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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초우 시인 / 종소리 외 6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12. 30.
이초우 시인 / 종소리

이초우 시인 / 종소리

-에밀레종

 

 

 죽은 아이가 소리 속에서 자랐습니다.

 소리를 먹고 자란 그 아이, 진노한 王이 되었다가 때로는 남성 바리톤으로, 때로는 천상의 소프라노였습니다.

 64hz 179hz 399hz의 주파수 주기로 노래를 합니다

 

 소리가 말을 합니다. 소리가 이야기도 합니다. 역정을 냅니다.

 얼마나 종은 종으로서 할 말이 많았을까요

 금이 가고 깨어지고 유산되고

 34년 만에 태어난 그 종,

 

 맑은 하늘에

 해가 둘이 떠 열흘 동안 지지 않았습니다. 진노한 왕의 일괄, 태산 무너지는 소리가 당목이 종을 때리는 타음입니다.

 天衣를 두른 두 쌍의 供養飛天人*,

 종 아래 항아리 속에서 춤을 추었습나다, 빙빙 돌고 도니 64hz로 울리는 음성 바리톤이었습니다.

 타음 뒤에 이어집니다.

 

 164hz 소리를 타고 아이는 다른 성단星團에 있는 어머니를 찾아갑니다. 22톤의 종을 물고

 용이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소리, 우렁우렁 천공 높이 메아리 칩니다. 높고 낮은 맥놀이를 반복하며 어머니에게 다가갑니다.

 어머니를 만나기 직전입니다 애끓는 그 목소리 399hz였습니다.

 

 휘날리는 천의에 소리를 달고 공양비천인들,

 하늘 높이 가물가물 사라져갔습니다.

 그 소리의 주름에는 반짝반짝, 수많은 인이 반짝이었습니다.

 

*부처님께 무릎을 꿇어 공양을 드리는 선녀.

 

-계간 『열린시학』 2009년 봄호

 

 


 

 

이초우 시인 / / 0이란

 

 

십수 년여 장고 끝에 꽃을 피운, 그 1 달포 동안 0을 향해

울어대는데, 옆구리의 떨림판

뱃속 공명실을 울려 때론 테너로, 바리톤으로

 

오후 한때 광란의 춤판, 그 1의 무리들 향해

0 한 마리 거침없이 가로질러 날아간다.

1을 꿰찬 0, 황홀한 혼인 비행으로 수천 개의 별똥별이

우수수

 

아직도 너는 0의 또 다른 색깔, 그 비스킷이

그렇게 먹고 싶었던, 그래서 넌 감당이 안 되는 +를 향해

산달 앞둔 사생아 같은 +덩어리로, 그때만 해도 0이 뭔지

몰랐던 너

그러다 어느 날 -의 나락으로 떨어져

줄곧 -를 더해, -1, -2, -3 ~ ~, -10.

 

X 와 -X는 분명 서로 반대된다

하지만 X의 경계 속엔 -X가 있고, -X의 경계 속엔

X가 있다는 걸

그럼 X 와 -X, 혼인 비행이 가능할까

X = -X

 

달을 보지 않고, 내 손가락만 줄곧 보고 있던 너

+를 향해 가더라도 금방 돌아와야 하고, 그렇다고 -로,

너는 언제나 0의 자리 가까이, 더 이상 네 심장에

방망이질 말고, 그 바람 때때로 네 멱살 잡고 끌고 가도

조금도 흔들림 없는, 한가롭게 수련이 피어있는

0의 자리로.

 

-『시작』 2021년 여름호

 

 


 

 

이초우 시인 / 닭발 위의 오두막집

 

* ‘러시아 5 인조’에 속한다는 무소로그스키의 곡,

친구인 조각가 하르트만의 유고

전람회의 그림’전시회를 보고 작곡한

열 개의 곡 중 아홉 번째 곡.

