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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혜 시인 / 달도 SOS를 친다
필경 저 달의 그리운 님은 지구별에 산다
동창이 밝아오면 영락없이 아무도 없는 동구 밖으로 나와 한 걸음 한 걸음 오매불망 지구별을 쫓아오는, 해가 지도록 푸른 하늘 뒤에서 하얀 하늘을 걷고 그새 태양은 아득히 꼬리를 감추어 섬뜩해진 달은 태양에게 SOS를 친다
슬프도록 밝아진 달은 눈을 부릅뜨고 일편단심, 지구별에 계신님을 찾고 있는 중
조덕혜 시인 / 가시 장미
아름다워서 당당한가 아름다워서 용서가 되나
장미의 한 생처럼 곧 죽어도 없애지 못하는 태생의 가시 허울 좋은 저 가슴팍에 금쪽같이 숨어 박힌 가시들 감히, 하나님의 전신 갑주라 착각할까 피 흘린 이들이 말을 아끼니 기세등등한 저 안하무인 맘 놓고 거짓말 쏘아대는 철면피 센서 거의 구제 불능 불치병인 걸
꼭 가시장미여야 하나 그 어떤 풀꽃도 만만치 않으련만,
조덕혜 시인 / 내가 너로 산다면
내가너로 산다면 나도 너 일수밖에 네가나로 산다면 너도 나 일수밖에 나는 내 자리에서 너는 네 자리에서 나로 해서 행복해야 할 널 위해 너로 해서 행복해야 할 날 위해 사랑이란 이름 가슴에 걸고 하늘에 걸고 떨어지는 빗방울 한 낱에도 살갑게 귀 기울이는 살 에이는 칼바람 한 점에도 따스한 손 내밀오 보듬는, 참 사랑이 유영하는 깊은 바다처럼 고요의 가슴이길 서원하는 밤이 참 맑다.
조덕혜 시인 / 그대가 있어
해 그림자 스러지고 아슴아슴 빈곤이 성큼 다 달은 길목에서 나는 그대가 있어 꿈을 꿀 수 있어라
훈풍에 붉은 싸리 꽃 달고 하늘을 치솟는 까마귀와 까치의 설렘으로 저 별들의 강을 건너 안드로메다은하까진 아니어도 견우와 직녀에 가서 연서를 전하거나 휴대폰을 건네준다든지 노잣돈을 놓고 온다는 꿈만 같은 꿈까지
나는 그대가 있어 바닷물이 춤추도록 동그랗게 웃는, 청 보리 빛 초원을 꿈꾸는 꽃구름이어라 그대가 있어서 나는.
조덕혜 시인 / 가을이 떨어지고 있다
지금, 먼 하늘에서 시인 조덕혜 떨어지는 가을을 줍고 있다 하늘은 파란 눈을 크게 뜨고 청명한 빛을 내리는, 감히 알 수 없는 실루엣을 투시해 본다 '황홀'이다 갈매기는 꽈악 꽉 바닷가 상공을 비상하며 내 안의 난장이로 사는 꿈에도 거뜬히 날개를 달아 데리고 간다 겨울을 부르고 봄을 여는 혼, 을긋불긋 가을이 떨어지고 있다
조덕혜 시인 / 하늘이 좋다
하늘이 좋다 새들이 나다니는 파란 하늘이면 파란 꿈이 방울방울 떠올라 좋고 먹빛 구름 드리운 하늘이면 시원하게 부서져 내릴 투명한 변신이 좋다.
하늘이 좋다 흰 구름이 떠가는 하늘이면 이 마음 구름 따라 유유히 흘러 좋고 내게 아무도 없는 하늘이면 나를 펼쳐 뒤돌아볼 수 있어 좋다.
하늘이 좋다 그리움으로 가득 찬 하늘이면 그리운 얼굴 하늘만큼 떠올라 좋고 서러움에 가슴시린 하늘이면 하늘만이 내 마음 알아주니 더더욱 좋다.
조덕혜 시인 / 봄
봄은 화사한 궁전이다 가난에도 아지랑이는 피어나니 투박하게 움츠렸던 겨울 허물을 훌훌 벗고 그대 앞에 상큼하게 서려는 선한 몸부림
어디서든 소생의 손을 내밀며 시린 겨울 강을 잠잠히 미뤄내고 옷고름을 푸는 오색 꽃망울의 설렘은 꿈을 꾸는 자만의 가슴, 그대여 희망이 일렁이는 봄날은 참 좋은 그대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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