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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재호 시인 / 바닷가 우체국 외 7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12. 20.
김재호 시인 / 바닷가 우체국

김재호 시인 / 바닷가 우체국

 

 

소포를 보내려

종종걸음으로 우체국에 갔다

입구에 흐드러지게 목련이 피었다

 

지난밤 거센 바닷바람에

밤새 떨었을 목련

후드득

제 몸 덜어내며 얼마나 흐느꼈을까

 

편지 부치고 소포 보내는 이들은

싱그러운 바다 냄새와

따스한 봄소식도 덤으로 보낸다

 

우표 붙이고 봉투 봉하기 전

파도소리  한 줌

목련 몇 송이 향기 담았다

 

소포를 받아 든 그에게

남녘의 봄소식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김재호 시인 / 농담처럼

 

 

우리 언제

밥 한번 먹어요.

 

전화를 끊으면서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허공에 잠시 머물다 그만 툭..!

내동댕이쳐져요.

 

아, 반가워요.

이게 얼마만이래요.

 

입꼬리가 치켜 올라간 농처럼

진심이 담기지 않아요.

 

코로나 19의 영향을 감안해도

공수표가 얼마였는지...

 

단순한 인사치레는

그의 머릿속을 헤집어놓아요.

 

해독 하느라

소중한 시간이 마구 흘러가요.

 

계산 없이

발행한 영수증 처럼

 

입고와

출고의 간극은

사용주의 계좌에 심각한 상처를 남겨요.

 

​자칫 깡통을 차기

안성맞춤 이죠.

마음을

가다듬어요.

우리,

다음 주말에 만나요.

 

점심은 내가 살 께 요.

 

 


 

 

김재호 시인 / 첫눈

 

 

새벽길 가지런히

별들이 내려왔네

 

발자국 남기려니

가슴이 젖어오네

 

사뿐히

내디딘 걸음

보드라운 별자리

 

 


 

 

김재호 시인 / 중년 보고서

 

 

희끗희끗

서리 내린

민둥산 마루턱에

 

헐거운 망태 하나

덩그러니 걸터앉아

 

청청한 세월이 남긴 나이테 헤아릴까

 

 


 

 

김재호 시인 / 치자꽃

 

 

뽀얗게 물들여

가슴 적시고

젖을 문 아이 웃음처럼 동동 떠오르다

 

안개 걷히듯

시야에서 멀어질 때

심장은 이미 멈춰 있었다

 

그가 떠난 후

빌려 쓴 마음처럼

잿빛으로 물들어갔다.

 

 


 

 

김재호 시인 / 행간에 비친 주님

 

 

 행간마다 저 깊은 곳에서 생수가 샘솟는다

 엿새 동안 펼쳐진 좋았더라 좋았더라의 행진이 끝나고 그가 인도하며 긴 숨을 내쉬었을 때 시간의 동선에서 비켜선 선자의 낯익은 생각들이 상처 위에 앉은 수포처럼 증식되는 무수한 무중력의

 밤하늘 별을 보며 올려드리던 기도는 유성처럼 스러져 가는데 화해의 손을 내밀던 날의 빛은 외마디 비명같은 꼬리 남기며 사라지고 포도원을 서성이던 가슴엔 시작도 끝도 여반장이라 기포처럼 선명하게 흩어지는

 향방을 모르기는 바람뿐 아니다 그가 동하면서요 서하면 동이라 허물은 부스러기라도 벗어내야 하고 용서는 티끌이라도 탓하지 않으니 봄을 맞아 제 몸을 터뜨려 순례를 시작하듯 짓누르는 무게의 침묵을 벗으라 얍복 나루에서 환도뼈 꺾이리니

 가죽옷을 짓고 무화과 잎으로 가린다고 덮이랴 유리 천정 위에 서면 수치가 드러나리니 오호 통재라! 신이여 나의 허물을 용서하소서 고백의 수직 물관을 당겨 거북등 같은 허물을 채우리니 한 생을 부리며 허세로 휘적이던 때 묻은 옷자락을 그의 강가에 벗어내려 하네

