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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시인 / 개미를 보며
새 천년이 된들 무엇이 나아지랴 더 강력하고 더 무자비해진 차바퀴에 더 많이 더 빨리 깔려 죽겠지 사람들은 말하겠지 너희들 진한 땀과 피가 아니었던들 어찌 이 세상이 이만큼 만들어졌겠느냐고 여름 내내 그늘에서 노래로 즐긴 베짱이들이 너희들의 문전을 찾아 구걸하는 그림이 찍힌 낡은 교과서를 뒤적이면서
신경림 시인 / 겨울날
우리들 깨끗해지라고 함박눈 하얗게 내려 쌓이고
우리들 튼튼해지라고 겨울 바람 밤새껏 창문을 흔들더니
새벽 하늘에 초록별 다닥다닥 붙었다
우리들 가슴에 아름다운 꿈 지니라고
-시집, 『뿔』, 2002, 창비
신경림 시인 / 그 유월의 함성, 그 유월의 어깨동무로
그 함성이 짓누르던 어둠을 몰아냈다 그 어깨동무가 번쩍이던 총칼을 물리쳤다 그 노래가, 그 부르짖음이 눈부신 하늘을 펼쳐주고 화안한 새벽을 불러왔다 죽음을 몰아내고 울음을 쫓아내면서 그리하여 우리는 비로소 알았으니 이 땅의 햇빛이 이렇게 밝다는 것을 바람에서도 아름다운 종소리가 난다는 것을 나무도 풀도 덩실덩실 춤을 춘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으니 우리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우리의 슬기가 얼마나 위대한가를 이 땅이 아름다운 꽃으로 덮이리라 누가 믿었던가 이 땅이 희망의 노래로 가득하리라 누가 믿었던가 자유와 민주의 꽃으로 덮이리라 아무도 믿지 못하던 그 어둠 속에서 평화와 풍요의 노래로 가득하리라 아무도 믿지 못하던 그 두려움 속에서 그 유월의 함성이 그 유월의 어깨동무가 이 나라를 세계 속에 우뚝 선 나라로 만들었으나 꿈과 활기로 가득한 백성으로 만들었으나 우리보다 평화롭고 자유로운 나라가 되기 위하여 보다 풍요롭고 행복한 백성이 되기 위하여 그 유월의 함성,다시 한번 그 유월의 어깨동무로 이 나라의 도시와 마을이 온통 노래로 가득하게 하리 강과 산과 바다가 환희의 춤으로 넘치게 하리
신경림 시인 / 햇살
너는 햇살 햇살이었다 산다는 일 고달프고 답답해도 네가 있는 곳 찬란하게 빛나고 네가 가는 길 환하게 밝았다
너는 불꽃 불꽃이었다 갈수록 어두운 세월 스러지려는 불길에 새 불 부르고 언덕에 온고을에 불을 질렀다
너는 바람 바람이었다 거센 꽃바람이었다 꽃바람 타고 오는 아우성이었다 아우성 속에 햇살 불꽃이었다
너는 바람 불꽃 햇살 우리들 어둔 삶에 빛 던지고 스러지려는 불길에 새 불 부르는 불꽃이다 바람이다 아우성이다
신경림 시인 / 독자들이여 베스트셀러가 아닌 진짜 시를 만나라
시집이 곧잘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사실은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 내막을 알고 나면 이내 실망하게 된다. 몇 예외를 제외하면 그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시집이란 것들이 대개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좋은 시와는 거리가 먼 것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변소에 앉아서 쓴 시라고 천박하게 비유되기도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시라기보다는 낙서라는 표현이 더 맞을 시들이다.
결국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것은 시의 독자가 확대되어서가 아니라 그 수준이 낮아져서라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나는 이 현상을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끝내 낙서 같은 시의 울타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독자도 있겠지만 마침내 이에 만족하지 않고 좀더 높은 수준의 시를 찾는 독자로 발전 하는 경우도 없지 않을 터이니까 말이다.
