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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채지원 시인 / 거울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12. 21.
채지원 시인 / 거울

채지원 시인 / 거울

 

패티쉬, 일몰을 보다

너울거리던 구름 속의 등대가, 차마

알 수 없는 그리움들로 범벅이 된

해맑은 함성 던져두고 오세요 당신은

아씨같던 밭고랑들의 어두운 숨소리조차

더 이상 반기지 않죠.....

우리들의 서사가 밑그림처럼 보여요

알 수 없는 비밀, 자물통에 걸려진 햇살 한조각조차

이젠 소중한 걸요

​​

-웹진 『시인광장』 2025년 12월호 발표

 

 


 

 

채지원 시인 / 알츠하이머

엄마가 잠들던 그 요 위에

꽃무늬 아롱진 담요 위에

밤마다 서걱이는 상처

내려놓아요

아빠의 얼굴이 잊혀져

그와의 결혼 생활이 지워져

기억나지 않는다해도

괜찮아요 엄마는 엄마니까

나의 엄마니까

도시락을 챙기고

정신병원에 사과를 넣어주고

둑방길을 하염없이 걷던

하얀 손길은 이미 쭈그러졌지만

그래도 엄마인 걸

우리들의 어머니, 요 위에 누워

편안하게 아빠를 바라보아요

어느덧 반백의 이마 위 송글거리는

함성을 뒤로하고 이제껏 묵혀온

정들 살뜰히 풀어봐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해도 좋아

나의 이름도

지난날 함께했던 시간들조차

흔들리듯 멈추는 걸

가만히 지켜만 봐요

곧 올거야

봄의 여신이 당신을 꼬옥

껴안고 가만히 속삭일거야

머릿 속 깨알같은 그림들이

피어나도록

화안하게 웃을 수 있도록

-계간 『시작』 2025 여름호 발표

 

 


 

 

채지원 시인 / 제주, 제주

바다가 두고 간 밀어들

이제 그만, 나를 바라보아요

햇살에 비추인 섬 할머니의 미소

단내나는 사투리

버스 정류장에 온기를 드리우네

그 이의 조카는 며칠 전 자살했다든가

저 넘싯대는 바다를 앞에 두고

생을 마감한 청년

시절처럼 아프게

저미네

햇살처럼 눈부시던 주름진 입가

굽은 등

버스에 오르시는 제주 할멍

​​

-계간 『불교문예』 2025년 여름호 발표

 

 


 

채지원 시인

서울 출생. 상명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동국대학교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박사 과정 수료. 현재 서울 수서중학교 국어교사. 2008년 <<문학과 의식>>으로 등단.   2016년 청소년시집 『대단한 놈들이다』 출간. 2020년 시집 『판타스마고리아』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