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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양안다 시인 / 축제는 시작되지 않았어요 외 6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12. 20.
양안다 시인 / 축제는 시작되지 않았어요

양안다 시인 / 축제는 시작되지 않았어요

​​

나는 너무 늦게 도착한 편지입니다. 말라 죽은 넝쿨이 나의 마음이자

손님들이 나에게서 떠난 이유입니다.

모두 떠나간 대저택에서.

바람 빠진 풍선처럼 공허했습니다. 나의 몸은 점점 작아지고.

욕조에 가라앉은 채로

우는 버릇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냄비에는 끓는 물이 넘치고 있는데요.

은 접시를 집어 던지는 것이지요. 이런 내가 싫어서.

연미복을 입은 채 강물에 뛰어드는 것이고요.

테이블에 착석해주십시오.

음식은 반시계 방향으로 넘기는 게 예절입니다 부족한건

없으십니까?

나는 내일의 손님들을 대접하는데.

취미로 기른 크랜베리를 따면 손끝이 붉게 물듭니다.

생채기가 아물면 나의 살은 어쩐지 두꺼워지고요. 정원에서

젖은 흙으로 소꿉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그래도 씻어야지. 내일 또 더러워질 걸 알면서도. 그러고 나서 손님들에게 정중하게 사과하는 거야 .....

다짐합니다.

다시 편지를 쓰겠습니다. 이 대저택에 모두를 초대하려고.

풍선 부는 아이들이 점점 작아지고요.

탄 냄새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양안다 시인 / 미열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달이 뜨는 이유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결론에 도달하면

 아무도 모르는 마음이 뒤따라오는데

 

 사실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던 위로는 각자의 각오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우리들이 꾸려 했던 모든 꿈이 위악이라는 걸 알았을 때, 우리가 느낀 건 실망이 아닌 동경에 가까웠다 밤이 지나고 오는 건 새벽인데 사람들은 왜 아침이 온다고 하는 걸까

 

 새벽이 만드는 소량의 빛과 소음 속에서

 

 어느 취객은 유기견을 걷어차면서 걷고 있었다 그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욕을 뱉으며 죽어버리자 그냥 죽이고 죽어버리자, 중얼거렸지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는 취한 채 다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어느 날 불어난 강물 위로 달이 깨질 듯 일렁이고 있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죽고자 했던 건 아니었다 춤을 추고자 했던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가 십자 모양의 성냥을 꺼내 들었을 때, 맞잡은 손으로 땀이 배어 나올 때

 

 우리들은 그림자를 제외한

 모든 걸 지워내고 싶었을 뿐인데

 

 광장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사람들을 보며 어쩌다 세계는 이 지경이 됐고 사람들은 액자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지 모르겠어서

 

 우리들은 자꾸 반대로 걷고

 누군가는 방향이 틀렸다고 하지만

 유기견을 걷어차면서까지 되고자 했던 건 아마 고아가 아니었을까 우리는 멀리 달아나자고,

 우리는 언제까지나 우리로 존재했으면

 

 먼저 죽은 이들이 우리의 죽음을 마중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악의가 흔들리는데 누구 하나 살아 돌아오지 않고

 그 사실이 슬프지 않을 때면

 몸은 열에 잠기기 시작하고

 

 


 

 

양안다 시인 / 우연오차

 

 

 그때 덤프트럭에 치인 게 내가 아니라 왜 고양이였을까

 그는 그저 죽은 고양이 옆에 동전 몇 개를 두고 왔을 뿐이고

 

 두 갈래 길에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생각하는 동안 그는 왜 세 갈래가 아니냐며 억울해했다

 

 가끔은 그런 걸 고민할 때가 있다 그의 왼편과 오른편 중 어디에 서서 걸 어야 할지

 

 그에게 물어봤다면 그게 고민할 만한 거냐고 되물었겠지만

 

 식당에 가면 어디에 앉을지 망설였다 그래서 내가 앉은 곳은 항상 그의 건너편이었다.

