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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양해열 시인 / 살아 있는 장례식 외 6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12. 19.
양해열 시인 / 살아 있는 장례식

양해열 시인 / 살아 있는 장례식

 

 

고열과 기침이 난무하는 신종인플루엔자의 계절,

살아 있을 때 내 장례식을 치르고 싶었다

 

움직이는 시신들 영안실로 몰려와 두 번 절하고

부의함에 봉투 넣고 소음 속으로 섞여간다

아케론의 뱃사공 카론에게 건넬 여비가 생기면

3일장은 즐겁다

흰 국화꽃 한 송이 영정사진 옆에 놓고 기도하는 약혼녀

어제 종교를 바꿨으므로 오늘은 울지 않는다

빈 오동나무 관 속에서 시퍼런 번갯불 일고

천둥벼락 치는 소리 들려온다

종이컵에 부딪히는 전생의 내 이야기들

독한 소주 빛으로 방울져 은박매트에 똑똑 떨어진다

땅바닥에 깔린 은하수 속 목동 전갈 물병 사냥개 사수 고래.......

이승의 별명들이 별 무리로 흐르더니 별안간

밤하늘로 떠올라 다시 탯자리를 잡는다

 

자정이 오자 어제의 시신들 죽음의 방을 모두 빠져나가고

죽은 나만이 방명록을 펼쳐들고 운다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과 나타샤와 흰 당나귀, 악의 꽃

선암사 600년 묵은 홍매까지 조문객으로 다 왔는데

작년에 황천 가신 어머니만 오지 않았다

레테의 쇠가죽 북소리 둥둥 목구멍에 차온다

태양의 혼불이 탈 때 보고 싶은 사람 정령이 보인다 했지

해바라기 씨 기름에 무명심지 꽂고 성냥불을 댕긴다

저기, 내가 건너오지 못하도록 꼬박 일 년 째

망각의 강물을 바가지로 퍼내고 있는 어머니

꽃불 흔들며 환하게 웃고 있다

 

침묵의 옷을 입은 밤하늘의 관객들 눈만 껌벅인다

장례식 도중에 뛰쳐나와 옥상에 서서

밤새도록 쿨럭이며 우는

뜨거운 시신 하나

 

 


 

 

양해열 시인 / 싸이(Psy)

 

 

 1.

 빌보드차트가 위협하자 주먹을 내민 그의 파워에 관한 얘기다 세상의 전광판들은 회로 속 다이오드와 빛을 뜯어 먹게 되었다 덜 괴롭게 죽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유일한 2020년 유엔사무총장 후보를 보라

 

 오바마는 한반도를 정복할만한 군사력은 가지고 있지만 싸이를 주저앉힐 무기는 개발하지 못했다 차 한 잔 같이 마시는데 2억 원을 받은 팀 쿡이 조만간 세상에서 가장 좋은 컴퓨터를 내놓겠습니다, 말하자 기자들은 '그'보다 강합니까? 물었다 팀 쿡은 즉시 애플에서 사임했다. 오마르 알 바시르를 퇴출시키기 위해 그가 수단을 방문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바시르는 즉각 화성으로 망명했다 이제 세계는 평화롭다

 

 2.

 오 악마의 목구멍, 가여운 이과수여! 지금은 그가 세계에서 가장 큰 폭포이다 그는 시계를 차지 않는다 그가 시각을 정할 뿐이다 그가 뉴욕에서 재채기를 하면 일본 열도는 쓰나미에 시 달린다 그는

 

 스위치를 off로 누르고 어두워지기 전에 이불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팔굽혀펴기를 할 때 스 스로를 움직이지 않는다 지구가 내려갔다 올라갔다 할 뿐이다 그는

 

 이미 화성에 다녀왔다 그래서 그 행성에 외계생명의 흔적이 없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감기에 걸려 태양열을 조금 올렸을 뿐이다 아이들은 눈 위에다가 오줌으로 자기 이름을 쓰는 장난을 하곤 한다 그는 콘크리트 위에다가 할 수 있다. 그는 무한까지 세어보았다 그것도 두 번이나. 지구는 그가 춤추기 때문에 돌아간다 그는 커피 원두를 이빨로 갈아 전 세계로 판매할 것이다 그는 0으로 숫자를 나눌 수 있다

 

 3.

