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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주 시인 / 동물 견습생 쓰레기들이 나오는 시간 우리는 교습소로 들어갑니다 분홍 토슈즈는 붉어집니다 서 있어서일까요 근육을 키우는 데 이만한 것이 없단다 우리는 따뜻하고 작은 방에 누워 서로의 종아리를 밟아줍니다 반으로 접혀 백조의 날개가 됩니다 푸르튀튀한 왕자 다리가 될 때까지 손을 맞잡고 핑그르르 돌았어요 말랑한 점토가 퍼졌다 작아집니다 개떼의 발바닥처럼 타버린 고무 냄새가 났어요 누구나 한가지 정도는 완벽하고 싶은 것이 있잖아요 우리는 변명만 가득한 레시피를 보며 까르르 웃어요 토끼는 내일의 당근을 키우고 더 잘 달아나는 채소를 데려오니까요 볼과 입술에 말린 무화과와 자두 과즙을 바른 우리들은 조명 꺼진 무대 밖으로 발사되었어요
정미주 시인 / 영성체 집 나간 흰 개가 동네를 떠돈다 돌아가지 않을 거야 무릎이 아프고 욕을 하는 늙고 아픈 사람들 밀고 당기는 줄이 짧아서 이번 산책도 실패다 몸에서 진물이 나면 웅덩이로 돌아가야 되나 동반 입수 후 죽을 뻔한 뒤 당신은 내가 청새치가 되기를 바랐다 낚시꾼을 낚을 수 있는 꿈의 수영장에는 알이 가득하다 서로를 알아보지 못해도 기억하고 태어난다 혐오하던 모습으로 탱화를 그리는 팔로 백반증을 앓는 불량소년이 되어 대나무 숲에서 이름을 지었다 산바람은 선량한 역할의 성우는 아니었지만 아름다운 숨결이었다 온실 속의 아파치 소녀 인형 임산부들이 사는 마을에서 이유 없이 고해성사하는 신부 제사가 끝난 뒤 몸에서 물이 샜다 흰 개는 나의 몸을 산책한다
정미주 시인 / 어느 관리인의 죽음 매실이 익어가는 동안 올리브를 먹는다 화禍는 물컹거리는 양배추를 닮았다 초록 능금은 태어나지 않으려고 발광하겠지 검붉은 자두는 입에 넣지 않아도 달달하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반사하는 초록이 무성하다 잠들지 않는 학생이 되고 싶었는데 모자 장수가 약을 파는 사이 눈꺼풀이 두꺼운 능지기가 되고 말았다 신분이 다른 사람들은 서로의 어깨를 더 낮추며 춤을 춘다 비정기 간행 모임이 열리고 잠행하는 유령들은 밤을 감춘다 늘 같은 소리로 안부를 묻는 사람이 있다 주소를 숨기는 사람에게 너의 집은 항상 무덤이라고 말한다 새들은 날개를 펼친 채 추락한다 새들이 묻히는 곳을 보기 위해 거미집은 무성해진다 베일에 가려진 망상을 걷어내는 과학자의 머릿속에서도 흥미를 잃은 성운은 면사포로 남는다 관람 시간을 지키는 유모차들과 능지기는 경쟁하듯 사라지려 한다 초록이 창궐하는 도심을 갖고 싶어 영원히 썩지 않는 듀엣을 준비했습니다 당신이 원하던 터를 발랄한 아이들이 쓰는 무용실로 만들고 녹지 않는 아스피린은 재로 절여두었습니다 초대하지 않은 유령들의 열망으로 냄새 없는 과일이 익고 있다 잔디가 무덤의 피륙을 자아낸다 능을 이고 아주 천천히 그곳을 빠져나가는 사람이 있다 능의 둘레를 재는 새들은 돌을 물어다 놓는다
정미주 시인 / 오른쪽왼쪽 시계 목격자 ㅡ 어두운 숲
오래된 시장 호텔 하역장의 풍문처럼 부두에서 태어나는 이야기가 있다 잘라낸 생선 대가리처럼 쓰레기 봉지 속으로 바로 버려지고 쓰임 없는 비린 냄새로 우리 곁을 떠돈다
우리는 위험한 종鐘이다 바람이 불면 눈치 없이 흔들리는 불편한 음치들이다 어두운 밤 사냥꾼이 숨어 있는 것도 잊고 큰 소리로 복식 호흡을 하면서 낯선 골목을 지나간다 오래된 집들은 이름으로 풍향을 가리키고 담벼락에 붙은 돌들은 무언극의 가면처럼 눈코입이 없다 하지만 움푹 파인 볼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돌멩이를 던지고 누가 먼저 놀란 척하는지 시간을 잰다 놓친 표정이 무엇이었을까 좋은 종種이라 화를 내지 못했다 고맙다 미안하다 안 보는 것 증인이 없는 그릇된 사기는 깨지지 않아 변변치 않은 명언 집으로 사육당하는 양치기 소년과 구타유발자들이 우글거리는 동물 우리로 데려가 줄게 새벽의 무인 화장실에는 사람들이 변기에 앉아 흐릿해진 빛을 줄줄 흘리며 음료를 주문하고 있다 문손잡이에 머리를 기대고 졸면서 음료를 마신다 꿈꿔온 일탈이 더 큰 잠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우리를 쳐다보려다 내려다보는 시계탑을 지나간다 동등하게 파악할 수 있는 종이의 발아와 발화를 되새기며 -계간 『상상인』 2024년 여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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