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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인 시인 / 인간은 왜 외로운가
청명한 여름 하늘에 한 점의 구름 그 구름을 좇아가는 한 줄기 바람
그 바람은 다시 시원한 소나기가 되었지 소나기 잠시 땅위에서 쉬다가 천천이 천천이 바다로 가겠지
바다는 결코 외롭지 않다
모두가 그를 좇아 가고 모두가 그의 품에서 잠들고 모두가 다시 그 속에서 태어난다
우리도 본래 바다에서 왔으니
태초의 생명도 그녀의 자궁에서 꿈뜰 거렸다
바다는 모든 생명의 어머니
나의 바다는 어디에 있는가
너무 커서 보기 힘들고 너무 깊어서 가름 할수 없는
깊고 넓고 푸르디 푸른 그대 와 나의 바다
그곳엔 외로움은 없네 영원한 즐거움 만이 존재하는 곳
서로의 고통은 녹아서 소금이 되어 버리고
서로의 기쁨은 하나 되어 힌수염 고래가 되겠지
그 힌수염 고래를 타고 우리는 바다 속 용궁을 찾아가
어여뿐 인어공주와 밤을 새며 이야기 할거다.
김정인 시인 / 갈대
갈대는 흔들릴 뿐 결코 쓰러지지 않았다.
바람이 부는 만큼 흔들릴 뿐이였다.
그 흔들림은 고통의 몸부름이 아니라 그저 그들만의 춤을 추고 있었다
산.
구름.
바람.
강.
고통의 몸부림은 오직 나약한 나 뿐이였고
세상 모든것들은 그들만의 춤을 추고있을 뿐이였다
김정인 시인 / 이모티콘에 대한 감정
카톡을 보낼 때 망설이는 것 명료하게 의사만 전달할까 색깔을 입혀볼까
덤인 이모티콘 절대 쉬운 감정이 아니다
오늘도 한 줄의 글에 풍경소리 실려 가길 바라며
마침표 없이 이모티콘을 얹어 보낸다 경쾌하게
-시집 『느닷없이 애플파이』 (서정시학, 2024)
김정인 시인 / 손톱
손톱은 제 뿌리를 본 적이 없다 가벼운 손가락을 들어 올려 허공을 찌를 때 곤두선 온몸이 제 뿌리인 줄 안다
어릴 적 손톱을 깨물던 버릇은 입 다문 비명을 잘근잘근 씹어대던 버릇은 손톱이 제 지문을 읽었기 때문일까 지금도 내 몸속 어딘가 피가 나도록 긁고 싶은 가려움이란 게 있어서 속살 깊이 숨은 뿌리에 갈퀴를 세운다
부러지고 갈라진 손톱의 궁리들, 도려낼수록 박인 굳은살이 숨길 수 없는 바람의 혓바늘로 돋는다 뼈보다 먼저 일어선 감각들은 핏줄을 타고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까시레기 떼어낸 붉은 생각이 움찔거린다 벗겨지다 만 매니큐어 손톱 자리 같은 날, 바람의 지느러미들이 푸석한 얼굴을 치켜든다 나는 살을 파고들며 기어이 피를 보겠다는 뿌리 하나를 뚝, 잘라냈다 떨어져 나간 그곳에 깊은 우물이 박혀 있다
김정인 시인 / 싹트는 감자
감자밭을 지나다 볼록한 밭두렁 파헤치는 손 보았네 감자알 서너 개 손바닥에 올려지는데 흙 위를 뒹구는 콩알만한 감자 씨알 햇빛에 꽃대를 세운 감자꽃과 한사코 접속을 시도중이네 솟아있는 꽃대 흔들리네. 무덤에서 요람까지 천지간 경계가 겨우 한 뼘 땅속과 두어 뼘 땅 위라니
씨로 남지 못하는 저 감자꽃, 싹튼 감자가 왜 독을 품어야 하는지 여전히 알 수 없다는 얼굴이네 내게도 안절부절 뽀록지로 돋는 씨눈들이 있었지 슈퍼마켓 봉지 속에서 몇날 며칠 더 이상 말라비틀어질 수 없어 파랗게 싹 틔운 감자처럼 내 몸 푸르등등 촉수 세운 나날
뭉쳐있는 내 어깻죽지 움켜잡고 등짝 뜨겁게 후려치며 지나간 그 낯모를 손, 어쩌면 알 것 같은 손, 남겨두고 싶지 않은 나날들 지금도 부엌 한 귀퉁이에서는 사다둔 기억조차 없는 감자알 사방팔방으로 눈 틔우고 있겠네 왜, 감자는 눈이 많은 거지?
김정인 시인 / 오곡밥
달이 가장 밝은 날엔 아직도 꼬투리를 털어내지 않은 곡식 보퉁이를 풀어 농사 밥을 짓는다 액은 멀리멀리 가라고 기쁜 소식만 오라고 고봉으로 담아낼 보름 밥을 짓는다
오곡밥을 먹어야 새살이 난다며 엄마는 새벽부터 부럼을 깨게 하고 묵은 나물을 무쳤다 쌀, 콩, 팥, 조, 수수처럼 색깔도 크기도 다른 우리 남매들은 손잡고 소원 빌며 둥근 달빛을 안았다
갈라진 엄마의 손끝에 퍼석퍼석 솟은 거스러미도 발아發芽를 꿈꾸는 정월 대보름날은 휘영청청 달빛 휘감고 보름 밥을 먹는다 시루에서 푹 쪄낸 풍요를 먹는다 서로 숟가락 건네며
김정인 시인 / 자연의 방식
흰 눈이 펑펑 하얗게 온 세상을 덮는다
같은 결정체는 하나도 없다는 얼음의 지문
눈송이 하나에도 다 풀어내지 못한 서사가 있다
머지않아 불현듯 소멸될 저 많은 우주들
내 머리 위에서 우주 몇 개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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