 진화론 따윈 없다 그가 살려준 생물만이 존재할 뿐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종교를 바꿨다. '그'다 그는 무리수 파이의 마지막 자릿수이다 그가 모든 것을 끝낸다

 

 레즈비언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그를 만나지 못한 여자들일 뿐이다

 

 신은 세계를 창조하는데 6일을 보내고 좀 쉰 다음에 그를 만드느라 수년을 보냈다 그리고 신이 말씀하시길....... 당장 튀어라! 그가 오고 있어! 출애굽기 어디쯤에 적혀 있다

 

 그는 눈을 뜨고 재채기할 수 있다 그는 양파를 울게 한다

 

 4.

 그가 말춤을 추기 전까진 지구는 평평했다

 

 나는 싸이다 물론 너도 싸이다 우린 싸이다

 

*위 시 중 일부는 인터넷에 떠도는 유머를 인용했음을 밝힌다.

 

 


 

 

양해열 시인 / 재수 없는 날의 오후

-게놈지도5

 

 

 14시, 게놈지도를 훑어본 보험설계사는 청약서에 ×표를 쳤다 붉은 십자가가 기울자 우울증이 심해졌다 탈모가 일어나고 비곗살 이 많아지고 시력이 나빠질 게 뻔하단다 우성인자를 복제하지 않고 자연 임신을 선택한 엄마가 오늘따라 더 밉다 왜 유전학자를 안 믿고 하느님을 믿었나요?

 

 또 취직에 실패했다 인사부장은 근로계약서를 화면에서 지웠다 진짜 이력서는 내 핏속에 있었다 1년 안에 조증에 걸릴 확률 50%, 상사 폭행 60% 집중력 상실 70%......양극성장애를 관장하는 내 11번 염색체, 빌빌 꼬인 불멸의 코일 탓이다 15시 정각의 비 행기가 3초씩이나 연착했을 때부터 조짐이 안 좋았다

 

 16시, 게놈지도를 위조하려던 극악무도한 놈과 유전자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오늘도 불신검문에 걸렸다 세상에나, 제 몸의 설계 도를 바꾸려는 놈이 또 있다니! 귓불이 따가운 건 둘째 치고 요즘은 피 한 방울도 아깝다 유진 머로우* 피도 이제 몇 팩 남지 않았다

 

 맞선 본 17시는 차라리 치욕이었다 공부 못하는 유전자를 가졌다며 비너스처럼 못생긴 여자에게 퇴짜 맞았다 요즘도 아이를 낳 으려는 여자가 있다니! 텅 빈 동물원에나 보낼 인간, 아냐 아직까지 그 여자, 사타구니에 캐스터네츠를 붙이고 있는 지도 몰라

 

*영화 '가타카'에 나오는 우성인자를 가진 주인공 이름에서 따옴.

 

 


 

 

양해열 시인 / 위험한 초대

 

 

1.

따로국밥을 먹고 있는데 날아든 청첩장

 

이혼식에 초대합니다. 부디 참석하시어 새로이 출발하려는 두 사람

축하해주십...

 

2.

청춘이 매장된 무덤을 위한 레퀴엠이 흐르고

파뿌리 송송 머리에 인 남녀

무대 위로 오르자

얼떨결에 꼬리 긴 박수를 마음으로 내리친 망치질에

결혼반지는 깨지고

몇 캐럿 부러운 시선들 샹들리에로 튄다

빛나는 졸업식 시원섭섭한 꽃다발 같은

안개꽃 부케를 바닥에 팽개치는

아리따운 신부

흩어진 별을 주우러 뛰쳐나가는

예비신부들....

 

3.

옆방 아내로부터 엽서가 왔다

문틈 사이로

 

나는 저 마음을 며칠째 뜯지 못하고

뿔로 방문을 밀고 밀고 있다

 

 


 

 

양해열 시인 / 비트겐슈타인 교수의 고별 강연

-열역학 4법칙과 추천사를 중심으로

 

 

 한 시절 잘 놀다가 오늘 나는, 신(神)이 내린 직장 대학 강단을 떠납니다

 

 두 갈래로 벌어진 역사라는 나뭇가지에 매어 늘인 동아줄을 붙잡고 밑싣개를 깔고 앉아보세요 산천을 벗 삼아 앞뒤로 왔다 갔다. 몸을 움직이며 그네, 를 타고 놀다가

 

