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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덕하 시인 / 연기 이모
연기 이모가 재들 턴다 한참 쏟아 붓더니 씨근씨근 말 부스러기 버린다
팽팽한 우산살이 햇살 받치고 그 밑에 그늘 한 채 지었는데 숨소리 가늘어 바늘귀에 꿰일 듯하다
비운 종이컵이 어둑한 갈피에 귀 기울인다
쌓인 것이 많아 제 무게에 무너진 서녘 귀둥이, 거기 마음 덧대고 감쳤던 자리가 터져, 번하다
하염없이 말라가는 것들 아침마다 창틀에 수북한데 다 타버린 가슴에 무슨 속울음 남았을까마는
한낮에 더욱 어둡고 흐린 재, 몸 가누지 못하는 벌레 되어 소리와 빛깔 너머로 눅은 눈길 끌고 간다
원추리 꽃자리, 산초나무 베어 버린 자리 더듬어 보던 눈매가 몇 올 풀려 있다
옭매믑 끊어 냈는지 길게 한숨 내뱉는 이모 눈썹에 실밥 하나 늘었다
권덕하 시인 / 그리운 뒤란
내 몸에는 모른 체해 주는 뒤란 있어 눈물이 마음 놓을 수 있었다 낙수에 패인 자리 바라보는 일은 밀려난 풀만큼이나 자신을 달래는 일이었고
댓잎 만지작거리며 바람 쐬기도 하고 손톱만큼 자란 수정도 보고 숨겨둔 일 고백하듯 까만 꽃씨 받다가
텃밭으로 나가 지붕 내려다보며 고욤이 그렇듯 떫은 것도 풀덤불에 두어 그리운 것 되면 상강 지나도록 표해 놓은 삭정이만 봐도 좋았는데
뒤란 사라진 몸 정처 잃고 잦은 슬픔에 먹먹하다 금간 오지그릇처럼 철사로 동이고 싶은 마음 조금씩 뒤틀리고 붉은 혀 감출 데 없이 시드는 것도 꽃대의 일로만 남아 신경 쓰이다
권덕하 시인 / 빈 의자
날 향해 저물고 있는 것이다
비어 있는 곳이다 헛간 구석에 눈 쌓이는 소리
어렴풋이 새소리에 깊어진 골짜기, 등받이에도
그대 음성 들리지 않아
겨울 귀룽나무 심정으로 비어 있는 것이다
여원 길에 울음처럼 내려앉은 불빛 보고
허우적대며 바람에 쏠려가다
숨 돌리고 있을 사람,
날 향해 말 없는 곳이다
권덕하 시인 / 빈 의자
날 향해 저들고 있는 것이다
비어 있는 곳이다 헛간 구석에 눈 쌓이는 소리
어렴풋이 새소리에 깊어진 골짜기, 등받이에도
그대 음성 들리지 않아
겨울 귀룽나무 심정으로 비어 있는 것이다
여원 길에 울음처럼 내려앉은 불빛 보고
허우적대며 바람에 쏠려가다
슴 돌리고 있을 사람,
날 향해 말 없는 곳이다
권덕하 시인 / 나무에 묻다
어린 서어나무 아래 흙 파서 수의 입힌다 새 한 마리 바닥을 확인하고 간다
개흙 냄새 짙은 북편에 백명이 서린 그늘만 내놓고 바람이 경전을 덮는다 가매진 나무는 종일 입이 무겁다
신당 차린 숲에서 시간 길게 휘어지고 새들 끌어당기는 시위의 힘 보인다
가라앉으려는 구름의 녃 건너가고, 날아오르려는 나뭇가지의 맘 건너오는 사이, 사라진 것도 환해진 것도 다 나무의 일이라
남은 햇살마저 묻고 나니 눈길이 향불 따라간다 창포 욱은 연못가 지나 힘은 들마두에 새로 올린 솟대까지
곧 밤그늘 질 것이다 아이 업은 두꺼비 한 마리 어디론가 천천히 당집 끌고 간다
권덕하 시인 / 인적
한 사람이 지나가면 봉걸레로 발자국 지운다 또 한 사람 지나가면 무람없이 발자국 지운다
장례식장 입구에서 걸레부터 내민다 문상하기 전 발바닥 먼저 닦으라 한다
지나온 빗길은 지느러미 잘리고 물에 던져진 상어 몸뚱이, 막 건너 뛴 웅덩이 아가미처럼 숨 쉬고 있는데
비늘같이 흩어진 발자국들 다 고인의 몸속으로 숨었나 돌아보니 말끔히 닦인 길, 흔적 없다
권덕하 시인 / 숲정이 저녁
수염 긴 할아버지 좌상까지 밀려 와 진지 드셔요
제 꽃을 권하는 국수나무가 사는 비탈도
부뚜막 그늘에서 노랗게 익을 무렵
묵은 정 밥물처럼 끓어 넘치고
꽃향기 낭창거리며 뜸 들이는데
바싹 달은 숲으로 걸어 들어간 여자
좀처럼 나올 생각 없고
솔방울 다닥다닥 붙은 소나무만
지긋이 굽어보는 힘으로
몸에 남은 햇발 꽉 들어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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