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홍지호 시인 / 검은 개 외 6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12. 24.
홍지호 시인 / 검은 개

홍지호 시인 / 검은 개

 

 

개들에게 물어볼 수 없다 정말 노래 부르고 있는 것인지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앉아서 새가 내는 소리와 공사장에서 공사하는 소리를 듣고 있다

 

정말 미안한 일이 있었다

어릴 때 생활이 어려워져서

 

키우던 개를 시골 할머니 댁에 두고 온 적 있었다

할머니는 검은 개를 묶어 키웠다

 

검은 개가 죽고 나서 나는 대학에 갔다

겁이 많은 아이였다는 것은 최근에 생각났다

 

검은 개가 죽었다는 것은 전화로 들었다

검은 개를 두고 올 때 차를 타고 떠나며 일부러 돌아보지 않았다는 것은

최근에 생각났다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았던 것도

잊고 있었다는 것도

 

너를 두고 왔다 겁이 많은 너를 돌아보지 않았다.

개가 짖으니까 다른 개들이 같이 짖는다

 

잊지 않을 거란 말은 거짓말이 된다

가끔씩 생각날 거라는 말은 진심이 된다

나는 순수했던 적 없다는 말도

 

검은 새가 대신 울어주고 있다는 말은 거짓이 될 수 있다

개들에게는 물어볼 수 없다

 

아침이라 공사가 재개되었다

 

간밤에는 정말 미안한 일이 많았다.

 


 

홍지호 시인 / 고향

 

 

너는 거기 있다

 

집에 내려가면 어머니가 계시고

마당에는 고양이가 산다

고양이를 보면 왜 아는 사람들을 생각하는지

 

읽지도 않을 책을 가방에 가득 넣고,라고 쓰려다

잊지도 않을,이라고 쓰고 있었네

 

고양이였다면 상처 주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기침을 하자 자리로 돌아갑니다

뒷모습과 돌아가는 길을 오래 바라보았지

나는 한 번도 걷지 못할 길이었습니다

 

고양이를 만졌던 오른손을 바라보며

다음에는 빈손으로

오지 말아야지 다짐했습니다

 

오른손으로는 오른눈을 비벼도

왼눈이 충혈되고

충혈은 눈물과 무관한 응시였습니다

 

고양이가 걷는 길을 따라가자

얼굴에 거미줄이 붙는다

인간이 다니지 않는 길이었습니다

 

당신이 결혼하자 했을 때는 많이 놀랐는데

결혼한다 했을 때는 놀라지 않았습니다

 

집에 내려가면 어머니가 계시고

마당에는 고양이

 

무거운 가방을 메고 오래 걸었습니다

 

다음에는 빈손으로도

오지 말아야지 다짐했습니다

나는 여기에 있습니다

 

 


 

 

홍지호 시인 / 그 친구는 그 노래로 백만불을 벌었대

 

 

 그러니까 잘 모르는 것 같아서 그러는데

 그게 우리 돈으로 12억쯤 된다

 우리 돈이라는 말이 우스웠다.

 

 어딘가에서 나쁜 짓을 저지르고 있을

 우리 돈

 

 떨어져있는 낙엽을 보며

 떨어지고 있는 낙엽을 보며

 혹은 바람 덕분에 떨어지지도 상승하지도 못하는

 낙엽을 보며

 

 저게 다 돈이었으면

 젠장할 돈이었으면

 

 낙엽들에게 유감과

 사과의 마음을 전한다

 

 그것은 온전히 나의 잘못이다.

 

 그 친구는 그 노래로 백만 불을 벌었다고 한다. 그 노래는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하다. 그 노래가 백만 불쯤 된다고 생각하니 선뜻 듣기가 어렵다. 분명.

 우리의 이야기를 담았어.

 친구는 이야기했지만. 그 이야기로 백만 불을 벌었다니. 20대에 레인지 로버를 끌게 되었다니 그 노래가 우리의 이야기 같지 않고 친구가 친구 같지 않고 백만불이 백만 불 같지가 않고.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지지만 친구에게전화를 걸어.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런데 돈 좀 빌려줄 수 있겠니

 물어보지 못하고

 

 들어보지 못한 노래를

 잘 들었다고

 

 어렴풋하다고 모든 것이

 어렴풋한 것처럼 들리는 좋은 노래였다고

 

 좋은 음악 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홍지호 시인 / 씽크홀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말에

어차피 일어날 일들에 대해 생각하는 중이다

 

나는 가끔 생각으로 죄를 짓기 때문에

생각이 생각에서 멈춰야 했다

 

가로수들의 간격이 일정했다

비슷한 크기로 자라고 있었으나

 

동일한 지점을 같은 시간에 당도한 차량들과

파편이 굴러다녔다

운전자에게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다는 말을 하지는 못했다

 

함께 있을 때 너는 이제 와서 뭘 어떡하니 자주 말했지

도로에 적절하게 늘어선 가로수의 간격을 헤집고 다니면서 우리는

굴러다니는 파편들을 발로 차는 놀이를 했다

 

