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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변의수 시인 / 컵 속의 낙타 외 7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12. 27.
변의수 시인 / 컵 속의 낙타

변의수 시인 / 컵 속의 낙타

 

 

컵 속의 물은 조용하다 고래도 없다

컵은 예전엔 모래였다 무수한 햇빛의 알갱이

태양이 몸을 띄워 올리던 연못,

컵 속에서 물은 무릎에 고여 앉았다

사막의 낙타처럼,

투명한 몸을 모락모락 들어올리는 햇살,

이제 낙타는 발을 감추어야 하는 것이다

햇빛속으로

 

 


 

 

변의수 시인 / 강가에서

 

 

 시인의 침대는 구름이다. 꿈은 사각형의 구조물이 아니다. 꿈속에서 구름은 의자이기도 하고 비를 가리는 지붕이기도 하다.  

 

 구름에 앉았다가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건 구름이 낮에 만든 의자라고 생각하는 때문이다. 구름을 단단히 못질을 해둔 의자라고 믿기 때문이다.

 

 강이나 호수에서 까닭 없이 슬픔이 차오르는 건 하나가 될 수 없는 물방울의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든 의자의 추억을 다시 의자로 만들 수 없는 아픔 때문이다.

 

 물방울은 우리가 만든 의자나 책상이 아니다.

 

 영혼이 창밖의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건 지난 기억의 그리움 때문이다. 회상은 영혼이 만든 의자를 잊는 일이다. 걷던 길을 잠시 떠나 영원한 꿈길을 걷는 일이다.

 

 


 

 

변의수 시인 / 므네모시네

 

 

 상처 난 달은 분화구의 기억이 쌓여 있다. 몸은 기억의 덩어리이다. 그 어떤 기억이든 기억의 물방울은 몸의 빈 곳을 채운다.

 

 죽은 자는 산 자의 몸에 있다. 몸은 영들의 공간이다.

 

 지난 삶을 그리워하는 이는 새로운 삶을 그리워하지만, 기억을 버린 이는 다가올 삶을 기다리지 않는다. 탐욕은 기억을 망각한다. 그 어떤 탐욕만이 기억을 마비시킬 수 있다.

 

 고통은 치유되어야 할 뿐, 지난 기억들이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망각은 자신의 반을 지우는 일이다.

 

 조금 일찍 일어난 일일 뿐, 산 자와 죽은 자는 함께 한다.

 

 므네모시네! 기억의 여신을 기억하라. 기억을 지닌 자는 튼튼하다. 오직 지난 기억만이 사물들을 비춰준다.

 

 


 

 

변의수 시인 / 불의 주문

 

토마토는

사고의 대상이 아니다

토마토의 달고 신 맛

토마토의 태양

토마토의 시공간이 되는 일이다

- 토마토의 기교와 형식을 실험한 예술가에게

 

차단된

빛의 내부

 

찢겨나간

시공간의

몰락

 

은닉된

불꽃 속

예술가의 콤플렉스

 

 

공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을 때

불길한 허공의 무한함에

생각지 않은 광활한 의문에

도달하지 못할 열망과

밀려드는 초조함에

벗어나지 못할

고뇌와

공포의,

 

발 아래 무한한 지평선에 경악하고

어찌할 바 모를,

무엇보다

아무런 창조적인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예정된 시공간을 향한 결말

 

 

오렌지빛 두개골이 하품을 한다

마모된 사고들

 

오후의 구름이 균열한다

태양을 작도하는

빛의 항로

 

순간을 정박하는

불의 침묵,

햇살이 쏟아져 내린다

 

 

파동치는 빛

시공간은 외침이다

액션을 욕망하는

뜨거움

 

시공간은 사고되지 않는다

사고는 시공간을 수축하고 파열한다

시공간을 무너뜨린다

 

 

느린 식사를 마친

길들이 모여드는 노을

망각의 평원에 기억이 숲을 이룬다

 

하오의 그늘이 휘어진다

돌아갈 궁극

 

곡률을 정의하는

빛이 잠시 침묵한다

 

미식가의 혀가 감식한

해감의 모래알

 

태양이 기우는 들판은 조용하다

 

시공간에 대한 생각은

그 이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상징학연구소 2022년 겨울호 발표

 

 


 

 

변의수 시인 / 연민

 

 

처음 보는 꽃 앞에서

손을 덥석 내밀거나 코를 킁킁거리는 사람에게

 

경계를 좀 해야 합니다, 라는 말을

재차 들려주었을 때

 

먼저 활짝 피어버린 사람이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고 있었다

 

그렇게 흠칫 오므라들면 안 된다고

꽃들의 입술이 황급히 벌어지고 있었지만

 

억지로 떼놓은 것처럼

꽃과 사람의 얼굴이 다 붉어진 뒤였다

 

만나면 덥석 잡아주는 손이 귀해서

그 집의 덩굴손들은 모두 담장 밖으로 뻗어 있었다

 

 


 

 

변의수 시인 / 양파 속의 우주 38

 

 

