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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경애 시인 / 詩의 힘 외 6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12. 21.
김경애 시인 / 詩의 힘

김경애 시인 / 詩의 힘

 

 

가짜와 진짜를 구분 못하고

김짜 같은 가짜들 속에서

한 번도 진짜가 아닌 것 같은

작고 초라한 나는

한 가닥 남은

사랑조차도 가짜라고 생각할 때

詩만이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진짜 대신 들어찬 젖은 맘에

온몸을 뜨겁게 달구는 가짜의 바람

그러나 나를 다시 살게 하는 것은

가짜가 진짜가 되는 길

그것이 詩만이 할 수 있어

詩를 나의 유일한 친구라 생각할 때가 있다

 


 

김경애 시인 / 나무

 

 

나무는 말이 없다.

말은 없어도 꿈은 있다.

자기의 소중한 가치를 알고

태양과 벗하고, 달님과 속삭이며,

숨쉬고, 일하고, 잠자고,

추위와 온갖 풍상을 인내하고,

달관하며 자기의 귀한 몸을 이끌어간다.

생명수인 물을 한 방울이라도 아끼고,

아껴 쓰는 지혜는 최고의 살림꾼이다.

 

 


 

 

<세월호 참사 10주기 추모시>

 

김경애 시인 / 매일이 축제 같고 매일이 지옥 같은 날

 

 

너를 보내고 10년,

너를 보낸 지 벌써 10년이 되어버렸다.

올해는 유난히 벚꽃이 예뻤단다.

꽃샘추위도 피해 가고 봄비도 비껴가고

우리나라 온 동네 만화방창

벚꽃들이 팡팡팡 터져 오래 우리 곁에 머물렀단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매일이

2014년 4월 16일이었다.

시간은 흘러가도 우리 집 시계는 그대로 멈춰 있다.

여전히 새벽이 오고, 아침과 밤이 찾아왔다.

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또 계절이 갔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세월호와 함께 사라진 너는 돌아오지 못했다.

웃고 있어도 웃는 게 아니었다.

웃으면 웃을수록 명치끝은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수많은 시간이 미친 듯이 사라져 버렸다.

 

그때, 너는 친구들과 까르르 웃는

꿈이 많은 열여덟 살이었다.

그때, 나는 마흔 살을 조금 지나

이제 좀 살만한 나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세상은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는데

나는 흰머리가 가득하고, 여전히 그날처럼 어지럽다.

 

잊지 않겠다고, 지켜주겠다고 했던 말들도

아니, 두 번 다시 세월호 참사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고

촛불을 들었던 손들도 산산이 무너져 내렸다.

 

믿을 수 없는 이태원 참사가 또 일어났다.

울며불며 내 아이를 살려달라고 소리쳐도

허공으로 흩어지는 곡소리들

천불이 나고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10년이 지난 오늘,

304명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진실은 밝혀질까? 세상은 바뀔까?

매일이 지옥 같은 날이 아닌,

평범한 날, 안전한 날, 평화로운 날이면 좋겠다.

한 번도 잊은 적 없는 너의 이름...

 

내 아이야, 안녕! 보고 싶고 사랑한다.

 

 


 

 

김경애 시인 / 북항

 

 

북항에 와서

한 남자가 밀항을 하자더군

 

저 유성호 타고

섬에 들어가 한 달만 살자더군

 

남자는 다만

평생 살자는 말은 절대로 안 하더군

 

파우스트처럼 영혼을 팔아서라도

시랑해 고백했다면

 

금방 후회할지라도

그 남자와 당장 떠났을지도 몰라

 

북항은 예측할 수 없는

불멸의 사랑을 꿈꾸기에 가장 좋은 항구

 

북항 일몰

 

 


 

 

김경애 시인 / 그대는 바람이었나 보다

 

 

새벽하늘 푸르던 날

처음 그대를 보았을 때

이미 알고 있었지

그저 스칠 인연 아니란 걸

 

내 시린 손잡아

따뜻한 입맞춤 할 때

이미 알고 있었지

햇살과 이슬이라 는걸

 

예쁜 꽃잎 떨어질까

슬픈 바람 불어올까

밀려오는 파도 같은

그리움들을

별 끝마다 매달았지

 

소리 없는 침묵

흐르는 정적 속에

그대의 사랑을 묻고

이만큼 와 버렸구려

 

바람 같은 그대를 지나치며

그대는 바람이었나 보다

나 역시 그대와 닮은 바람

오늘은 스치는 바람이 차다

 

 


 

 

김경애 시인 / 시 써라

 

 

밤새 뒤척이다 몽롱한 아침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기분전환 하려면 씻어라.

시 쓰라고?

씻으라고!

뭐! 시 쓰라고?

 

씻으라고야!

씻으라는 소리가

시 쓰라는 소리로 들려

둘이 박장대소하는데

정신이 번쩍 든다.

 

그렇지 정신을 맑게 씻는

시를 써야지,

 

 


 

 

김경애 시인 / 얼굴 없는 사람들

 

 

얼굴을 만진 기억이 희미하다.

얼굴이 박물관이나 오래된 전당포에 보관되어 있는

녹슨 귀걸이나 목걸이 같은 귀중품이 된다.

쉽게 꺼낼 수도 찾아올 수도 없는 것이 된다.

온종일 얼굴을 보며 놀았던 거울이 깨진다.

얼굴을 만지는 손이 얼음처럼 차다.

얼굴 없는 몸들이 몸들을 서로 더듬는다.

감각도, 감정도 없이 얼굴을 찾는다.

누군가 아흔 살에 사랑에 빠진 노인을 이야기한다.

아흔 살 먹은 노인을 남자라고 하기에는 그렇다.

사랑, 그것은 무슨 얼굴인가요.

얼굴을 잃은 후 사랑을 잃었다.

얼굴의 비밀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종일 얼굴을 만지며 놀던 기억을 찾아내야 한다.

성급한 사람들이 도끼로 열쇠를 쾅쾅 내리친다.

얼굴 없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얼굴 있는 사람들이 유령 같다.

유령 같은 사람들 사이로

얼굴 없는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진다.

 

 


 

김경애 시인

1971년 전남 무안 출생. 광주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졸업, 목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2011년 《문학과 의식》으로 등단. 시집 『가족사진』 『목포역 블루스』. 2018년 전남도립도서관 상주작가.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원. 목포詩문학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