 그네, 는 너희들의 왕이다, 라는 작금의 명제에게 말을 걸어보세요 나는 바람 먹고 좀먹은 허공에 걸린 그네, 를 알고 있다, 는 표현 을 사용하는 무어(G. E. Moore)에게 나무 그늘 아래 향단에게

 

 비릿한 바람과 썩어가는 밧줄과 나뭇가지로부터 당신들이 느낀 것들은 과연 정당한가? 물어보세요 땅바닥에 떨어져 허리가 부러 지고 무한퇴행에 빠진 세 평도 되지 않는 아버지 어머니들의 까칠한 하늘빛이 검은 이유를, 그 비루먹은 사실(史實)이 말하는 개뿔 같은 소리가 왜 함성으로 바뀌지 않는지를

 

 오늘은 지지발판과 축, 그 전체를 그네, 라고 그려보겠어요 그네, 세계의 그림

 

 그네, 를 타는 놈들에게 있어 그네, 는 왕이에요 그 왕권은 신에게서 위임 받았다고 우기지요 그래서 그네, 왕은 세계와 왕권의 시 초가 같은 것이라고 교육받으며 자란 못된 신의 시녀(侍女)일 수도 있어요

 

 왕 재수 없고 개 재미없어 열 받는 요즘, 어떤 예쁜 놈 하나가 당신들의 원수라고 해서 또 다른 예쁜 놈들 중 임의의 어떤 놈 하나 가 당신들의 원수가 될 수는 없어요 물론 그네, 라는 존재는 오랜 세월 좀을 먹고 소멸될 수도 새 바람을 먹고 창조될 수도 있고요

 

 새로 발견된 열역학 4법칙

 

 사람이라는 자연은 곧잘 역반응을 일으키지요 몸이 차갑다가도 분에 넘치면 이렇게 펄펄 끓지요 바람아 불어라 그네, 를 밀어버려 라! 나무처럼 하늘처럼 함께 증발하고 싶구나! 하면서........

 

 


 

 

양해열 시인 / 자라통

 

 

 울 하납씨 三冬이 오면 놋쇠자라통 꼭 보듬고 龜旨歌 가락 읊조리다가 괭이잠이 들곤 했는뎁쇼 늙고 식어가는 몸이 부른 노래치곤 너무 틉틉하지 않습니껴 개잘량 깔고 앉아 등딱지 갑골문자에 가슴팍 문지르며 움퍽짐퍽했던 선대의 문벌 흠모도 했겠지만 몽톡한 자라모가지 비비대며, 거북이나 남생이나 자라나 영물이긴 매 한 가지, 대감지야 나오니라 안 나오면 구워먹는다 대감지야 나오니라, 소캐이불 뒤집어쓰고 밤새도록 어르지나 않았을깝쇼

 

 남색짜리는커녕 깻잎나이 열셋에 위 아랫니 다 뽑히고 보쌈에 실려 별실로 첩실 든 언년이, 칠순 넘은 영감 물컹한 다리밋자루 움켜쥐고 허구헌날 끄윽끅 끄윽끅 노랑목이나 빼던 그 당골네집 딸년, 삼 년도 못 넘기고 아구창 앓아 흰등에 옥비녀 꽂고 야반 성황당길 돌아나간 등글게첩, 그 부르터진 아꾸주둥이가 눈에 아른거려 매코롬한 눈물이나마 두어 방울 흘리지 않았을깝쇼  

 

 손가락에 장을 지지소 고깃근께나 축내던 그 냥반 육집 내 보아허니, 장닭 홰치는 새북녘엔 미지근헌 물주댕이에 아랫도리 살살 문질렀을 것이구먼 성냥꼬타리맨치로 빼꼼 타오르다 꺼뻑, 뒈지기도 했을 것이여, 아믄이라 처납씨도 고 짓만으론 족했을 리 웂제라 북바리 좆 죄대끼 잇몸 잉깔라지고 쎗바닥에 백태 끼도록 자라모감지를 오물딱오물딱, 언년이 허던 짓을 안 했을상 부르요,

 

 요런 해괴망측하고 자발없는 이바구를 밤쥐가 들었는지 낮새가 들었는지 바리깡 기계독 오른 개버짐처럼 쏘삭쏘삭 휫대휫대 옹글옹글 신작로 타고 샛길 타고 부샄부샄 타고 들병이 초병이 병주둥이 타고 웃돔 아랫돔 근동 원동에 쫘르르르 쭈르르르 뽀르르르 번졌는뎁쇼