** 러시아 민담에 자주 등장하는,

선악을 가리지 않고 행하는

마녀

 

소용돌이치는 불협화음

하늘을 쩍쩍 가르는

천둥소리

몸 안의 막힌 관들이 뻥 뚫리는

박진감 넘치는 곡에

나는 랩 가사를 머릿속 쪽지에 적어나가기 시작

 

얼마 후 나는 목 수술

무소르그스키의 곡에 맞춰 나의 검은 랩 핏덩이 쉼 없이 토해냈지

날 위해 집안에 신상神像을 모시겠다는 어머니

몰래 징소리를 쓰레기더미에 버린 후

어머닌 격심한 조울증

갑자기 내 노랫말 랩 가사를 읊으시다

고장 난 엔진 마냥 고개 떨구셨어

 

‘닭발 위의 오두막집’

어머닌 왜 그 집에 계셨는지

 

오두막집 가슴 시계가 자정을 넘길 즈음,

내가 토한 검붉은 랩 가사 멈추게 할 심산으로

제상祭床 차린 어머니

커다란 북과 징은 물론 절구 공이와 빗자루까지

 

언제 불렀는지, 오두막집 주인 바바야가** 일행

험상궂은 얼굴로 들이닥치고,

무소르그스키의 관현악곡 속에서

바바야가 두 자매,

흰 천 달린 댓잎 가지 들고 춤을 추고

절구 공이로 북을 치다 징을 때리며

천상에서 받은 주문呪文

거친 쇳소리로 노래 부르고

어머닌 빗자루로 수차례 내 몸 쓸어내렸지

 

오두막집 가슴 시계 새벽 다섯 시

자매들 그 빗자루 타고

동트는 구름 가운데 훨훨 날아가고

바바야가는 오두막집 한 바퀴 휙 돌며

세찬 바람 일으키더니

절구 공이를 타고 독수리 비행을 하며 승천했어

 

-계간 『상징학연구소』 (2023년 봄호)

 

 


 

 

이초우 시인 / 空

 

 

오른쪽 백목련이 지고

자목의 화려함을 보고 싶어

몇 송이 남아 새처럼 파들거리며 기뻐한다

地 水 火 風 인연으로 내 발길 멈추게 하였으나

인연 다하면 떠날 것이니, 다 모두 꿈이 아니든가

 

 


 

 

이초우 시인 / 아직 나는 진화 중

 

 

나도 너처럼 또 다른 나를 여럿 가지고 있다

 

지금은 후줄그레한 환자복을 입고

그렇게 넓지 않은, 아담한 병원 옥상 정원을 걷고 있다

 

한여름 해 질 녘 할머니가 좋아하던 백일홍, 맨드라미

그리고 접시꽃 해지는 걸 못내 아쉬워하는

해바라기도

여기가 거기 어디가 극락이란 말인가?

 

그렇게 가보고 싶었던 나는, 말로만 듣던 태령양의 섬

사모아에 가

특수 제작한 방수복을 입고 산호초 동산을 돌고 있다

내 방수복은 수압에도 관계 없고

스스로 산소를 마시며

신발과 내 다리가 가는 곳엔 가시 같은 해초들이

부서지며 길을 내준다

 

산호초에 모여 사는 열대 물고기들, 미안해서 그랬을까?

평생 한 벌밖에 입지 못하니,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어쩌면 저렇게 희귀한 디자인으로

뽑낼 수 있는지

가지각색의 생김새, 색의 전시장 같은 산호초 동산

오! 여기가 바로 거기

 

저 허공 1만 미터 높이 지점에

특수 초강력 레이저 빔으로 직사각형 병원 옥상 정원을

시루떡 모양으로 잘라

오방신장(五方神將들)* 손바닥 다섯을 빌려

칠흑 같은 먹구름 속으로 띄워 올린다

산소 부족을 스스로 해결하는, 미세한 열선이 내장된

하연 천사복을 입은 나는, 구름 속 벤치에 앉아

깊은 명상에 젖어 있다

먹구름이 벗겨지는, 정원의 꽃들과 나는 밝음을

맞이하는 순간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었지

 

저 아래 산 정상의 독수리, 힘겹게 산을 넘는 두루미 떼를

습격하는 장면 가물가물 보인다

 

머지않아 또 다른 내가, 타이탄으로 날아가,

겉은 냉정하지만 속은 따뜻한,

겹겹의 얼음 두께를 뚫고, 형언할 수 없는 외피를 가진

고기들과 그 아래 바다를 유영하며

또 다른 환상의 천국을 만날 볼 것이다

 

*민속에서 다섯 방위를 다스리는 신장(일종의 천상의 신)

