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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동원 시인 / 월광 소나타 외 6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12. 29.
김동원 시인 / 월광 소나타

김동원 시인 / 월광 소나타

 

 

밤바다를 밟고 보름달이 떠 있었네

그 아래 꿇어앉아 그녀에게 청혼을 했네

그녀는 수평선에 손을 얹어

월광 소나타를 쳤네

바람과 바람은 물안개 속에서

미친 듯 서로를 탐했네

아, 그때 왜 꿈속에서 그 소리가 들렸을까

안돼, 안돼, 안돼, 돌아와.....,

물결은 멀어지는 달빛에게 외쳤네

눈 깜짝할 새, 그녀는 물속에 잠겼네

 

 


 

 

김동원 시인 / 구계항

 

 

빈 가슴 구멍 난 가슴 별로 꿰매려 거던

누님요, 밤바다 보름 달빛이 기막힌

구계항 한 번 놀러 오이소

한마음 탁 접고 눈 한 번 질끈 감으면

이 세상 잘 난 놈 어디 이꼬

못난 놈 어디 있을라꼬

누님요, 세상만사 다 이자 뿌고

아침 햇덩이 한 번 품고 싶거 던

저 고래 떼 파도 위 타고 넘는

동해로 마카 오이소

미주구리 초고추장 듬뿍 찍어

소주 한 잔 허허 호호

소주 두 잔 우하하 호호홋

수평선 끌어안고 쭉쭉 들이키다 보면,

안 풀리는 거 어디 인능교

누님요, 천년만년 사능교

이 한밤 불콰하니 백사장 취해 누워

밀물도 좋고 썰물도 좋은 항구가 되입시더

눈 감으면 저승 눈 뜨면 이승 아잉교

묻지 마소, 묻지 마소

하늘 길 어디로 가는지 묻지 마이소

빈 가슴 구멍 난 가슴 밤바다 별로 꿰매려 거던,

시끌벅적 갈매기 울음 요란한

구계항 밤 등대 보러 마카마카 오이소, 누님요!

 

 


 

 

김동원 시인 / 태양 셰프

 

 

나는 우주에서 제일 어린 태양 셰프

황소별을 통째로 구워 메인 요리로 낼 거야

지구의 모든 어린 친구들 다 불러올려

달 위에서 콘서트를 열 거야

K팝 아이돌 형아들 초대해 힙합을 추게 하고

걸그룹 누나들 샛별과 댄스를 추게 할 거야

수천 대 인공위성은 녹여 피아노를 연주하게 하고

달빛 속에서 친구들과 손잡고

싸이 아저씨의 강남스타일 말춤을 출 거야

화성에겐 북극 오로라 빛을 섞은

달콤한 아이스크림 천 개쯤 만들어 오게 하고

물고기별과 고래별은 밤하늘 바닷속에 헤엄치게 할 거야

아! 그 새벽 만약 내가 오줌이 마려워

꿈만 깨지 않았다면,

나는 우주에서 제일 멋진 태양 셰프

 

 


 

 

김동원 시인 / 미완성

 

 

네 그렇게 올 줄 알았다

장미는 너를 베었고

그녀는 피를 묻었다

달빛에 젖은 건

기껏, 색(色)이었더냐

몸이 칼을 받는 구나

늑골에 물이 괴었다

또 귀(鬼)가 보이는 구나

쓸어버려라, 바람아!

네 그렇게 갈 줄 알았다

불길보다 더 빨리 타 올라

관(棺)을 덮으리라

어둠 속 손을 넣은 자(者),

오, 발목이 잘린 시여!

 

 


 

 

김동원 시인 / 이 시인 놈아

 

 

닥쳐요, 잊히면 좀 어때요.

진짜 시인이라면 구름에게 명령해요.

입금 좀 제때 하라고요.

집세가 없어요, 여보!

제발 노을에게 부탁이라도 해 봐요, 우리.

넷이서 밤마다 보름달만 뜯어먹을 순 없잖아요.

달무리라도 덮고 실컷 울고 싶어요.

당신이야 장미 년, 모란 년, 매화 년

끌어안고, 행간 속에 들어가면 그만이지만,

시인의 아내는 뭐예요.

그만, 그만, 내일 바람이 송금한다는

허황한 그딴 소린, 집어치워요. 제발!

빈말이라도, 돈 좀 줘 봐라,

이 시인 놈아!

 

 


 

 

김동원 시인 / 환상곡

 

 

우리는 푸른 바람에 손을 넣고 있었네

그는 시간을 잡는다고 했네

어디로 간 걸까, 그 얼굴들은

감쪽같이 어둠에 스며들었네

트럼펫을 불어라!

노을 지는 서쪽 바다에 서서

남자여, 미쳐버려라!

춤추고, 노래하고, 취하라, 여자여!

물 위에 꽃잎이 떨어지고 있었네

피아노에 칸나가 핀다고 했네

아무도 그를 보지 못했네

그 저녁 모두 어디론가 가고 있었네

 

 


 

 

김동원 시인 / 바람과 바람 사이 그녀가 서 있었네

 

 

물속에 든 노을은 꽃이었네

배를 타고 천상을 건너자고

약속했건만, 그녀는 먼저 흰 연꽃이 되었네

어둠 속에서 우리의 사랑은 잠들었네

바람과 바람 사이 그녀가 서 있었네

두 눈 속엔 눈물이 고여 흔들렸네

붉은 장미 속에서 숨을 거뒀을 때,

비가 되어 꼭 다시 온다고 말했네

천년을 지나서 그녀에게 가네

물속에 든 노을은 꽃이었네

 

 


 

김동원 시인

1962년 경북 영덕 출생. 경산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4년 『문학세계』 '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시집 『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 『구멍』 『처녀와 바다』 『깍지』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 당선. 2018년 동시집 『태양 셰프』 출간. 2018년 편저 『저녁의 詩』 출간. 2018년 대구문학상수상. 현재) 대구시인협회 부회장. 대구문인협회 시분과위원장, 한국시인협회원. 『텃밭시인학교』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