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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시인 / 구름 일기
괜찮아 엄마가 아직 안 왔으니까 바닥에 미소 라고 적으며 하늘을 보았다 웃으려고 하며 웃는 건 쉽다
우성아 구름에 대해 말하는 건 그만두자 엄마라면 이야기했겠지 믿지 않으니까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사랑하는 단어들을 떠올린다 내 머리 위에서만 비가 내린다 어린이도 아닌데
바닥에 창문이라고 적는다 적고 또 적고 돌아다니며 창문을 연다 구름을 그리다가 슥슥 발로 지워버린다
누가 나에게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말했었는데
후 입김을 불어보았다
창문들이 날아간다
잘 가라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우성 시인 / 그때
그때 벽은 상자 같았어 나는 상자 주위를 서성이다 의자에 앉았지 캔버스에 그림을 그렸어 상자를 열고 그림을 집어넣었어 그곳에서 그림이 완성되기를 바라며 우리가 늙는 것처럼 말이야
사람들이 와서 물었어 무엇을 그렸어요 누가 그걸 알겠어 나도 그림이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는데
재킷 주머니에서 노트를 꺼내 이렇게 적었어 상자 안에 그림
그리고 나는 죽었어 아마도 모두가 죽듯이 그렇게
나를 묻을 때 노트도 같이 묻었을까 노트는 자라서 나무 모양대로 변했을까 할 말이 많은 노인처럼 물보다 꾸준한 건 시간뿐이지
사람들은 벽 속에 그림이 있다는 걸 잊었어 당연히 상자도 잊었지
나는 다시 태어나서 벽의 소리를 들어 똑똑 나는 왜 두드릴까 상자 안에서 누군가 나올 거라고 그 안에 계단이 있고 모든 지나간 것들이 거기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러니까 그때는 영원히 여기에는 없다고 생각하며 죽은 걸까
이우성 시인 / 입 안 그리고 비어 있는 작은 방
그녀는 불빛을 모을 수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반짝였다 눈이 부셔서 그녀는 그녀가 공간처럼 보였다 보이지 않는 여자는 죽이고 모아 그녀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변신했고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녀는 상자 안으로 들어가 누웠다 못을 발꿈치를 바닥에 고정시켰다 뚜껑을 덮으면 상자는 침대였다 다음날 그녀의 침대는 다리게 네 개 달린 글자가 되었다 그녀는 그것을 발음하려고 했지만 입이 못으로 고정돼 있었다 그녀는 상자였다
언제부터 너는 나라는 말을 쉽게 했니 빛은 방 안에 있다 그녀는 상자를 집어 들고 흔들더니 입에 넣고 사라졌다
이우성 시인 / 그림과 거리
하얀 트럭이 파란 물 위에 있다
축구공이 혼자 굴러 공원으로 들어가고 구름도 그렇게 하늘로 오고
물결을 이루는 소리와 선을 긋는 새들의 기록
말을 하지 않아도 흘러가는 글자들 바구니를 들고 바람이 돌아다니는데
풀이 길어진다 의미도 없이 의자 앞에서 망설이는 사람의 마음이 보이는 거 같을 때
세계는 어떻게 생긴 걸까
다르게 읽으려고 멍하거나 슬퍼할 수는 있다
이우성 시인 / 모든 문은 하나의 표정이니까
몸 안의 바람이 바닥에 떨어진 것도 모르고 한참을 걸어갔네 생애가 끝날 무렵 바람에 의지하지 않고 걸어왔다는 것을 알았지 내가 만남 많은 바람이 누군가 떨어뜨린 바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는데
떨어진 바람은 부는 바람이 되었네 집이 사라졌을 때 바람은 어디로 가야 했을까 슬픔을 가방에 넣은 학생처럼 언젠가 모두 돌아서서 걷게 되는 것일까
지금 나를 밀고 가는 바람아 내 체온에서 네 집을 느끼니 몸을 떠난 모든 것은 내가 모르는 시간을 지나고 있구나 나는 너의 딱딱한 마음을 알지 하지만 괜찮아 너는 모든 문으로 들어가니까 바람아 날아서 새의 날개에 닫힌 문을 낳으렴 나는 남아 있는 노래를 부를게 그 노래가 어디에 담겨 있었겠니
이우성 시인 / 종이처럼
흙을 쥐고 손가락을 편다 잘 자라고 있구나 나무야
하늘을 모으면 새 나이를 알까
풀처럼 풀처럼 종이처럼
밀리는 비를 맞는다
섬세하게 땅은 반듯하게
걸으며 듣니 걸으며 분명할 수 있니 몸이 잘 맞니 하지만이라고 말해 하지만
기다리는 소리 없이 열리고 닫히는 사이는 건반처럼
꽃이 다가와 오래되었어
계단은 소리보다 분명하게 와 아이가 미안해해
꽃이 아니 문이 망설이니
이우성 시인 / 보름달을 빠져 나오는 저 사람
밤의 오토바이를 알고 있다. 휘파람의 속도로 유연하게 숫자를 비행하는 풍선
할머니는 어두워졌고 벌써 세 번째 인사를 건넨다 언제 왔어 그녀는 언제부터 골목을 버리기 시작했을까
문 닫는 슈퍼마켓 유리 저편 과자는 지루한 먼지를 덮고 잠이 들었다 방바닥에 혼자 앉아 벽을 바라보는 동안 그녀의 낮이 어두워지듯 새들도 밤의 눈썹을 잊고 날다 돌아볼 것이다
그러니 지금 달의 어느 모서리를 싣고 가로등 빛을 타넘으며 가는 저 분명한 오토바이를 붙들지 못한다 걸으며 할머니의 손을 잡는다 손과 손 사이로 하현과 그믐 빠져나가는 소리
언제 왔어 멍하니 떠 있던 이파리 하나 신발을 벗고 내려 내려와 정수리에 앉는다 높이 두둥실 날아오를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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