 

-월간 《현대시》 2022년 12월호에서-

 

 


 

 

이초우 시인 / 어눌한 낙하

-만추(晩秋)

 

 

천문(天門)이 열리는 나의 시간 새벽 세 시

 

그것은 해 질 무렵이었지

아직도 떠나질 않고 날 기다려주었어

강물의 비늘 새 반짝반짝 날갯짓 파들거리고

어디선가, 경쾌하게 춤을 추며 달려오는 노랑 우편 마차

내 두 손 잡고 덩실덩실,

 

마른 이파리 더미 밟고 있는, 그 두 발

바스락바스락 묵은 이파리 덮고 잠들었던 줄거리

깨우고

어쩌면 그렇게 피부가 해맑고 간절한지, 나는

벌써 알았지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3악장이 폐병을 앓고 있는

그녀의 피부 아래 지층, 우수의 수맥 따라

흐르고 있다는 것을.

 

난 왜 그런지 췌장이 약하다

앙상한 잔가지에 매달려, 무엇이 그토록 애가 타는지

목어처럼 흔들며 두 손 모아 비는 홍엽

휘 휙, 소슬 찬바람 내 곁을 지나가고, 아프지 않는 낙하

어디 있겠냐만

자살한 화가의 혼이 물든 은행잎, 제 몸 멍들지

않게 우수수, 왜 홍엽은 저렇게

어눌하게 떨어져 내릴까

아마도 저 가엾은 곡선의 유희, 하늘하늘

유언장 줄거리를 쓰며 내려앉기 때문.

 

 


 

 

이초우 시인 / A는 A가 아니다. 그러므로 A이다

 

 

너의 기억 주머니 얼마나 배부른가?

물에 빠진 기억들 꽉 짜말려 편집을 하라

연어 알 같은 문장 아닌 문장들 깨어날 것이니

옷걸이 가지에 철마다 걸려 있는 기억들

 

길에는 자목련이 만개하면 욱신욱신 치성으로 얼음 두께 깨고

나온 용(龍)이 된 너, 그리하여 이듬해

살얼음판을 아장아장

 

언젠가 내림받은 자존의 꿈, 네 생애 단 한 번 용꿈을

꾸어보긴 했으나, 분명 오욕 속엔

이무기도 살고 있지

이무기의 전쟁 그래도 붓다의 거룩한 선지식이었어

 

수심 깊은 대뇌 속 자리 잡은 용왕당 심장의 어느 방엔

용맹정진하는 장수의 처소가 있지

너의 이드, 동네 조무래기들 떼로 몰고 다니며 병정놀이를

즐기던 아이

언제나 셋 함께 있어야 했는데, 이드와 초자아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너의 '자아'를 자리를 뜬 게 문제

아무튼 진초록의 이드, 초자아의 색깔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어

회오리가 일어난 순간 너의 이드, 초자아에게 귀차대기를

한 대 맞고서도, 흥, 하며 내빼 버린 연두색

 

술취한 노숙자로 조롱당하기도, 울부짖는 얼굴로

들리지 않는 음반 왜 치고 있었는지

광인 같은 그의 노작, '제9교향곡'을 감상하고

객석에서 왜 넌 눈물을 훔쳤던가?

 

어느 여학생 투신했다는, 이무기를 달래주려 가끔 물이

뒤집힐 듯 일렁이는 가마우치 떼들의

회색 배설물로

예술화 된 호수, 갈애를 달래려는 너, 호숫가를 빙빙 돈다.

 

답을 얻지 못한 날들

달포가 지나가고, 아직도 그들의 뾰족한 감정

초승달 보트를 타고 질주하는데, 그래도 여전히 재미를

못느낀 너, 하지만

너의 후일, 겨울에도 정오 여름에도 정오

언제나오다

그리하여

'A는 A가 아니다. 그러므로 A이다'라고 했으니

 

-월간 《현대시≫ 2021년 1월호, 신작특집 -

 

 


 

이초우 시인

경남 합천 출생. 부경대 해양생산시스템공학과 졸업. 2004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 시집 『1818년 9월의 헤겔 선생』 『웜홀 여행법』. 제3회 『열린시학상』 수상. 계간 『낯선시』편집운영위원. 월간 『현대시』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