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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훈 시인 / 내 삶은 수평선이 없다
내 바다에는 외로운 섬이 없다 조각배 옆에 또 하나의 배, 그리고 또 하나의 배 끝없는 그리움이다 파도는 삶을 쓰다듬는 은유 물고기가 꿈 찾아 하늘을 날기 위해 지느러미에 날개 달고 땀방울 뚝뚝 쏟아낸다 바다는 하늘이 되고 하늘이 바다가 되니 가슴은 그리움의 허공이다
내 하늘에는 슬픈 별이 없다 산새 옆에 또 하나의 새, 그리고 또 하나의 새 지독한 보고픔이다 구름은 추억 따라 흐르는 세월 땅에서 발을 떼지 않고 땅을 디디려니 가슴속에 그대 위한 꽃밭조차 가꾸기 힘들구나 꽃씨 하나 싹 틔워 붉은 꽃피우는데 저 숨결은 꽃잎의 흔들림일까
내 삶은 수평선이 없다 편하다고 단추만 누르려 말라
<제30주년 근로자문화대전 문화부문 대상 수상작)
안국훈 시인 / 길동무
하늘같은 존재라 생각했지만 하는 짓마다 밴댕이 속 속 터져 죽기보다 아예 깨끗하게 굶어 죽는 게 낫지
하는 짓이라곤 늘 먹거나 자거나 아니면 싸우거나 셋 중 하나다 밥만 먹고사는 게 아닌데
삶은 양파와 같아 한 꺼풀씩 벗기다 보면 절로 눈물이 나거늘 물은 길이 열린 만큼 흘러간다
얼마 길지 않는 인생 누군가 있으면 먼 길도 가깝나니 우리 서로 길동무하면서 기꺼이 아름다운 동행을 하자
안국훈 시인 / 꼭 만나고 싶은 사람
내 이야기 잘 들어주는 사람 만나면 기분 좋아지고 잘 웃는 사람 만나면 멀리 있는 행복도 찾아온다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 만나면 늘 절로 미소 번지고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사람 만나면 항상 가슴 따뜻하니 좋다
부지런한 사람 만나면 언제나 삶이 풍요롭고 독서와 사색을 즐기는 사람 만나면 배울 게 많고 복 짓는 사람 만나면 행운이 따르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만나면 사랑받을 수 있다
작은 걸 소중히 여기는 사람 만나면 상처 치유하며 사는데 충분하고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사람 만나면 운명이란 이름으로 살아가도 좋다
안국훈 시인 / 세월 앞에서
막상 은퇴하고 나면 여유로울 것 같은 시간인데 왠지 일상은 뜬구름처럼 허망해지고 아이들 크는 것보다 더 빨리 늙는 것 같다 마음은 늘 급하기만 한데 남는 건 쌓여가는 메마른 낙엽뿐이고 세월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강물처럼 흘러가건만 인연은 밀고 당기며 고무줄처럼 이어간다 만나는 사람과 다 인연 맺을 수 없는 인생 아무리 미워도 원수 되지 않으려면 만나기 전에 살펴야 하고 친할수록 서로의 선을 지켜야 한다 자칫 함부로 대하다가 헤어지게 되나니 사랑은 뿌린 대로 거두기 마련이다 생각보다 더 짧아지는 것 같은 세월 앞에서 한 그루 나무가 된다
안국훈 시인 / 할 수 없는 일 어쩔 수 없지만 즐길 수 있는 건 세월이고 피할 수 없지만 맞설 수 있는 것은 운명이며 잊을 수는 없지만 지울 수는 있는 건 슬픔이고 먹지 않을 수 없지만 곱게 먹을 수 있는 게 나이다 잡을 수는 없지만 버릴 수는 있는 게 욕심이라면 해 뜨게 할 순 없지만 촛불 하나 켤 수 있는 건 희망이며 날아오를 수 있지만 멈출 수 없는 게 설렘이라면 날 위해선 없지만 널 위해선 할 수 있는 건 기다림이다 설득할 수 있지만 설명할 수 없는 게 마음이고 받을 수는 있지만 보낼 수는 없는 게 그리움이며 막을 수는 없지만 닦을 수는 있는 게 눈물이고 뺏을 수는 없지만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사랑 아닌가 예로부터 현명한 사람은 많이 아는 사람보다 늘 배우려는 사람이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잘난 척하는 사람보다 없을 때 칭송받는 사람이다
안국훈 시인 / 좋은 계절 저마다 좋아하는 계절 달라서 젊어서는 여름이 좋더니 나이 들어선 생동하는 봄이 좋더라 저마다 온몸으로 눈부신 계절 삶은 자신의 눈높이로 보고 세상을 자신의 복으로 살아간다 우동도 좋고 짜장도 좋아서 반반인 우짜면이 나오듯 겨울도 아니고 봄도 아닌 환절기도 괜찮거늘 그래 천국도 아니고 지옥도 아닌 세상 그냥 웃자 웃노라면 세상 좋아지겠지
안국훈 시인 / 시를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시는 꽃나무입니다 향기로운 창조적 꽃송이고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열매입니다 감동을 주거나 깨달음을 주고 행복을 주거나 새로운 세상을 열어줍니다
시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무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저 한 번 읽어주면 축복이고 가슴에 담아주면 행복해 할 뿐입니다
시는 영혼의 언어입니다 읽다 보면 공감하는 마음 느껴지니 해설이 필요 없습니다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하고 만질 수 없는 것을 만지게 합니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의 눈은 해맑은 아이의 눈망울처럼 반짝입니다 흙 속에 숨겨진 보석을 찾듯 시를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시를 읽는다는 건 생각을 공유하는 촛불 켜는 겁니다 찬란한 종착역이 꿈이면서도 꿈이 아닌 현실 속에 시공을 초월한 발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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