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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룡 시인 / 산토끼를 위하여 2
큰눈을 마주보는 작은눈 하나 젖은 입술 가까이 마른 입술 하나 손위에 포개지는 다른 손 하나 내 가슴이 네 가슴에 닿으려고 아아 정신없이 바쁠때도 달려가는 내사랑 마음 그리고도 모자라서 나는 너의 슬픔 너의 침묵에도 점수를 준다
이세룡 시인 / 술에 대한 기억
해는 충혈되어 있다. 술 취한 아버지가 떠오른다. 아버지가 심은 느티나무 나뭇잎들이 그늘을 이루기도 전에 시든다. 오오, 가출한 누이들, 그리고 아우들아 그것이 세상이라는 것이다. 무사를 비는 저녁 해는 충전되어 있다.
이세룡 시인 / 썩기 위하여
傷하는 것들 썩는 것들은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쇠붙이에 녹이 스는 걸 보면 쇳덩이도 살아 있습니다
傷하는 것 썩는 것 은 운동의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운동은 일종의 자리 바꿈, 위치의 변경, 힘의 이동입니다 그러므로 희망은 살아 있습니다 너무 생생하여 쉬이 절망 쪽으로 이동하는 희망과
십 년도 못 가서 발병나는 民國의 이데올로기도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살아 있으므로 썩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김치 같은 거 치즈 같은 거 금세 늙어 버리는 여자의 아름다움을, 싱싱한 육체를, 흔들리는 마음을
사랑합니다 위치 자주 바꾼 북쪽 국경을 수없이 傷한 우리나라 국경을 사랑 합니다 국경을 바꾼 세계사를 세계를 좌지우지한 인간들을, 상하기 쉬운 인간들의 생명을 사랑합니다 살아 있는 별인 지구를 물론 사랑합니다 지구 위의 생명을 사랑하고 사랑하므로 나는 오래오래 살아서 오래오래 썩고 싶습니다 술이 될 때까지
-시집 <종이로 만든 세상에서> 1992
이세룡 시인 / 장마
큰 키의 스냅 사진사가 지구의 증명사진을 찍고 있다 자꾸 후레쉬를 터뜨리고 셔터를 누르는 , 연속 방송극 만큼 지루한 여름 밤 요란한 천둥 번개
이세룡 시인 / 여자의 일생
친정에 다녀오는 절름발이 천사들.
플라스틱 코에서 일 마력 짜리 모터 소리가 납니다
이세룡 시인 / 행복
구름이 검은 헝겊처럼 펄럭인다.
손바닥만한 지상의 땅 한 조각을 맡아서 밭 농사를 짓던 부부가 잠시 손을 놓고 하늘을 올려다 본다.
걱정하지 말라고 마음 놓고 일하라고
등이 굽은 늙은 재봉사가 은실로 하늘과 땅을 꿰매어 주신다.
봄비, 봄비, 봄비,
이세룡 시인 /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민중 병원의 의사가 말씀하시기를___ 귀하의 감정을 무기처럼 숨겨 두시기 바랍니다 귀하의 사상을, 잠수함에 태워서 가라앉히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말하기를___ 새들은 비늘을 달고 물 속으로 날아갑니다 물고기들은 날개를 달고 공중에서 헤엄치구요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모두 혀 위에 시멘트를 바르고 있습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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