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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주 시인 / 나머지 말의 기록
심심해야 한다 천국이 심심하다 나의 진입은 더러운 라디오로 시작하여 리듬으로 꺼진다
동조의 차원에서 보면 감정은 형상의 것이 아니다 혼란을 막기 위해 정해진 이름순으로 따박따박 걸어 내려가는 어느 병동의 비상계단 더러워서 심각하게 수컷은 죽어나간다
박제사의 손길이 오늘도 바쁘다 아침마다 수거하는 세탁물처럼 수컷의 꼬리는 옷걸이에 거꾸로 내걸린다 말더듬이가 되기 위해 아이들은 간호사를 질식시키고 돛단배 모자가 세면대 위를 부유한다
첫, 첫 발음이 나오질 않는다 이름 석 자로 지워진 망국으로부터 미증유의 수술대가 펼쳐질 때 불을 받을수록 하얘지는 연탄의 얼굴 같은, 가난한 체계를 나는 거부한다 붉은 점멸이 [혀로부터] 때론 연인의 가슴만 하게 잔혹해진다 우리는 골격으로부터 멸망해 왔다
할말이없다고말하는나의할말을잊어주길바란다너는드물게스며들거나자주가라앉거나한다하루의부피쯤은이정도쯤이라고가지런히손을폈다가이상하게공기에도살냄새가난다고말하는너두귀를 쫑긋세우고어쩐지바람이불면바람같은살냄새가어른이되어처음맡아본나날같이한소녀의살결과무늬가같다고돌하나던지는것으로하루가가라앉기도한다고오후와증오가가깝다거나닮았을내일이그모레도무늬가같다고말한다
후대에 나의 눈을 열어 나인양 행세할 망령들에게
나는 지워졌다 나는,
오늘부터가 기억이다
김기주 시인 / 가우도
가보고 싶다던 가우도 출렁다리 맢에섰다 바다를 등지고 돌아앉은 동상앞에 들은적은 있다마는 민족 시인 김영랑 까까머리 학창시절 줄줄이 외웠었지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봄을 기다리고 있을거예요 바다를 바라보며 읊조려본다
김기주 시인 / 내가 내 속의 나보다 겉에 있다
길을 가다가 차에 치인 개가 보였어 차들이 밟지 않으려고 바퀴 사이로 저 개를 흘려보낸다는 게 너무 괘씸해서 차를 세우고 개를 잡았어 따뜻하더라 겁이 났어 완전히 죽지 않았을까봐 아프다고 신음할 걸 볼 자신이 없었어 이걸 다행이라고 할까, 개는 따뜻하게 죽었더라 마지막 열을 온 힘을 다해 내고 있었어 사람들이 잘 안보이는 화단에 개를 올려놓고 난 내 갈 길 가려는데, 저 죽은 개를 아무도 보고 싶지 않을거야 죽음을 보인다는 게 부끄러운 게 돼버리는 이런 개 같은 경우 봉투를 구해서 죽음을 담고 산에 올라갔어 죽음이라는 거, 꽤 무겁더라 있잖아 개를 묻는 게 불법이래 개를 담는 봉투에 담아서 버려야 한다더라고 나는 지금 불법을 저지른 범죄자야 어제 눈이 와서 산엔 곳곳에 눈이 녹지 않았던데 따뜻한 죽음이 언 땅을 녹이더라 산을 내려오는 발자국이 크게 들리기 시작했어 비둘기가 나는 것도 고양이가 앉아 있는 것도 진돗개가 짖어대는 것도 참 대단한 사건이더라 개를 묻었는데 차가운 내 두 눈이 거기 묻혀 있었어
김기주 시인 / 밀크카라멜 카라멜을 먹다 粘性에 이가 빠졌다
이는 아프지 않고 잇몸이 아프다
이 사이사이에 있는 달콤함을 닦아내며,
이는 이대로 있었다
이제 나는 웃을 때 웃기다
잇몸을 드러내며 웃게 되었다
김기주 시인 / 레제드라마
왜 밥알은 크기가 같을까 생각할 때마다 붕어 입술을 하게 된다.
배가 통통해진 붕어는 하루 아니면 이틀 지나 꼭 죽는다지.
작은 어항을 줄에 달아 목걸이로 하고 있는 여자 앞에서 얼굴 한쪽을 떼어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반 덜어내고 다시 반 덜어,
밥 먹자.
김기주 시인 / 평일
너 내일 시집간다 하품처럼 붙들려서 가능한 한 멀리가자 당연한 것이 계속되어서 설명할 수가 없을 만큼 영혼과 정신의 차이를 나는 아직 모르겠어 그런 말을 해주면서 내가 먼저 도착하고 너는 조금 늦고, 커피물이 알맞게 식었을 때 찾아온 너 때문에 나는 그만 웃고 말았네 내일부터 우리 만나면 안녕, 안녕 서로 얼마만큼은 모른다는 인사를 해야 할까 정확하게 미치진 말자 12시간, 돌아오는 시간 12시간 우리의 바깥까지는 갈 수 있겠지 너, 아래로 꿈꾸는 건 오늘까지다 꿈에 걸려 넘어져서 같이 한바탕 크게 웃고 내 팔에 꼭 안기고서 네팔에는 사람 수만큼 신이 있대 그런 말도 해주면서 너 내일 시집간다 커피 잔을 건네고 우연히 우리가 된 현장에서 우리는 무엇을 목격할 수 있을까 너는 모르고 나만 알게 된다면
김기주 시인 / 컷과 컷
왜 너를 말할까
나는 기도에 너는 식도에 서서
점점 지겨워지는 너에게 키스부터 하자 말했을 때
나는 네 애인보다 친한 사람
어차피 계속되는 식사에서 당연하게 말하지 말라는 식의 대화에서 맥주 거품은 잠시 벗어나려다 가라앉는 중!
나는 그리 아름답지 않은 여자를 찾아서 떠난다
벌집이 사라진 자리에 다시 모여드는 벌처럼
네가 부엌에 없으면 부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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