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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홍 시인 / 호수의 주름
햇빛을 흘러 보냈을 뿐이야 달빛 추행을 그 흔적으로 남겼을 뿐이야
호수는 물결로 밤마다 찾아와 바람 따라 소리를 냈을 뿐이야 물결치는 소리
겨울 내내 비늘같은 주름살 햇빛이 바람결로 사라지는 물고기가 잠긴 호수
짙은 주름을 남겼던 것이야
김철홍 시인 / 모서리 선진
꼬들꼬들한 날씨 윗주머니에 넣고 안개를 읽으며 휘젓는 허공, 선진화는 전광석화질주의 절벽이다. 신기루 불빛 켠 고양이 한 마리 절벽 위로 기어 나와 저편 너머로 내처 달린다. 고양이 눈빛은 희망버스 바퀴자국 새겨진 비명소리로 퍼져 고속도로를 핥는다. 납작해진 마른 고양이 주검 위 흰 나비가 난다.
다장조 동요 같은 일상을 묶고 두바이를 향하는 리무진, 파시스트적 속도로 급발진하면 발광하는 가로등, 분홍나비가 풀어져 어지러이 떠다니는 안개비 맞으며 난다. 고양이 마른 가죽이 하얀 아스팔트 도로마다 탁본되어 씨앗처럼 뿌려져 있다 고속도로 횡단하는 수십만 고양이들은 장사진(長蛇陣)으로 밤과 낮을 연결하는 사다리를 밝고 절벽을 오른다
하모니의 고통에 담긴 개성의 실종, 허공에서 허공으로 새벽을 기습하며 고통을 배달한다. 촛불을 켜고 죽음을 기도하는 것이 가장 쉬운 존엄의 콘서트, 촛불을 켜고 학처럼 행진하는 것이 가장 강한 무기이다. 촛불행렬이 질주하면 발자국과 발자국 사이를 흘러가는 희망의 종이배, 선진화 여울목에 놓여 있는 징검다리를 발목 없이 밟으며 배수진을 친다.
어둠을 뭉친 톨게이트로 진입하는 황혼, 나비와 함께 걷는 전광석화가 까다로운 길이다. 담벼락의 심장을 뛰어넘는 빨강나비 한 마리가 깻잎 같은 날개로 도시를 덮는다. 촉수를 꺼내어 촛불을 맛본다. 안개에 붙은 불꽃 금세 가로 등으로 옮겨붙고 선진화로 몰려들어 알 까고 죽는 나비 떼, 맑은 가을 하늘을 염색한다
김철홍 시인 / 노래 없는 뮤직비디오
광화문 앞길 강물 넘쳐 흐르면 광화문은 사공 없는 나루터, 황포돛배 띄운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지만, 그 안에 사람이 없다 노래 없는 뮤직비디오이다 쉼표 없는 노래다.
광화문 앞길 사람 넘실대면 광화문은 행선지 없는 종착역, 우주선을 쏜다 차별없는 세상, 수많은 사람들이 이름표를 차고 있지만, 그 안에 내 이름은 없다 그림 없는 뮤직비디오이다 리듬 없는 노래다.
서로에게 기품이 서로에게 기쁨으로 온다. 그러나 존엄하게 살 수 있는 권리보다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기회마저 빼앗긴 세상 노래 없는 뮤직비디오를 본다. 세상 땡볕에 바짝 마른 귀 닫은 시사時事장애인 인권은 삐끼, 허공의 질감을 낚는 미끼다.
김철홍 시인 / 시속 제로
밤새 무슨 일이 있었나? 앞뜰 은행나무 땀에 젖어있다.
한치밖 밤새 내려앉은 구름은 아직 졸고
나뭇잎들은 이슬을 붙들고 햇살이 들어올 틈이 없다.
나와 허공 사이가 정체
숲을 가둔 참새소리는 젖은 낙엽을 지나고
은행나무 잎, 툭 떨어지고 안개가 풀썩 주저앉는다.