 

 허나, 진흙밭 속에서 금거북이가 걸어 나온다는 金龜沒泥  땅세에 반해 지리산 밑에 대궐집을 지었다는 울 하납씨, 큰 산 밑에 사는 죄로 한 번도 좋은 꼴은 못 봤다는 울 하납씨, 니미럴 쎼를 빼서 개 주둥이에 물려도 아까울 눔덜, 모가지 채 뽑아 똥장군통 마개로 쑤셔 박아도 시원찮을 눔덜, 니깟 농투산이들쯤이야, 근동의 왜자한 입소문을 근엄한 기침소리로 걸쭉한 몽둥이찜으로 삼칠 사륙 소작료 인상으로 니부 산부 장리빚 독촉으로 꽉 꽉 틀어막고, 이녘 자라통 일화를 남의 집 개망나니 짓거리로 딱, 잡아뗐는뎁쇼

 

 아 탕파 湯婆의 계절도 흐르는 세월의 서늘한 피를 덥히진 못했습죠 하납씨 꺾인 손목이 뱃가죽 허연 江기러기처럼 하늘에 내걸리는 날이 오고야 말았습죠 헌데, 아 글쎄 이게 웬 조홥니껴 하납씨 애지중지 아끼던 그 놋쇠자라통이 감쪽같이 사라졌지 뭡니껴

 

 쥐새끼가 알 낳을 일이로다 꼭 찾으럈다!

 개기일식 앓는 얼굴로 집사 어른, 부랴사랴 머슴 다섯을 풀어 살강 밑에서 마구간 칫간 속까지 온 집안 다 뒤지고 옆집에 앞집 뒷집 온 동네 개고랑창까지 사흘밤낮 발칵 뒤집어엎었는데도 끝내 찾아내지 못 했는뎁쇼

 

 허, 아흔아홉 칸 집 대청마루 밑에 백 칸 째 쪽방이 있는 줄 누가 알았겠습니껴 하룻날은 사내아이 꿈속으로 섬진강 자라 한 마리 눈알 끔벅끔벅 솟을대문 밀고 떠억허니 들어와 지리산 山손님이 며칠씩 묵어갔다는 그 방으로 쏙 들어가지 뭡니껴 내 넉장거리로 구운몽에 떨어졌다가 후다닥 일어나 거적 치우고 판자뚜껑 열고 엉금엉금 따라 들어가 보니 이게 웬일입니껴  棺 속 같은 흙방 한구석에 놋쇠자라통 하나가 푸른빛 뿜으며 엎드려 있었는뎁쇼

  

 아이고 아부지 아부지 아부지

 여수순천 사흘천하를 끝으로 노고단으로 피신한 아부지, 꽃 피는 화개동천 뒤로 두고 에망소총 메고 없지 아니한 긴 등길 부무장등릉선 不無長嶝稜線16)을 오른 아부지, 어떤 시인 말씀처럼 꽃 그려 새 울려놓고 세석평전으로 떠난 아부지, 젊은 아내 남산만한 배 한 번 어루만지고 웅석봉이라 달뜨기능선으로 숨어들어간 아부지, 얼굴도 생사도 모르는 여수 신월동 14연대 중대장 아이고 울 아부지, 이 백동백 지면 올랑가 저 피철쭉 피면 올랑가 꼰짓발17) 닳도록 눈썹 새도록 기다렸던 아부지 아부지 아부지, 어쩌다 산짐승처럼 어둠을 내려와 집으로 숨어드는 날이면 아흔아홉 칸 다 비워두고 백 칸 째 캄캄한 사랑방에서

 

 무릎 꿇고 자라통에다 찔끔찔끔

 오줌을 누었을 아부지 아부지 아부지,

 

 그래서 밤마다 雲鳥樓 뒷산은 입삣죽 입삣죽 맹랑한 삣죽새로 울고 그 소리 화답으로 하납씨는 수리루리루 수리루 어 이이 이히이히 산꾀꼬리로 날이 새도록 손목 꺾어 울었을까요 그래 엄니 가시던 날, 애먼 목 다 꺾는지 잘린 창자 다 뱉어내는지 핏새가 피피피피 피꺽 피 토하듯 사흘 온종일 울었을깝쇼

 