 

 참지 못할 때마다 나를 벗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을 때 그는 세상엔 용서 가능한 일이 너무 많다고 말했는데

 

 쥐인지 참새인지 모를 납작한 사체를 향해 나이만큼 침을 뱉던 날도 있

었다 어제였거나 유년이었거나 십 년 뒤의 일이었고

 

 다른 나라에서 어떤 맹인이 귀를 잘랐다는 소식을 들었다 맹인은 칼 대 신동전을 쥐고 있었을까

 

 같이 죽어 버리자고 만났으면서 왜 이런 얘기나 하고 있는 걸까 둘 말고

 아무도 없는 방이었고 밤이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옆을 더듬어 그를 찾았다 그러자 그가 존재하기 시작했다

 비로소 서로가 존재하고 있었다

 

 


 

 

양안다 시인 / 저글링

 

 

공중으로

 

식칼을 던진다. 식칼을 던진다. 식칼 두 자루가 공중을

 

통과하고

.

모든 빛이 식칼에게 쏟아진다.

 

반사합니다. 눈동자 위로 태양. 눈동자 위로 태양이 지나가고. 태양 두 개가

 

새의 두 눈에 떠 있으면.

 

이제 너의 차례입니다. 태양이 태양에게

이제 나의 차례입니까. 태양이 태양에게

 

식칼이

 

추락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추락입니다. 식칼 두 자루가 공중을 통과한다. 새가 그 자리를 지나가면.

 

잘린 손목을 두고 가겠습니다.

 

그러면 나를 용서해줄 줄 알았어.

 

-『현대시』 2022-11월(395)호

 

 


 

 

양안다 시인 / 천사를 거부하는 우울한 연인에게

 

 

 내가 내 문제를 끝낼 수 있게 도와줘.

 

 우리는 혼절한 단어를 너무 많이 받아 적었잖아.

 우리는 해롭고 틀린 방식으로 기절합니다. 새벽이면 우리의 방에 청색 리듬이 필요합니다. 등불이 밤새도록 헤엄치고. 목구멍은 가끔 악기가 되어서. 슬픔에 잠긴 돌, 이름을 붙여줄까요? 중력이 우리를 지배합니다. 무너지는 집을 떠나야죠. 척추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유연함은 우리의 전공입니다. 그래요. 새벽에 적응하지 못한 짐승이 졸도하는 시간이에요. 어두운 숲에서 눈뜨고 잠든 건 나무가 아니라

 

 우리였습니까?

 

 짐승이 되는 꿈은

 해일을 일으킨다. 악몽은 당신을 가파른 협곡으로 몰아붙인다.

 당신의 발에 두 손을 얹을게. 새벽 욕조의 푸른색으로.

 온수입니다. 물속에서 빛나는 우리 발목을 봐. 어떤 어류가 우리를 간질인다.

 피울 때마다 안개가 드리웠지요. 입맞추기 전에 기도를 가볍게 올렸어요.

 우리는 인어의 방식으로 익사하지 않는다.

 잠깐 잊은 꿈을 말해줄게.

 그 꿈에서 우리는 온순한 짐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창문 밖으로 작은 나룻배가 적란운 사이를 떠다녔지.

 당신은 악몽을 떨쳐내려 밤의 악보를 소리 내어 읽었어.

 가라앉은 문장들이 우리의 목소리라고 하지 말아줘.

 멀고 공허해. 텅 빈 공간도 망령으로 가득차 있다고 믿었잖아.

 별들은 오리온자리 배열로 빛나는데, 그래, 내가 잘게 흩어졌어.

 그리고 나는 당신에게 지평선이 불탄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당신에게 우리 반지의 테두리가 빛난다고 말했다.

 당신은 내가 외면한 슬픔의 총체인 걸까.

 우리는 아름다운 종류의 괴물을 천사라고 부르기로 합의했는데.

 우리가 영원히 깨어날 수 없다는 말에 동의해줘.

 이곳에서 기절하지 않을 거야.

 우리는 좋은 부부가 될 거야. 우리는 좋은 부모가 되지 못할 거야.

 알 수 없는 구름 속으로 나룻배가 산산조각나고 있어. 내가 절반 이상 죽은 줄 알았어.

