지막 흰 머리칼을 풀어놓고 하늘길을 더듬어 사라지기를 기다리죠
2 우리 일가는 소의 붉은 배를 열고 구들 위에 연탄보일러를 덧놓을 겁니다 내가 손목의 수관을 뽑아 깔면 형은 가슴을 열고 시멘트를 개어 붓고요 사내는 우리가 훔쳐 사는 행색을 하고 후일담처럼 생전을 받아내던 방바닥에 잠시 머물다 가지 싶었습니다 나는 까치발을 하고 그을음 냄새 큼큼한 사내그림자가 되어 뒤따를 테고 끊길 듯 이어지는 손금은 손바닥을 뛰어내려 길을 열겠죠
그을린 아랫목 사내는 미간을 열고 생시의 한 때를 주문처럼 펼칩니다 야틈한 굴뚝이 디 받아내지 못한 소원이 고래를 되짚어 아궁이로 쏟아지던 날의 매캐함을 눈물로 반죽해 우리네 얼굴에 표정으로 가라앉히면서 말이죠
구들 위 덧놓아진 보일러가 도는 우리의 잠은 그냥 꿈 한 덩어리 연기 오르던 길을 되짚어 주사(朱沙) 비가 내리는데 목화 벌던 날의 기억으로 이불은 가볍고요 우린 재잘대며 어딘가를 걷고 있어요 사내는 황토반죽 하나 아궁이에서 구워 빈 외양간으로 드는 것 같았어요 밤새 타닥타닥 비는 불타오르고요 홈통 지나 무성한 풀밭으로 번집니다
3 네 무릎 꿇고 웅크린 소 위장에서 우린 되새김질 되고 무엇이든 될 거에요 어제가 몇 고비 넘겨 손바닥에 물결칩니다 사내가 벌집 위로 흘러든 우리의 잠을 생인손으로 다독입니다 주사 갈아 먹을 놓으며 지노귀새남- 지노귀새남- 연탄보일러가 돌고 자정 지나 시멘트 발린 흙벽이 시루떡 한 켜로 뜸 오르면 소지를 사르는 동녘이 점괘처럼 당도하겠죠 아주 잠시 꿈이 캄캄해집니다 우린 굴뚝을 더듬듯 사라진 사내의 주름을 당겨 펼쳐요 내일이 우리 썼던 고깔에서 쏟아져 가득합니다간, 한 생이 지나가기도 한다 -계간 『다층』 2022년 겨울호 발표
임재정 시인 / 이별의 속도
겨울이 어떻게 달아나느냐 하면요 꼬리 내린 채 으르렁대는 본능을 간간 목구멍 깊이 되밀어 넣는 개처럼
진흙탕은 아름다웠어요 이빨 자국이 남은 허벅지에도 3월은 오고 우- 벚꽃이 피고 있었죠
얼룩을 사랑합니다 미칠 것 같은 가려움을 혁명이라 부를까 합니다 잘 익은 사과에 벌레들이 꼬이듯, 벚나무 숲이 군중으로 가득했다고 칩시다
당연해요 죽어서까지 시계를 만들어 연인들의 칭찬을 받는 사람은 헤어져 6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이의 자자한 초침 소리를 들어 마땅합니다
공원 잔디밭 토끼풀이 무성해졌습니다 등을 굽히고 이마를 맞대고 나누는 언약이 연두 여린 빛에서 주름으로 건너가 영원한 비밀이 되죠
우연히 길을 건너던 중이었는데 깨어보니 병원이었던 것처럼 그 뒤, 또 다른 날 왜 그랬어요? 힐책하듯 간호사가 물을 때, 당신은 어떤 남자도 함부로 해고하지 말아요
뜨거운 불덩이를 꺼뜨리려고 한 움큼의 알약을 털어 넣던 날처럼
가령, 전동드라이버로 나사를 조일 때 다른 손으로는 나사를 잡아야 했어요 나사나 꼬리 내린 개의 공통점은 도무지 속을 모른다는 것 무른 손가락을 선호한다는 것
나를 대표하는 동굴이 한평생 나의 목소리로 징징댄다고 생각해 봐요
다리 위에서 물속을 바라보던 날이 있었고, 내일이 없었고 손가락들로 가득한 수면이 세상 모든 벚나무의 가려움을 긁어줄 수 있을 것 같았으므로
그러나 모르는 날, 여기서 저기와 너를 뭉쳐 눈사람을 만드는 오늘은
내 말이 가장 먼저 내 귀에 닿는다는 말을 믿게 됩니다 돌아본 뒤를 영원히 정면으로 삼고
혁명이 남긴 얼룩을 읽어 내려요 눈사람이 녹아내리는 속도가 꽃피는 속도라고 쓰여 있습니다.
- 웹진 《같이 가는 기분》 2023년 여름호
임재정 시인 / 이것은 당신의 오후가 아니다
낮아진 하늘, 유리면이 안쪽으로 떠밀린다
유리창을 흐느끼는 빗방울들
전기포트 스위치를 넣으면 부글거리는 뉴스
허리 숙여 바깥을 보면 상반신은 유리창 너머에서 비에 젖을까
침침한 거실은 얼굴을 감싼 채 눈두덩의 볼록한 추억을 꺼내 보기 좋다 무덤가에 핀 라일락을 쓰다듬듯 아이가 놀던 곳을 더듬는다
물은 정말 100℃에서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까 어둠을 들쳐 인간이 꺼내 놓은 어떤 천체는 인간으로부터 감정도 지위도 잃는 번아웃을 경험한다
젖은 구름이 두 팔 벌려 껴안은 여기는 참 고무적이야
먼지 앉은 고지서들이 쌓인 현관으로
입 안을 맴돌던 치약 냄새처럼 저녁이 번진다
번개가 친다 다리를 잃고 전장에서 돌아온 병사의 뒷모습이 허물어지듯 꾸릉, 천둥소리
어둠을 한꺼번에 엎지르며 밤이
명료한 윤곽을 진저리치며 사물들이 주르륵 구석으로 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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