간격의 기여를 우리는 몰랐지

 

우리는 간격을 무시하는 사람들이었으므로

충돌을 목격하지 못했습니다

뿌리는 자라지 못했습니다

 

굴러다니는 파편들을 걷어차면서

가로수의 간격 속에서 충돌을 가늠하면서

 

나는 생각으로 죄를 짓는 사람이다

너는 내가 지은 아직까지 가장 큰 죄악이다

 

파편들은 일정하지 않은 간격으로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지

 

그러므로 파편이겠지

 

 


 

 

홍지호 시인 / 포기하고 싶다면

 

 

옥상에 올라온 참새를 보고 놀라다가 아 너는 새지 너는 날 수가 있지, 라고 중얼거렸다

 

살아 있다는 것을 잊고

살아 있다

 

너무 위험하다고 느껴질 때는

나한테 전화해도 된다고 선생님이 말해줄 때

고마웠다

 

삶은 어디에나 있다

 

삶은 어디에나

 

삶은 어디에

 

삶은 어디

 

삶은

 

동생이 비둘기에 대한 단상을 이야기해줄 때

느꼈던 감격이 때때로 그에게 힘이 되기를 기도했다

 

하나도 안 슬퍼

생각했던 장면에서

울게 되었다

 

그런 장면은 이제 슬프다 그러나 어떤 장면은 여전히 슬퍼하지 못한다

 

누군가 날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생각은

미안한 마음만

 

이런 삶을 나누고 싶지는 않다

어디에서든 삶은

 

포기하고 싶다면

 

나는 너를 잊었다 나는 너를 잊었다

중얼거리다가

잊었다고도 말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시집 『사람이 기도를 울게 하는 순서』(문학동네, 2020)

 

 


 

 

홍지호 시인 / 코트

 

 

 갖고 싶은 코트가 있었다. 갖고 싶어서 자주 드나들었던 기억이 있다. 누구도 살 것 같지 않았다. 오래된 디자인을 오래된 색상을 갖고 있었다. 어떤 색상을 가졌었던 것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해지고 바래 있었지만 진부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낡아 있었을 뿐이다. 코트를 보러 자주 갔다.

 

 걸려 있었다. 누군가라도 되는 것처럼.

 

 눈이 오는 날이었다. 어떤 사람이 코트의 소매를 오래도록 잡고 있었다 손목처럼. 손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사람이 울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손목을 붙잡는 사람의 그을린 눈물과 코트의 색상이 닮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코트에 얽힌 그런 기억이 있다.

 

 코트를 사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코트는 걸려 있었다. 누군가라도 되는 것처럼.

 

 이것이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코트에 대한 기억의 전부다. 담담하지만 선명하게 걸려 있는 코트의 옷깃을 여며주면서도. 그러나 코트에 얽힌 이야기들이 진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코트를 자주 보러 갔다. 눈이라도 내리면.

 소매를 잡고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내 이야기라도 되는 것처럼.

 

 


 

 

홍지호 시인 / 로비

 

 

 이곳은 로비다. 그들은 로비에 마주앉아 있다. 로비에는 약간의 음악이 흐르고, 그들은 약간의 음악이라는 표현이 완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완전히 틀리지도 않은 로비는 분주하지만 고요하다. 음악은 그들이 평소에 좋아하던 아티스트의 리믹스 앨범 수록곡이고.

 

 나무가 흔들려서 슬픈 것 같다고 한 사람이 중얼거린다. 그는 우리가 같은 계절을 지나는 것이라면, 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생각했지만 로비에 흐르는 음악의 제목은 다른 것이다. 모든 음악은 리믹스지, 라고 누군가 생각하자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를 피해 많은 사람들이 로비로 들어왔고 비가 내리면 안과 밖의 경계가 선명해졌다.

 

 그들은 이제 창밖의 풍경을 함께 바라보고 있다. 마주앉은 사람도, 나무가 흔들려서 정말로 슬퍼 보이네, 중얼거렸고, 이제는 계절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도로에 심겨 있는 여러 그루의 나무 중 유독 한 그루의 나무만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로비는 오래 머물기 위한 곳이 아니지. 누군가 말했고 그들은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떠나고 로비에서 처음 들어보는 음악을 누군가 듣는다. 음악의 리듬은 로비의 고요와 더 어울리지만 창밖의 풍경과 음악의 개연성이 무시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로비는 잠깐 머무는 곳. 그러므로 로비는 완전하지 않고, 그러므로 누군가에게는 로비를 떠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비 내리는 창밖에 한 그루의 나무만이 흔들리고 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나무는 스스로 흔들지 못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시집 『사람이 기도를 울게 하는 순서』, 문학동네, 2020

 

 


 

홍지호 시인

1990년 강원도 화천 출생, 고려대 문예창작과, 2015년 문학동네 신인상 수상. 시집 <사람이 기도를 울게 하는 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