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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종철 시인 / 망치를 들다 외 6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1. 9.
김종철 시인 / 망치를 들다

김종철 시인 / 망치를 들다

 

 

이제는 망치를 들어도 좋을 나이다

솜씨 좋은 목수는 연장 탓하지 않는다

눈 감고 못 박아도

세상의 뒤편인 손등을 찧지 않는다

현자는

눈을 감고 자도

밤은 밝은 법

솜씨 좋은 목수는

나뭇결만 보아도

연륜을 다 읽는 법

이제는 누구의 관뚜껑인들 망치질 못하랴

이제는 한밤에 못질되어도 좋을 나이다

 

 


 

 

김종철 시인 / 고백성사

- 못에 관한 명상 1

 

 

못을 뽑습니다

휘어진 못을 뽑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못이 뽑혀져 나온 자리는

여간 흉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성당에서

아내와 함께 고백성사를 하였습니다

못 자국이 유난히 많은 남편의 가슴을

아내는 못 본 체 하였습니다.

나는 더욱 부끄러웠습니다

아직도 뽑아 내지 않은 못 하나가

정말 어쩔 수 없이 숨겨둔 못대가리 하나가

쏘옥 고개를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김종철 시인 / 칼국수

 

 

마음에 칼을 품고 있는 날에는

칼국수를 해먹자

칼국수 날은 날카롭다

식칼, 회칼, 과일칼

허기 느끼며 먹는 칼국수에

누구나 자상(刺傷)을 입는다

 

그럼 밀가루 반죽을 잘해서

인내와 함께

홍두깨로 고루 밀어보자

이때 바닥에 붙지 않게

마른 밀가루를

서너 겹 접은 분노와 회한 사이

슬슬 뿌리며

도마 위에서 일정하게 썰어보자

불 끈 한석봉 붓놀림 같이  

한눈팔아서는 안 된다

특히 칼자국 난 면발들이

펄펄 끓인 다시물에 뛰어들 때

같이 뛰어들지 않지 않도록 주의하자

고통이 연민으로 후욱 끊어오를 때

어린 시절 짝사랑 같은

애호박 하나쯤 송송 썰어

끓는 면발 사이 넣는 것도 좋겠다

 

우리 모두 마음에 칼을 품는 날에는

다 함께 칼국수를 해 먹자

 

―시집 <못의 사회학>, 문학수첩, 2013.

 

 


 

 

김종철 시인 / 대팻밥

 

대패질을한다

결 따라 부드럽게 말려 오르는

밥은 밥인데 못 먹는 밥

당신의 대팻밥

죽은 나무의 허기진 하루

등 굽은 매형의 숫돌 위에

푸르게 날 선 눈물이

대팻날을 간다

자주 갈아 끼우는 분노의 날 선 앞니

이빨 없는 불평은

결코 물어뜯지 못한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대팻밥을 뱉으며

가래침 같은 세상을 뱉으며

목수는 거친 나뭇결을 탓하지 않는다

시시비비

입은 가볍고

혓바닥만 기름진 세상

먹어도 먹어도 헛배 타령하는

대패질은 자기착취다

비껴온 세상의 결 따라

날마다 소멸되는 나사렛 사람

나의 목수는 밥에서 해방된 천민이다

 


 

 

김종철 시인 / 못을 박으려면 대가리를 내리쳐라

- 아베 마리아

 

​아베, 아베 말이야

군국주의 혈통 자랑하느라

극우 정치 술수로 표심 자극하느라...

천황폐하의 신민에게

위안부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늙은 일장기 아래서 생떼 부린

버림받은 빈 깡통 아베, 아베 말이야

​녹슨 못 넣어 더욱 검게 한 콩조림 요리법처럼

등 굽은 녹슨 아베, 아베 말이야

일제 침략 역사를 더 검게 왜곡시킨 콩조림

A급 전범 복역자 외할비 기시 노부스케

독도를 제 땅이라 망언한 애비 아베 신타로

​늙은 야스쿠니 까마귀가 또 우짖는다

입이 가벼우면 이빨도 솟는 법

도쿄 극우파에게 매춘부라 모독당한 위안부 할머니

‘늦었다, 하지만,

너무 늦지는 않았다.‘

​나치 사냥꾼 포스터가 붙은 베를린 벽보에

말뚝 소녀상도 통곡한다

‘아베는 늦었다. 하지만

야스쿠니 합사 분리는 늦지 않았다.‘

아베 마리아!

​- 계간 <시인수첩> 2014년 봄호

 

 


 

 

김종철 시인 / 빨간팬티

 

 

세상을 바꾸는 단 한 줄 시를 위해

참전한다고 호기 있게 쓴 편지

고향 친구 손에 읽히기 전

내 전 생애가 담보됐다는 걸

아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름 나라 파병에

혹독한 동계 훈련 받은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전투수당과 생명수당이 국고에 강제 귀속된다는

소문 또한 그렇다 치더라도,

 

전함이 남지나해 가까워지자

우리는 선내를 속옷으로 돌아다녔다

한결같은 빨간 팬티다

액운을 때울 수 있다고

무사히 귀환할 수 있다고

여자 팬티 입은 놈도 여럿 있었다

한 장의 연꽃으로 가린 심청의 아들

왜, 그것도 몰랐냐고 빤히 되묻는 눈빛에

나는 또 한 번 패잔병이 되었다

 

 


 

 

김종철 시인 / 모퉁이 새겨진 기도

 

 

늦은 나이, 조그만 출판사 하나 차린 나는

이른 아침 책상모퉁이에서 기도한다.

남들 볼세라 무릎 꿇은 괘종시계

추처럼 두 손 모우면

그때마다 불청객처럼 문 두드리는 한통 전화.

어이, 종처리

하느님보다 먼저 응답하며

내 아침기도의 불평을 틀어막은 편운.

저녁 대포 한잔하세나

이보다 더한 세상 응답 또 있을까

문득 당신을 그리면

내가 더 그리워지는 그 책상모퉁이.

 

때때로 마음 쓸쓸하면 우리는

정종대포로 데워진 혜화동

당신을 기다려 본다

한잔, 또 한잔 흔들리면

‘봄날은 간다’ 십팔번 한 곡조 뽑고

갱상도 첫발음 조심하라는 산사山史도 촛병화하고

우리는 안다 이 풍진 세상

목로주점에서 돌아앉은 당신의 파이프

합석한 우리만 모른 체 하는구나

바람 불고 또 날이 가면

이승에서 다 같이 갑장 된 우리

시의 화석으로 남게 되리라​

 

 


 

김종철(金鍾鐵) 시인 (1947~2014)

1947년 부산에서 출생.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졸업 동 대학원 수료.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7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서울의 유서遺書」 「오이도烏耳島」 「오늘이 그날이다」 「못에 관한 명상」 「등신불等身佛시편」 「어머니, 우리 어머니」 제13회 정지용문학상, 제3회 편운문학상, 제6회 윤동주문학상, 제4회 남명문학상 등을 수상.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겸임 교수, 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 겸임 교수 역임. 현재 계간 『문학수첩』 발행인 겸 편집인, 한국시인협회 이사. 2014. 7. 5 췌장암으로 별세(향년 67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