 포도원 문 열고 들어선 별이 기억의 지층을 씻어낸다

 

-2022년 국민일보 신춘문예 신앙시 대상

 

 


 

 

김재호 시인 / 타이어의 辯

 

 

 그가 말했다

 어디를 가야 하는지 아느냐고

 나는 모른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행선지를 알리지도 않은 채 시동을 건다

 마치, 내가 다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온몸에 전율이 흐르면서 강하게 휘발유 냄새가 온몸을 감싸며 퍼져나간다

 잠깐의 머뭇거림도 없이 내 몸을 유린하기 시작한다

 뜨거운 아스팔트 열기에 숨이 컥 하고 막힐 거 같다

 자갈이 사정없이 파고들고 웅덩이 고인 물에 사정없이 처박힌다

 오늘은 어디로 끌고 가려는가

 그는 예의범절이 뭔지를 모르는 게 분명하다

 이리도 거칠고 무례하다니

 처음 나를 만난 날

 경이로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그 시선이 지금도 거울을 보는듯한데

 지나간 세월 속에 이리도 변하여 가다니

 그는 나를 마치 우마차라도 되는 양

 지저분한 곳으로 데리고 다닌다

 단 한 번도 행선지를 밝힌 적이 없이 그저 자기만 따라오라고 한다

 나는 그가 피다 버린 담배꽁초보다 못한 것이 분명하다

 지금껏 한 번도 다정하게 얘기한 적도 따스하게 품어준 적이 없다

 폭풍이 몰아치던 밤에도 나는 어두운 구석에서 긴 밤을 지새웠고

 한겨울의 매서운 칼바람도 벌거벗은 몸으로 견뎌내야 했다

 행여,내 몸에 상처라도 날라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버림받기 일쑤이다

 그런데도 그와 나는 하루도 떨어져 본 적이 없는 바늘과 실이다

 

 


 

 

김재호 시인 / 그러니까

 

 

 뒷굽이 닳은 구두의 안색이 편안합니다

 

 그가 떠난 후 오롯이 현관 구석에서 남은 열기와

 따스했던 순간을 추억한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번쩍번쩍한 구두는 사내의 두텁고 갈라진 뒤꿈치와 데면데면합니다

 그저 낡았지만 가볍고

 편안하게 감싸주는 수더분한 그가 좋습니다

 

 하이든의 종달새 마냥

 총총총

 상큼한 아침이 반갑습니다

 

 거리로 나서면 우측으로 통通합니다

 만나는 사람들의 말이 말馬이 되어 또각또각 사라지지 않을 지층을 형성하는데 그 끝이 페가수소*로 내달립니다

 

 길거리를 청소하는 미화원의 눈길을 피해

 지난,지지난 계절에 뿌려진 씨앗이 보도블록 틈새에 뿌리를 내리면서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찰나의 엑스터시에 떨고 있습니다

 

 도시의 속도는 마하**입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안드로메다에 이르지요

 심장은 집안에 잘 모셔두었답니다

 가끔 잊은 척

 외출은 껍데기와의 속 깊은 대화입니다

 

 우리 밥 한번 먹어요

 차 한 잔 합시다

 아니, 지금 당장 만나요.

 

*전설의 백마

**속도의 단위

 

 


 

김재호 시인

1961년 경북 포항 출생. 2016년 월간 《창조문예》로 등단. 한하운(하운) 문학상, 순암 안정복 문학상, 강원경제신문 코벤트 문학상 수상. 《창조문예》 시. 《영남문학》 시,시조. 《아람문학》 동시. 《현대시선 》시. 창조문예 동인, 영남문학, 예술인협회, 아람문인협회, 경북문인협회, 포항문인협회, 저서(e-북) <그대 창가에 머물다>, <내 마음의 창> 현대제철주식회사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