나무의 애벌레가 햇빛 속으로 날아오르다 추락한다

누군가 이 나무를 베어내어야겠다고 말했다

나무는 날개를 잃어 스스로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다

 

나무는 나비였다

전생에 나비인 나무는 날개를 잃고 나무가 되었다

어느 날 사람들은 나무가 눈물을 흘린다고 몰려와 신기해했다

 

나무는 발꿈치를 들고 날갯짓을 해보지만

자신이 나비가 아님을 깨닫는다

 

바위를 옮기다가 미끄러운 바위를 놓쳤다

발가락을 다쳤다

바위가 손가락을 빠져나와 발가락을 눌렀다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사물에도 영혼을 불어 넣을 수 있을까

사물을 사랑한다는 건 자신이 먼저

사랑하는 영혼을 갖는 일이다

자신에게 먼저, 사물을 사랑하는 영혼을 불어넣는 일이다

 

강을 건너는 돌은 발걸음을 옮기지 않는다

강물이 몸을 옮겨 바위를 옮긴다

바위의 여행은 느리다

바위의 여행은 강물이 남긴 짧은 편지보다도 짧다

 

나무가 나비라고 생각한 전생의 나비는

나무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았다

날지 않아도 나무는 나비의 영혼을 지니고 있다

진실로 사물을 사랑하면 사물도 영혼이 소생하지 않을까

 

 


 

 

변의수 시인 / 유혹

 

 

 햇빛 아래 반짝이는 가시! 황금의 가시는 몽환의 황무지를 수염을 깎지도 않고 몇 년을 걷고 또 걸어야 바위틈에서 잠깐 그림자나마 볼 수 있다. 하지만 황금의 가시는 마른 손가락에 핏방울을 남기고 이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이 황금가시 나무 이야기의 기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어느 노인은 누구도 그 나무를 제대로 손에 쥔 이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물론 그 노인이 황금가시 나무를 꺾었는지 역시 알려져 있지 않다.

 

 황금의 가시를 잘못 다루거나 맹독을 이겨낼 수행이 없으면 눈을 잃고 광인이 되고 만다. 하지만 황금가시가 눈을 멀게만 하는 것은 아니다. 눈을 멀게 하여 눈을 뜨게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시 보게 한다.

 

 황금가시 나무의 이야기는 신비주의자의 허황된 전설 같은 것이 아니다. 과학은 황금의 가시가 비춰낸 그림자이다. 소리와 공기는 움직이는 하나의 사물의 다른 이름이다. 분명, 어딘가 황금가시 나무가 존재하고 그것은 어둠과 빛을 하나로 보게 한다.

 

 황금가시에 찔린 자는 누구나 환각에 빠지고 만다. 나무와 바위의 그림자를 구별하지 못하고 새의 날개와 인간의 영혼이 하나가 된다. 그들에게 현실과 꿈의 구별은 무용하다!

 

-시집 『은유의 물리학』에서

 

 


 

 

변의수 시인 / 냉각탑

 

 

 파스텔 톤의 노을이 물드는 저녁이다. 이번 작업물은 냉각탑이지만 관측소는 아니다. 예전의 냉각탑은 관측소이기도 했다. 관측소는 간결한 엄격함이 요구된다. 냉각탑의 설계는 정밀한 안전성이 요구되지만 이번 기획은 무엇보다 통일성과 자동성이 중시된다.

 

 영혼은 물리적 성교로써 자신을 복제하지 않는다. 영혼은 생리학적 교배로써 증식하지 않는다. 영혼은 사물들의 사고를 통해 복제되고 증식한다. 냉각탑은 사물들에게 제시됨으로써 사물들의 영혼에 자신을 복제하고 증식시킨다.

 

 시인의 텍스트는 냉각탑이 필요한 공장이나 원자력 발전소일 수도 있다. 그곳은 냉각탑이 필요하다. 언어의 냉각탑과 철구조물의 냉각탑은 기호 매체의 차이일 뿐, 영혼을 창조하는 일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냉각탑은 사물들에 대한 사고를 돕는 관측소였다. 하지만 두 번째 냉각탑은 첫 번째 관측소를 창고에 밀어 넣고 사물이 탄생하는 작업과정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냉각탑이 어디에 설치되고 무엇에 기여하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그에 관한 설명은 운용자들의 상징 작업에 달려 있다. 그것은 영혼의 움직임이 드러내는 일이다.

 

 덧붙일 건, 상세한 설명 자료는 냉각탑 안에 녹여 넣었다는 사실이다. 재창조나 모방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다. 영혼은 언제나 그 자체로 유일무이한 독창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시집 『은유의 물리학』에서

 

 


 

변의수 시인

1955년 부산에서 출생. 1996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먼 나라 추억의 도시』 『달이 뜨면 나무는 오르가슴이다』 제3시집(장시)『비의식의 상징: 자연·정령·기호』 제3시집(단시)『비의식의 상징』 등과 시론으로『비의식의 상징: 상징과 기호학』등과 비평집엔 『비의식의 상징』이 있음. 웹진 『시인광장』편집위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