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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선 시인 / 겨울여행 12
추운 날은 사람 그리워 마을로 간다 싸움 소리도 다정한 불 밝힌 집 그리워 산을 내려간다
추운 날은 체온이 그리워 따뜻한 물 한 잔 그리워 사람 기다리는 사람이 사는 곳 그리워 산을 내려간다
-시집 『별이라고 했니 운명이라고 했니』 에서
김유선 시인 / 가을새
품만 자식들이 떠나고 임도 제 길로 돌아간 뒤
있는 것 죄다 펼쳐도
보금자리 너무 넓다
이제는 미움도 슬픔도 마알갛게 투명해져
햇살 앞에 앉아 묻힌 시간 굴려 환丸 지어 놓고 긴 밤 다시 오면 꿈 대신 삼킨다
아침에 눈떠도 시간은 되돌이표.
김유선 시인 / 유년의 모래밭
유년의 모래밭 위에 낯선 새 한 마리 문득 날아와 옛날처럼 꿈을 쪼아먹고 있다
그 깊이따라 빛깔 달라지는 추억 한 움큼씩 파내면
묻혀진 시간들 우수 수 살아나와 살갗을 간지럽힌다 이제는 아픔조차 그리움이여
얼굴 붉히던 바람 찾아서 파고 또 파들어가면 어느 길목에선가 함초롬 들꽃자리 거기 아직껏 젖어있는 모래무덤
김유선 시인 / 꽃에게
너에게로 가면 어찌해서 세상 모든 것들 아름다워지는걸까
사람 사이 만남의 외로운 강줄기며 쓸쓸히 얽힌 인연의 바람줄 다문다문 받아마시고 연분홍으로 웃느니 질척한 추억의 바람소리 슬픔 한 자락도 너에게로 가면 향기로워라
사람 마을에서는 오늘도 억수비 쏟아져도 시간 밖으로 밀려난 꿈들 씻겨지지 않는다 그 마을에서는 분노의 얼음칼도 사말살 빛곱게 녹느니
그곳에 이르는 길 알 수 없는 우리네 사랑, 저문 들녘 스러지는 그림자처럼 가물가물 저물어갈 밖에.
김유선 시인 / 눈은 내리는 게 아니야
눈은 내리는 게 아니야 얼어붙은 영혼들 녹아 피어오르는 거야 하늘나라 그 聖域으로 가고 싶은 거야 숨기고 싶은 서러움들 하얗게 부서져 흩날리고 있는 거야 눈은 하늘에서 내리는 게 아니야 땜질해도 새어나오는 눈물 파묻어도 죽지 않는 분노인 거야 헤어지고 배반했다가도 만나면 눈물 글썽대며 서로 부둥켜 하나가 되는 사랑인 거야
-시집 <별이라고 했니 운명이라고 했니>에서
김유선 시인 / 망초꽃
땅 위에 뜨는 앉은뱅이 별들
그리움을 땅속에 묻었다
고개드는 기다림을 다시 땅속에 묻었다
허전함 키 크는 밤이면 하늘에 띄우는 수천의 엽신
김유선 시인 / 꽃피우기 1 -희망에게
아름다운 꽃은 언제 피느냐고 사람들이 묻는다 정말로 향그러우냐고 사람들이 묻는다 꽃이며, 벌써 몇 년째 잠만 자는구나
내게 남은 일은 기다림뿐이냐 기도뿐이냐
창을 열면 그 자리 여전히 거기 잠들어 있는 너를 아예 뽑아버리라고 이웃들은 말하지만 올해도 나는 너의 잠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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