여기서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독자도 없지 않을 것이다. 독자가 좋아하면 그것이 좋은 시이지 좋은 시가 어떻게 따로 있을 수 있는가 라고. 이 말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역시 좋은 시는 있다. 그것을 한두 마디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시가 함부로 씹어 뱉고 아무렇게나 주절대는 낙서 따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무언가 새로운 말, 참된 표현을 탐색하는 치열한 정신적 과정의 결과물이라는 점도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독자들도 또한 똑같은 치열한 정신을 갖고 대해야만 시를 올바르게 읽게 된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낙서하듯 또 낙서를 즐기듯 시를 읽을 때 시의 참 재미는 영 놓치고 만다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시인이란 일반 사람과 똑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시인 중에는 미용사도 있고 보일러공도 있고 무역상도 있으며, 교사도 있고 정치인도 있고 주부도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일반 사람과 다른 그 무엇이 하나 있다.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만지지 못하는 것을 만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시를 읽는 재미는 바로 이들이 이런 능력을 가지고 보여주는 세상과 접속하는 일이다. 함부로 써댄 낙서 같은 시가 이런 세상을 보여 주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시가 소음만큼이나 흔하고 시집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도 시의 시대는 지났다는 자조 섞인 탄식이 나오는 현실의 한 모서리에는 낙서 같은 시집이 독자를 사로잡아 베스트셀러가 되는 왜곡된 현상이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시의 몰락의 결과이기도 하고 거꾸로 시의 몰락을 재촉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인이 그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보여 주는 세상에 들어가 삶의 깊은 곳을 맛보겠다는 생각으로 시를 대하는 독자라면 결코 이런 시집을 선택하지는 않으리라. 어느 시인이 방송에 나와 얘기하는 것을 들은 일도 있지만 시집 한 권이 불과 차 한 잔 값이다.
낙서가 아닌 진짜 시를 만난다면 이 차 한 잔 값으로 그 열 배 스무 배의 즐거움을 시집에서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많은 독자들이 알았으면 싶다.
신경림 시인 / 홍수
혁명은 있어야 겠다. 아무래도 혁명은 있어야겠다 썩고 병든 것들을 뿌리재 뽑고 너절한 쓰레기며 누더기 따위 한파람에 몰아다가 서해바다에 갖다 처박는 보아라, 저 엄청난 힘을. 온갖 자질구레한 싸움질과 야비한 음모로 얼룩져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진 벌판을 검붉은 빛깔 하나로 뒤덮는 들어보아라. 저 크고 높은 통곡을, 혁명은 있어야겠다. 아무래도 혁명은 있어야겠다. 더러 곳곳하게 잘 자란 나무가 잘못 꺾이고 생글거리며 웃은 일이 있더라도, 때로 연약한 벌레들이 휩쓸려 떠내려가며 애타게 울부짖는 안타까움이 있더라도, 그것들을 지켜보는 허망한 눈길이 있더라도.
신경림 시인 / 가난한 아내와 아내보다 더 가난한 나는
떠나온 지 마흔해가 넘었어도 나는 지금도 산비탈 무허가촌에 산다 수돗물을 받으러 새벽 비탈길을 종종걸음 치는 가난한 아내와 함께 부엌이 따로 없는 사글셋방에 산다. 문을 열면 봉당이 바로 골목이고 간밤에 취객들이 토해놓은 오물로 신발이 더럽다 등교하는 학생들 틈에 섞여 화장실 앞에 서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잠에서 깬다. 지금도 꿈속에서는 벼랑에 달린 달개방에 산다 연탄불에 구운 노가리를 안주로 소주를 마시는 골목 끝 잔술집 여주인은 한쪽 눈이 멀고 삼분의 일은 검열로 짖겨나간 외국 잡지에서 체 게바라와 마오를 발견하고 들떠서 떠들다보면 그것도 꿈이다. 지금도 밤늦게 술주정 소리가 끊이지 않는 어수선한 달동네에 산다 전기도 없이 흐린 촛불 밑에서 동네 봉제공장에서 얻어온 옷가게에 단추를 다는 가난한 아내의 기침 소리 속에 산다 도시락을 싸며 가난한 자기보다 더 가난한 내가 불쌍해 눈에 그렁그렁 고인 아내의 눈물과 더불어 산다
세상은 바뀌고 바뀌고 또 바뀌었는데도 어쩌면 꿈만 아니고 생시에도 번지가 없어 마을 사람들이 멋대로 붙인 서대문구 홍은동 산 일번지 떠나온 지 마흔해가 넘었어도 가난한 아내와 아내보다 더 가난한 나는 지금도 이 번지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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