더욱 짙게 나도 풀어진다.
시속 제로, 그 너머 햇살은 서성거리고
김철홍 시인 / 시시(詩詩)한 여행
어렵다는 현실에서 그는 시가 쉽게 씌어져 부끄럽다고 했다 막다른 골목길, 나는 사는 게 부끄러워 그 부끄러움을 닦기 위해 시를 쓰고 시인이 되었는데...... 그는 그에게 작은 손 내밀어 눈물과 위안의 최초 악수를 하지만, 나는 나에게 비겁을 내밀며 버티는 것도 새로운 저항이라고 존경과 희망의 악수를 이 시인과 김 시인에게 하였다
그는 학사모를 쓰고 어두운 밤, 별을 헤아렸지만,나는 마오쩌둥 모자를 쓰고 어둠이 스며든 차창 속 부끄러움을 헤아린다 어두운 밤 나를 헤아린다 노란 어둠, 붉은 어둠, 시커먼 어둠, 어둠은 몰아치고 고양이 눈빛이 눈을 찌르며 달려온다 고난의 진격, 밤은 보이지 않고, 통증을 느끼는 자작나무, 나만 보여요
학사모 벗겨진 그의 묘지 위가 사막, 나는 허공에 기대어 천지의 뒷태를 셔터에 담는다 버스 뒷자리 담화는 동주 부끄러움 보다 더 익어가고 비석이 되고 연변아이들 시 낭송이 되고, 어둠이 튄다 나는 풀어지고 안개가 도주한다 가는 나도, 오는 나도 없이 동주 우물에 빠져 참회록을 쓴다
나도 그와 같이, 시가 쉽게 씌어져 부끄러워 할 수 있을까?
김철홍 시인 / 클릭
화면을 바라본다 시간은 증발되었고 화면은 소름이 돋았고 화면속에서 나는, 시는 윈도우 안에서 뛰어다닐 것이고 시간은 헐겁고, 떨어져 나온 화면은 모자이크를 하고 시간은 흘린 어제의 열기가 되어 퍼져나갈 것이고
네이버 뉴스를 뭉쳐서 시를 만드는 여름
밤새 신음한 언어들이 쌓여가고 있었다 검색 창을 열면 언어들이 내 주위에 성벽을 쌓는다 문장은 문장을 끌여들이며 화(火)면 보다, 화요일보다 더 뜨거워져,
종위 위에 연필이 쏟아낸 언어들, 부러진 연필심이 흩어져 있을 거야, 지우개는 어제 밤 말들을 발설할 거야, 삭제키를 누를 거야
아쉬웠다, 시원했다. 시~시~했다
여름은 화가 나 떠날 것을 질문하고 언어들은 규칙없이 쏟아져 나오고 검색한 페이지는 수많은 글들로, 하지만 나의 지문이 찍힌 언어가 없다 말이 없다 클럭을 하여도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모서리는 사각을 묶고 움직이지 않았다 코르셋이 조여 왔다
오늘은 간직하지 않는 오늘은, 시를 쓸 수 없는 오늘이다
-시와세계가 읽은 2014, 새로운 시
김철홍 시인 / 혀, 워뗘?
개나리 핀 봄, 숨 쉬는 것도 첫사랑이라, 꽃잎은 바람을 가져오고 어둠이 돋는다 바람의 혀에 매달린 봄 넘기다,
할겨?..
,,,혀!
똑이유, 딱이유, 똑이유, 딱이유, 똑이유, 초침은 고요를 이끌고 무릎이 걸어간다. 봄비가 나뭇잎을 툭툭 투두두둑 지나온다..
"워뗘!"
.......
헌겨?
..........
한 것도 하지 않는 것도 없다, 이 바람 누군가는 기억해 줘야 한다. 헛기침이 멈춘 공간 들어온 긴 그림자는 나를 누르고 내가 지워진다.
- 계간 《시와세계》 2015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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