 그리고 가느다란 월식. 그리고

 누군가가 우리의 문을

 

 노크할 때.

 

 창문에서 새벽빛이 쏟아진다. 블루.

 

 


 

 

양안다 시인 / 환

 

 

 그렇습니까. 창문이 풍경을 잃으면 벽이 된다고. 너는 너의 결함이 담긴 상자를 찾으려 애쓴다. 태양의 빛이 두꺼비를 삼키는 게 아니라 반대로 그러하듯이. 너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바보처럼 보이길 좋아한다. 나의 경험에 따르면 너는 지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투명한 창문 위로 빛이 번진다. 하나의 빛이 여러 색채를 가진다. 잔을 비우고 취할 때면 눈 닿는 곳마다 무지개가 떠 있다. 너는 그것이 무슨 소리냐고 묻는다. 그것을 잘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안다 시인 / Queen of Cups

 

 

네 꼴을 좀 봐.

지루해질 때마다 손톱과 눈동자가

달의 모양을 모방하고 있다.

춤과 불과 절정에서

아름다워. 우리의 악몽 속에서 발레리나가

발끝을 세우고 있습니다. 종아리 근육을 풀었다가

당겼다가…… 뛰었습니다.

달빛은 우리 표정을 녹아내리게 만들었지요.

너는 조금 웃는다.

나는 조금 울고 있는데.

일회용 화약에

밤하늘이 조각난다.

그날 밤, 갈비뼈 안에 새 한 마리

기르고 싶었고 깃털을 가진 채로 우리는

그림자 위로 오차 없이 추락한다.

우매한 지식인처럼.

자애로운 여왕처럼.

“모두 무엇을 위해 나빠지는 걸까요.”

“그들의 부모요. 자식이자 사랑이요.”

의리만 남은 불한당처럼.

창문 밖에서 달이 타오르는데

거울 안에서 달이 얼어붙는다.

멍청이들을 기념하기 위해 잔을 부딪치자. 컵에는 알코올과 손가락과

빛의 반사만 각인됩니다.

너는 조금 손톱을 뜯는다.

나는 조금 눈동자를 떨고 있는데.

여름이 지나간 숲을 걷던 어느 날이었다.

우리는 숲속 깊은 곳 나무 밑에

우리의 믿음을 매장하려 했다—선한 기억은 선한 마음의

토대가 된다……

꽃삽 들고 흙을 퍼낸 건 나였습니다.

—무슨 벌레가 이렇게 많아?

—빨리 끝내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습하고 더워.

—여기에도 이렇게 많은 애들이 살려고 기어나오고 있어.

—나는 땀에 절면 죽고 싶단 말야.

믿음은 잠시 뒤로 두고

구름무늬 돗자리를 펼쳤습니다.

그리고 매정하게 사랑을 나누었다.

모순을 좇는 머저리처럼.

맹목인 줄도 모르는 지지자처럼.

밤의 숲에는

밤의 달이 뜨고

밤의 숲에는

밤의 우리가 나빠지고 있었다. 믿음을 잘 버렸네요.

이렇게 가벼운 줄 몰랐어. 부러진 가지를 모아

불을 지폈고 나체로 춤을 추었고

절정이었을까?

아름다워. 숲속의 호수가

달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물결을 풀었다가

당겼다가…… 뛰어들었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익사하지 않아요.

네 꼴을 좀 봐.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지.

너는 조금 춤을 춘다.

나는 조금 불을 지켜보고 있는데.

우리는 이 세계의 멀리건.

너의 잔에 달이 떠 있어.

나의 잔에도 달이 떠 있구나.

우리는 그것을 들이켰다.

내부에서 울고 있는 새와 함께

도주하는 빛에 대하여 노래하였다.

 

 


 

양안다 시인

1992년 충남 천안 출생. 대전대 문예창작학과. 2014년 《현대문학》 6월호에 신인추천 당선으로 등단. <작은 미래의 책> <백야의 소문으로 영원히> <세계의 끝에서 우리는> <숲의 소실점을 향해>. 동인시집 <한 줄도 너를 잊지 못했다>. 창작 동인 '뿔'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