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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규학 시인 / 천사의 눈물
나보다는 너를 너보다는 우리를 우리보다는 전부를 위한 티 하나 없는 순백의 마음
받기보다는 주고자 주기보다는 주고받고자 주고받기보다는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비워내어 베푼 사랑
그대 사랑 안에서 늘 즐거워하고 늘 행복해하고 마냥 철부지로 뛰어놀았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쌓인 회한 나로 말미암아 겪은 고통 나로 말미암아 아파한 순간 긴 한숨으로 토해내는 당신
어느 날 햇볕 쏟아지는 창가에서 소리없이 우는 한 떨기 물빛 수선화를 보았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눈물짓는 천사의 모습을
권규학 시인 / 가을앓이
서로를 알 수 없는 복잡한 세상 두 눈으로 보지 않고 두 귀로 듣지 않은 말들 사람들은 쉽게 믿으려 하질 않는다는
하지만, 꼭 보고 들어야만 알까 산이 높으면 골짜기가 깊고 숲이 깊으면 생명이 깃드는 법 굳이 보고 듣지 않아도 알 수가 있다는
10월, 반짝반짝 빛나는 계절 뜨락엔 감나무가 옷을 벗고 들녘엔 온통 만산홍엽(滿山紅葉) 누구나 시인이 되고 철학자가 되는
기러기가 남쪽으로 날아가는 가을이 오면 나는 또 뜬금없는 속앓이를 한다 찬이슬 눈물로 흐르는창가에 서서
권규학 시인 / 향기 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꽃은 스스로 아름답다 내보이지 않지만 누구든 꽃을 보면 아름답다 말합니다 향기도 스스로 향기로움을 내어뿜지 않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향기가 더욱 진한 향내를 뿜어냅니다 사람도 역시 그렇습니다 진실한 사람은 표현하지 않더라도 주변에서 보는 사람들이 스스로 진실함을 느끼게 됩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은 스스로 따뜻하다 하지 않아도 함께하는 이들 서로 간에 마음과 마음끼리 느낄 수 있습니다 진실하고 따뜻한 마음과 가슴으로 사랑의 손을 뻗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향기 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베풀 수 있는 가슴이고 싶습니다 나, 곱고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습니다.
권규학 시인 / 고독
마음 안 숨겨진 창고에 불이 나 내 가진 모든 걸 태워버렸다
삶도 인생도 시뻘겋게 타오르는 불 속
내가 넌지 네가 난지 불꽃 안엔 아무도 없다
삶의 변두리에 처져 있는 외로움, 보고픔, 그리움
그다음엔 만남이던가
불꽃의 바깥쪽 너와 나, 우리 채 타다만 그림자 하나
나 지금 말하고 싶은 건
그저 당신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거 그대 사랑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거
지금 이 순간 이런 내 마음 그대는 알까
권규학 시인 / 다작(多作)은 시인의 무덤인가
당신이 음악가라면 열심히 곡을 짓고 노래를 하라 당신이 화가라면 캔버스를 펼쳐 그림을 그려라 당신이 무용가라면 쉬지 않고 몸을 움직여 춤을 추고 당신이 스포츠 선수라면 저마다 제 분야에 전력투구하라
법당의 목탁도 제때 치지 않으면 소리를 잃고 북이나 징, 꽹과리도 사용하지 않으면 원음을 낼 수 없고 하늘을 나는 새도 날개를 묶어두면 날 수 있음을 잊으며 말 잘하는 웅변가도 귀를 막고 말문을 닫으면 능변의 기능을 잊고 만다
시인이여, 시를 써라, 글을 써라 자연을 노래하고 세상을 때려 소리를 내고 이곳저곳 저곳이곳 세상 구석구석을 낱낱이 파헤쳐라
시인이 詩를 쓰지 않고 '다작(多作)은 좋지 않다'는 궁색한 변명하기에 급급하며 세파에 찌들려 우왕좌왕하다 보면 그대 몸도 스스로 시인임을 잊고 말 테니
권규학 시인 / 행복으로 가는 선물
내 삶의 여정(旅程)에는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세 명의 가족이 있습니다
다정한 3형제 중에 올바른 삶을 사는 이 제대로 된 형제는 누구일까요
어제일까 오늘일까 내일일까
어제는 하나의 꿈이요 내일은 또 하나의 환상이라면 오늘, 오늘에 만족하며 사는 게 행복으로 가는 선물이겠지요
어제로부터 배우고 제대로 된 내일을 계획하려면 오늘을 올바르게 살아야 하는 것
오늘을 바르게 살아간다면 어제의 꿈을 행복으로 내일의 환상을 희망으로 이루리
권규학 시인 / 자작나무 숲, 그 고혹의 기억 속으로
숲을 바라본다 오래도록 앉아 있거나 서성이듯 걷는다 사위(四圍)가 고요히 익어가는 시간 나무 사이를 물들이며 천천히 누린다
시리도록 아름다운 겨울 하늘과 하얗게 드러난 자작나무의 어울림 맑은 눈을 가진 어느 소녀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나무숲을 걷는 내내 단꿈에 빠져든다 향긋하고 새하얀 꿈 잊힌 기억처럼 하얗고 찬란하다 자작나무 숲에는 순백의 신성함이 살아 숨 쉰다 그래서 치유의 숲인가 보다
하얀 숲에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면 잎새만 스치고 말 일이지 자작자작, 생경스런 소리를 낸다
하얀 숲에 햇볕이 스며든다 햇살이 비추면 눈을 마주하고 그저 손을 뻗을 일이지 꼿꼿이 등지고 서서 쭉 뻗은 검은 다리를 길게 늘어뜨린다
어느새 하얀 숲에 눈(雪)이 번진다 눈이 오면 켜켜이 쌓일 일이지 뽀얀 살결에 차가운 눈을 촉촉이 배어 안는다
하얀 숲에 어둠이 내린다 깜깜한 밤이 오면 느긋이 잠들고 말 일이지 하얀 별을 숲속 가득 드리운다
계절에 따라 바람이 바뀌고 몸짓과 색깔이 달라지는 언제나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 그곳에 어느 여인의 아름다운 사랑이 도드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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