 아 지금은 怨鳥樓가 되었는지, 귀촉도 귀촉도 不如歸라 招魂鳥는 앞강 합수머리 좌우로 다녀 제 목 조르며 울고 고리갹 까옥 까옥 갹 까마귀도 피아골 얼음 깨고 와 부리 던지며 울고 수루루루 수루루루 호반새는 오미리 둠벙이 좁다고 뵤뵤 꽁지로 水深 잡아 일으키며 울고 쑥국 쑥쑥국 쑥국새는 활을 들고 뒷산 시누대밭에서 화살 꺾어 앵 찬 눈으로 울고 이리 가며 팽당그르르 저리 가며 행똥행똥 이리로 가며 히삐죽 저리로 가며 까불까불 잔말 많은 할미새도 외아들이 보고 싶어 온 마당 뒹굴며 두드리며 울고 때그르르르 내리며 꾸벅 때르르르 뚜드럭 오르며 꾸벅 찍꺽 때쩌구리도 이 가지 저 가지 고목을 돌며 처량하게 울고 있을깝쇼

 

 그리허여 어떤 날은 가슴에 든 돌덩이도 울고, 나는나는나는 뒷산 금대 은대를 모두 쳐서 입 시퍼런 죽창을 깎으리라 했습죠 아 어떤 날은, 누런 자라가 흙방에서 굼실굼실 기어 나와 싯누런 오줌을 누었습죠 한 줄기로 꼿꼿이 선 오줌발이 이엉차, 하늘로 오를 때 누런 자라도 둥싯, 떠올랐습죠 천하명당이 따로 있더냐! 고함소리 들리는 곳 쳐다보면 서쪽 하늘이 뻥 뚫려 있었습죠

 

 가끔 그 후로 저 하늘 저 빛깔 저 향기 아래, 물소리 죽인 섬진강과 나는 한숨 자지 않고 죽창만 깎아대고 있습죠 가끔 물가로 내려오는 청천 한 자락을 쿡쿡 찔러 대고 있습죠

 

-<시와 사람> 09 가을호

 

 


 

 

양해열 시인 / 2009년, 월식(月飾)의 이유

-배아복제13

 

 

 시인아, 나는 중력에 지쳤으므로 무중력의 춤에 쉽게 반했지

 

 앞으로만 돌아가는 지구별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 서면 땅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아, 거꾸로 걷고 싶었던 거야

 

 어느 날 외계인처럼 불쑥 나타난 마이클 잭슨, 태양빛을 거부한 흑백 뒤섞인 얼굴로 Billie Jean을 노래하며 Moon- Walk 춤을 추었지 네 아이를 가졌어 내 아이가 아니야, 목젖을 뒤로 꺾으며,발바닥으로 달 표면을 문지르듯 왼발 오른발을 번갈아 뒤로 미끄러뜨리며 무릎뼈를 살짝 구부렸지

 

 바닥을 밀며 뒤로 걷는 그 걸음, 왜 내 눈에는 공중에 붕 떠서 한 스텝 앞으로 나가는 것처럼 보였을까 달을 걷고 싶었던 거야

 

 독한 술에 취한 로봇 이카루스가 다리춤을 추는 한밤의 하수종말처리장 앞 도로, 잃어버린 날개와 죽은 재키를 연호하며 비맞은 좀비처럼 여자만의 바다, 죽지 않은 시체들이 춤을 추는 여기와 自轉을 동경하는 달이 가라앉은 저기, 살아 돌아온 마이클 잭슨이 내 아이가 맞아 네 아이가 아니야, 지금 바뀐 사랑을 노래하고 있어

 

 시인아. 팝의 황제가 그냥 죽었겠어! 자신을 복제하지 않았겠냐고! 정자은행에 맡겨진 재키의 유전자, 낡은 원본의 재키가 죽자마자 새로운 사본의 재키로 다시 태어났던 거야

 

 이제 웃으면서 거꾸로 걸어볼까 신나게 문-워크 춤을 따라 춰볼까 덜컹거리며 앞으로만 돌아가는 지구별의 그림자가 커지고 커져 달의 얼굴을 다 덮을 때까지, 태양빛을 반사하지 못한 달이 질식할 때까지, 저 달 속에 나만이 묻힐 때까지

 

 


 

양해열 시인 (1963-2019)

1963년 전남 순천 출생. 순천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수료. 2006년 《애지》신인상 〈미늘〉 外 4편이 당선되어 등단. 201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시조). 시집 『영산수궁가』. 2011년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2019.12 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